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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2일 06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12일 14시 12분 KST

보석의 한국어

커플 예물반지의 평균가를 100만원이라 치고 2013년에 결혼한 커플을 단순히 곱하기만 해도 3천억원 이상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중의 보석 브랜드는 이 대단한 모호에 맞서는 대응책을 마련해 두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든간에 어떻게든 맞춰줄 수 있다. '브랜드도 소재도 가질 순 없을까?' 싶을 수 있다. 왜 없겠나. 까르띠에에서 순금에 다이아몬드를 당당히 올리거나 반 클리프 아펠의 장인들이 아침이슬처럼 다이아몬드를 촉촉히 박은 반지를 살 수도 있다. 순금으로 만들고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명품 보석 브랜드의 반지 세트 가격은 4천만원 이상이다. 물론 저만큼의 돈을 들고 종로로 간다면 더 큰 보석을 박은 반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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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원 군(34세)은 8년 동안 만난 5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내년 4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한국식 결혼에는 그 나라의 다른 사회적 행사처럼 수많은 규칙과 계산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결혼을 한다는 건 결혼이라는 종목의 규칙을 어느 정도 지키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반지는 이 대단한 행사의 한 종목이다.

한국형 결혼은 남자 팀과 여자 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외교 협상과 비슷하다. 남자 팀과 여자 팀은 서로의 상황에 따라 암묵적으로 합의된 예산을 준비하고 그 돈으로 결혼의 암묵적인 필수요소를 구매한다. 이 요소에는 집, 인테리어, 혼수, 결혼식장, 신혼여행, 예단, 예물 등이 있으며, 이 모든 요소의 공통점은 모두 암묵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안 하면 좀 신경이 쓰인다는 특징이 있다.

결혼의 암묵적인 필수요소는 작지 않은 시장을 형성한다. 방금의 결혼 요소는 손쉽게 산업 용어로 바꿀 수 있다. 각각 부동산, 실내공사, 백색가전+텔레비전(혼수), 항공+숙박(신혼여행), 이불(예단), 보석+명품 시계(예물)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2013년 결혼 건수는 32만 2800건이다.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따라 60만개 이상의 결혼반지가 팔려나갔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결혼 관련 상품은 뭐가 됐든 시장의 온갖 요구를 받아들인다. 심상원 군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심상원 군 부부의 결혼 예산은 합쳐 4억 원이 조금 넘는다. 정확한 비율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남자 쪽이 훨씬 더 많이 냈다. 남자가 예산을 더 많이 부담한다는 것 역시 암묵적인 결혼 관련 원칙 중 하나다. 남자가 돈을 더 댔다는 사실은 그 유명한 한국적 '시월드'의 사상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심상원 군은 부모님의 도움 덕분에 서울 시내에 있는 중저가 아파트를 구입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주택 구입과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돈은 3억 원이 조금 넘는다. 이러면 남는 돈은 약 5천~8천 만원쯤 된다. 이 정도 예산에서 혼수, 결혼식장, 신혼여행, 예단, 예물을 해결해야 한다.

심상원 군은 결혼식장이나 예물에 쓸 돈을 줄이고 혼수에 좀 더 투자하고 싶다. 아내는 심상원 군보다 어린지라 남자 생각보다는 화려한 결혼식을 원한다. 돈이 생각보다 좀 더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상원 군은 아내의 바람을 최대한 들어줄 생각이다. 반지도 그렇다.

심상원 군은 예비 신부와 티파니, 까르띠에, 부쉐론 등의 반지를 보았다. 부쉐론의 반지는 본인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부쉐론 결혼반지의 가격은 1천 4백 만원 정도다. 함께 보았던 티파니와 까르띠에의 남녀 반지도 1천 만원 안팎이다. 보통 여자 반지가 더 비싸다. 1천 만원이라면 여자 반지 : 남자 반지=7 : 3 정도의 가격대를 이룬다.

같은 가격의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처럼 모든 부부의 결혼예산과 커플 반지의 가격도 모두 다르다. 심상원 군이 책정한 반지 예산은 총 결혼 예산이 4억 원 남짓이기 때문에 배정된 금액이다. 보통 3~4억쯤 하는 집을 해가면 예물 반지도 1천 만원 안팎의 가격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예물 중 반지 예산은 총 결혼 액수의 0.3% 내외에서 결정된다'는 규칙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어디서나 통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심상원 군 주변의 친구 중에선 비슷한 가격의 집을 해가고 총 예산 3백 만원 안팎의 반지를 맞춘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 예물이 궁색한 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냐 싶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암묵적이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끝없이 모호해진다. 이 엄청난 모호함이 한국식 결혼의 정수다.

이건 작지 않은 시장이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남는다. 커플 예물반지의 평균가를 100만원이라 치고 2013년에 결혼한 커플을 단순히 곱하기만 해도 3천억원 이상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중의 보석 브랜드는 이 대단한 모호에 맞서는 대응책을 마련해 두었다. 지금의 예물시장은 어느 수요에든 대응할 수 있는 촘촘한 그물망이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든간에 어떻게든 맞춰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석 제품의 가격을 구성하는 요소는 '브랜드+소재'다. 브랜드 가치가 확실하다면 진귀한 보석 대신 로고만 감아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원가를 내릴 수 있다. 벤츠의 소형차와 프라다의 열쇠고리처럼 명품 보석 브랜드는 소재의 가격을 낮춘 저가형 반지로 가격 포트폴리오를 넓힌다. 티파니나 까르띠에에서도 2백~3백 만원의 예산으로 예물 반지를 맞출 수 있다. 도금이 얇거나 다이아몬드를 안 박은 걸 고르면 된다. 거기를 시작으로 물건이 좋아질수록 가격은 그 위로 촘촘하게 올라간다. 다이아몬드가 아주 미세하게 커질수록, 세공이 조금씩 더 복잡해지거나 각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낼수록. 심상원 군 커플이 고른 1천만 원 내외의 예물 반지는 예물반지 방정식 중 브랜드 변수에서 '명품'을, 소재 변수에서 '중가'를 골랐을 때 나온 값이다.

어느 변수에 힘을 주느냐에 따라 예물반지 방정식의 값은 큰 폭으로 변한다. 이를테면 브랜드 값을 포기하고 소재에 집중하면 결과물의 모습이 굉장히 달라진다. 까르띠에든 반 클리프 아펠이든 이름값을 던져버리고 순금에 보증서 나오는 다이아몬드 1캐럿(통상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에서부터는 보증서가 동봉된다)을 박은 반지가 더 좋을 수 있다. 그렇다면 흔히들 예물반지를 구경하는 시중 백화점 본점과 지하철로 두세 정거장쯤 떨어진 종로 3가 인근 보석상이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브랜드도 소재도 가질 순 없을까?' 싶을 수 있다. 왜 없겠나. 까르띠에에서 순금에 다이아몬드를 당당히 올리거나 반 클리프 아펠의 장인들이 아침이슬처럼 다이아몬드를 촉촉히 박은 반지를 살 수도 있다. 다만 그러면 예산도 3차함수적으로 올라간다. 순금으로 만들고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명품 보석 브랜드의 반지 세트 가격은 4천만 원 이상이다. 물론 저만큼의 돈을 들고 종로로 간다면 더 큰 보석을 박은 반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은 계속된다. X반지를 획득할 수 있는 Y원이라는 방정식의 값도 촘촘하게 갈라진다. 백화점에서 현금으로 사서 현장 할인을 받을까? 외환 크로스마일 카드로 무조건 긁으면서 항공 마일리지를 모은 다음에 그 마일리지를 써서 신혼여행의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클래스로 승급할까? 현금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조금 싸게 사고 그걸 또 엄청 써서 상품권을 환급 받아 다른 혼수 장만에 보탤까? 외환 크로스마일 카드를 긁는다면 대한항공 마일리지와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중 뭘로 가입해야 할까? 같은 물건이라도 종로와 청담동의 가격이 다른데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2백 만원쯤 더 쓸까 말까? 이런 옵션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가격은 미묘하게 바뀐다. 결론적으로 무한소에서 무한대까지 포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사치품이라는 모순적인 시장이 형성된다.

이 모든 고민이 뭐냐 싶으실지도 모른다. 사랑의 증표가 KRW로 환산되고, 내 약지에 낀 반지가 우리 엄마가 맞춰주는 돈에 따라 정해지는 세상이. 이 세계관의 옳고 그름을 말하기 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돈은 가장 통역하기 쉬운 언어다. 나름의 지위와 명성을 갖춘 명품 브랜드는 직접적으로 돈을 상징하는 기호다. '얼마 주고 이걸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물건을 보는 사람들이 '대충 저게 얼마인지 안다'는 점에서.

기호로 작동하는 보석의 의미는 부모에게도 중요하다. 유교랜드의 부모에게 결혼은 인생의 한 막을 장식하는 큰 숙제다. 자녀는 부모 인생의 가장 큰, 경우에 따라 단 하나뿐인 걸작이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최대한 제 값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 부모 스스로의 돈까지 써 가며 자식을 이용해 제 값을 뽑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게 결혼에 얽힌 수많은 규칙과 그 규칙이 만들어낸 시장의 뿌리다. 간단하다. 티를 내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 여기서 반지는 "내가 얼마에요"라는 뜻의 한국어 문장이다. 그래서 시내의 백화점과 보석상은 아직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심상원 군은 아직 결혼반지에 대한 결정을 못 내렸다. 원래는 부쉐론으로 하길 맘 먹은 참이었다. 그런데 최근 여자친구가 친한 언니에게 들은 말 때문에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그 언니 주변 사람들도 주로 명품 브랜드 반지를 맞췄는데 그 언니는 종로 3가에서 순금에 1캐럿 다이아몬드를 박은 반지를 했다고 했다. "다 필요 없고 여자는 결국 보석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네 결혼반지에 쓰려고) 모아둔 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여기서 심상원 군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아니, 신랑 팀과 신부 팀의 최종 합의안은 무엇이 될까.

*한국의 독립 패션 잡지 <디어매거진> 4호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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