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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0일 06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10일 14시 12분 KST

걸인이 살아가는 법 - 진보, 보수, 중도 [1]

일찍이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적선이란 걸인으로 하여금 그 빈궁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게 아니고, 도리어 그 빈궁상태를 연장하여 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적선에 반대했습니다. 일면 타당합니다. 그런데 모두 그렇게 적선에 반대하고 국가도 내몰라 하면, 걸인들 중에선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 나서겠지만 굶어죽는 사람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실제 오늘날 걸인들 중에선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영양실조에 걸리고(그래서 천천히 죽어가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Miklós Rabi via Getty Images

얼마 전부터 독일 남부의 뮌헨에서는 구걸 행위에 대한 일정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공격적 구걸'과 '집단 구걸'이 금지된 것입니다. 이걸 위반하는 경우엔 최장 4주까지의 구금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래 사진에서처럼 길거리에 앉아 종이컵 따위를 내밀고 '소극적'으로 동냥을 하는 것은 허용됩니다.(유럽에서는 한국과 달리 걸인들이 개를 반려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시민에게 동냥을 강요하거나, 신체불구를 위장하거나, 엉터리 악기를 이용한 '적극적'(공격적) 구걸과 아동을 이용(?)한 '집단적' 구걸을 금지한 것입니다. "걸인이 살아가는 법"을 뮌헨 당국이 나름대로 정해 준 셈입니다.

독일에서는 원래 1974년에 구걸이 합법화되었습니다만, 공격적인 구걸은 불법이라고 정해 놓았습니다. 다만 그 불법행위의 '단속' 여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리해 도시에 따라 단속 방식이 다르고, 뮌헨시는 이번에 자기나름의 단속방침을 결정한 것입니다.

뮌헨시 당국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최근 2년 사이에 뮌헨에서의 집단구걸인 숫자가 다섯 배로 급증한 것입니다. 독일 전체적으로도 걸인이 늘었지만, 독일 내에서도 잘 사는 편인 뮌헨에 걸인이 더 몰린 셈입니다.

EU 통합이 진전되면서 동유럽에서 독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동유럽 내에서도 빈곤한 편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독일로 몰려든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이들 중에는 일자리를 찾아 생산적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겠습니다만, 개중에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에 기생하려는 목적으로 이주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격을 못 갖추면 걸인으로 나서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 걸인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게 집시(독일에선 공식적으로는 Roma나 Sinti라고 합니다)입니다. 집시들은 대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로부터 독일로 넘어오고, 근래 경제가 어려워지고 단속이 강화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로부터 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에선 뮌헨, 베를린, 쾰른에 이런 집단 집시거지들이 많고, 그래서 '구걸마피아'(Bettelmafia)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여행해 보면 넓은 통치마를 입은 집시들이 갓난애를 껴안고 동냥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유명 관광지에서 동냥을 하고 때로는 소매치기를 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아래 사진 참조.)

스페인 여행시 가이드는 "절대로 그들에게 동냥을 주어선 안 된다. 그들은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구걸행위를 하고 있고, 만약에 관광객이 한 집시에게 적선을 하면 다른 집시들도 그 관광객에게 몰려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에는 어느 정도 편견도 작용했겠지만, 사실 멀쩡한 젊은 여성 집시가 아기를 안고 동냥하는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집시들이 독일에도 점점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 뮌헨에서처럼 집단구걸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독일은 사회보장이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건 처음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걸인의 대다수는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자격을 갖추지 못한 외국인들입니다. 순수(?) 독일인 걸인들은 마약이나 알콜 중독자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독일의 걸인 문제는 주로 '이민' 문제에 속하는 셈입니다.

물론 '무소유' 철학 같은 데 입각해 구걸 행위를 하는 사례도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본 미모의 젊은 여성걸인(개와 함께 있었음)이나, 마르세유에서 본 책을 읽고 있는 걸인이 아마도 이런 부류에 해당하겠지요.

날씨가 추운 탓인지 독일보다는 숫자가 훨씬 적지만, 복지국가 북유럽에도 걸인이 없지 않습니다. 다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걸인들은 동유럽에서 건너온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들에서도 요즘엔 구걸행위에 대한 단속이 행해지고 있거나 단속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걸인의 역사는 오래됩니다만, 오늘날의 걸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뒤처진 사람들입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이유로 인해 경제활동을 수행하지 않고 타인의 기부에 의지해 생활하는 계층이지요.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시기에 걸인들이 많았습니다. 영국의 경우, "왕자와 거지", "올리버 트위스트" 등이 바로 그런 시대상황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면 어린애들을 앵벌이시키는 악당이 나옵니다. 그런 행태에는 자연히 분노가 치밀지요. 오늘날 인도의 앵벌이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한국에서도 상영된 영화 "Slumdog Millionaire"를 보면, 어린애들을 앵벌이시키기 위해 눈에 약을 넣어 장님으로 만드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예전엔 거지들이 우글거려 김춘삼이라는 자칭 '거지왕'이 있었고, 앵벌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향상되고 무상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이런 앵벌이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브라질에서도 아동거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룰라대통령이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그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어느 나라나 걸인이 많았습니다. 18세기 말에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선 거지가 전체 인구의 1/4이었고, 독일 마인츠(Mainz)에선 30%, 영국과 프랑스에선 10% 정도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엔 걸인이 대폭 줄어든 셈입니다. 걸인 숫자에 대한 통계가 잘 없어서 집 없는 사람(homeless) 통계로 추산해보면, 독일의 경우 집 없는 사람이 30만 명 정도(말 그대로 노숙하는 사람은 2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일본에선 노숙자는 신주쿠나 우에노공원 등에서 보듯이 꽤 되지만, 그 중에서 구걸행각을 하는 걸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일본 노숙자들은 집이 없을 뿐 나름대로 경제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쓰레기통 등에서 생활물자를 조달하는 듯싶습니다.

어쨌든 현대사회에 들어와 걸인이 줄어든 것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한 덕분입니다. 그러나 걸인의 존재는 오늘날도 여전히 모든 국가들의 골칫거리입니다. 다만 지역마다 정권마다 그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리고 이게 정책의 "진보-보수"를 구분해주는 하나의 잣대이기도 합니다.

무소유 철학에 입각한 걸인이나 앵벌이 두목을 제외하면, 걸인은 대개 사회적 약자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쟁에서 탈락했으니까요. 다음 번 글에서 좀더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만, 진보란 사회적 약자를 상대적으로 더 옹호하는 입장이고, 보수란 사회적 강자를 상대적으로 더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그걸 전제로 각 지역들의 걸인대책을 살펴보겠습니다.

극단적 보수파의 걸인대책은 '소탕전'입니다. 거리에서의 구걸행위를 아예 금지하는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경쟁 속에서 버티고 있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강자인 '선량한' 시민들의 불쾌감을 조성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질서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지요.

14~16세기 영국의 "건장한 부랑인·걸인 처벌법"(Act for Punishment of Sturdy Vagabonds and Beggars)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부랑자·걸인이 처음 체포되면 매질을 하고, 두 번째는 귀를 자르며, 세 번째로 체포되면 사형에 처합니다.

히틀러가 집시들을 강제수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국회의사당 쪽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집시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한국은 어떤가요. 끼니 얻으러 온 흥부에게 밥풀 묻은 주걱으로 뺨을 때리는 놀부 마누라도 이런 보수적 걸인대책의 표본입니다. 이런 옛이야기 말고 광복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한때 그런 방식이 실제로 시행되었습니다. 1987년에 세상에 알려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상기해봅시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형제복지원에서는 걸인과 부랑인을 강제 수용해 일시켰습니다. 거기서는 감금자들에 대한 구타나 성폭행이 자행되고, 12년 동안 5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일부 시신들은 수백만 원에 의과대학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로 잔혹하지는 않았지만,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노숙자들을 도시 외곽시설에 수용하거나 도시 특정장소로의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국가답게 오늘날 선진국 중에서는 걸인에 대한 단속이 강한 편입니다. 전체 도시 중 절반가량이 특정 공공장소에서의 구걸이나 공격적 구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1/4 가량의 도시는 구걸행위를 아예 금지하고 있고, 1/3 가량은 특정 공공장소에서 앉거나 눕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약 10년쯤 전 제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자원봉사하기 위해 유타에서 뉴멕시코 쪽으로 넘어갈 때의 일입니다. 비교적 한적한 지역의 슈퍼에 들렀다가 밖에서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걸인 차림의 미국인이 저에게 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즉각 경찰이 와서 저에게 그 미국인이 "한 푼 줍쇼" 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바로 잡아갈 태세였습니다. 번화가가 아닌 지역에서도 경찰이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유럽은 미국보다는 걸인에 대해 관대합니다. 길거리에 그냥 얌전하게 앉아서 구걸하는 경우 즉 "소극적 구걸"은 거의 단속 대상이 아닙니다. 또 미국보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해 애당초 걸인의 숫자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집시가 유럽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공격적 집단적 구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뮌헨, 북유럽만이 아닙니다. 이는 EU 통합이 진전되면서 생겨난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인구는 글로벌하게 움직이고, 특히 대부분의 EU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동 제한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반면에 사회보장제도는 아직도 개별 국가의 틀 속에서 작동합니다. 따라서 일부 집시나 동유럽 빈곤층에 대한 EU차원의 사회보장은 불충분한 가운데, 이들이 구걸 행각에 나서는 것입니다. "노동이동과 사회보장 사이의 모순"이 야기한 결과이고, 이는 EU의 완전한 통합에 의해서만 해소가능하겠지요.

사회적 약자를 상대적으로 더 옹호하는 편인 진보파는 대체로 이런 걸인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반대합니다. 그렇다면 구걸행위에 대해 아무런 단속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이런 문제에서도 우리는 진보, 보수의 개념을 실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일찍이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적선이란 걸인으로 하여금 그 빈궁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게 아니고, 도리어 그 빈궁상태를 연장하여 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적선에 반대했습니다.

일면 타당합니다. 거지와 교수는 되기가 어렵지 한번 그 길에 접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옛말이 있습니다.(거지와 교수의 공통점에 대해선 저의 이전 블로그 글 끝부분을 참고하세요. 정치인에게도 비슷한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힘든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 없이 살아가는 거지 생활엔 그나름의 맛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걸인에 대한 어떤 조사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3~5 시간 구걸하면 5만 원 정도 챙길 수 있고, 그 돈으로 도박판에 가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애인 흉내를 내던 거지가 그날 일이 끝나고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사라지는 걸 목격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 그렇게 적선에 반대하고 국가도 내몰라 하면, 걸인들 중에선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 나서겠지만 굶어죽는 사람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실제 오늘날 걸인들 중에선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영양실조에 걸리고(그래서 천천히 죽어가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 논리에 따라 걸인을 무조건 방치하는 건 좀 끔찍합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진국 중 가장 보수적인 미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해선 국가가 최소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장애에는 겉으로 보이는 육체적인 장애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도 있습니다. 꼭 정신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타고난 유전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과 거리가 멀어서 걸인행위를 하는 경우엔 어찌 해야 할까요. 이런 나쁜 유전자를 타고난 걸인은 죽게 내버려두어야 할까요. 그게 우생학적으로 인류의 유전자를 개량하는 길일 수도 있겠습니다. 더 나아가면 이게 히틀러식의 인종청소가 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히틀러 식의 인종개량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걸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래도 일하지 않으려는 걸인에게도 국가가 최소한의 삶은 보장해야겠지요. 어떤 한 나라에서 진보파가 강할수록 그런 보장정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보장 정도가 불충분한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걸인에 대해선 어찌해야 할까요. 걸인이 어떤 식으로 구걸을 하든 방치해야 할까요. 구걸행위나 기부금모집이나 기본적으로 다를 게 없으니 걸인에 대해서 별도로 규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파티 행사도 일종의 구걸 대행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니 행색은 그럴듯해도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치는 사실상의 걸인도 많습니다. 일부 양아치 같은 기자들이 약점을 가진 기업을 협박해 광고를 뜯어내거나, 며칠 전 구속된 인천지역 국회의원들처럼 기업에게서 뇌물을 뜯어내는 경우는 말 그대로 "공격적 구걸"에 해당합니다.

또 구걸 행위란 생존의 필요에 대한 표현행위이므로 구걸을 단속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성립 가능합니다. 그리고 걸인이 없어지도록 사회보장을 위한 세금을 충분히 납부하지 않는 상황에서 걸인이 끼치는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럽의 거리나 지하철에서 가끔씩 목격하는 음악연주를 통한 구걸에 대해서 단속을 요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지하철에선 한곡 뽑고 나서 그냥 승객 앞을 지나갈 뿐이지 구걸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마드리드에서의 아래 사진과 같은 눈속임 묘기를 통한 구걸도 일종의 공연에 가깝지요.

이런 예술적인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 동냥 '문화'도 수준이 높아집니다. 한국에선 아직 본 적이 없는 독일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지하철에서 걸인에게 주려고 잔돈을 꺼내든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꺼내든 순간에 이미 걸인은 그 여성 앞을 지나쳤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돈을 들고 걸인을 여러 걸음 따라가 동냥 통에 돈을 넣었습니다. '소극적 자선'이 아니라 '적극적 자선' 행위이지요.

반대로 불쾌감이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구걸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언젠가 걸인이 지하철에서 어린 여자애의 몸을 건드리면서 그 부모들에게 구걸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부모가 대노했지요.

지하철을 탄 여성 앞에서 동냥 깡통을 들고 오래 버티는 걸인도 있습니다. 불쾌감을 통해 동냥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어려운 처지를 적어놓은 메모쪽지를 사람들 무릎에 억지로 죽 나누어주는 경우엔 그 쪽지의 불결함이 사람들을 다소 힘들게 합니다.

식당에서 남녀가 같이 식사하는 경우를 노려, 그 앞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전의 탁발승도 아니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동냥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당하는 입장에선 걸인인지 도둑인지 강도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까요. 장사하는 가게 앞에서 걸인이 떡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어떨까요.

미국이나 유럽에선 자동차가 빨간 신호등 때문에 잠깐 정차해 있는 사이에 창유리를 닦고는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거나 유리를 긁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공격적인 구걸에 대해서는 금지조치를 취하는 정부가 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갓난애나 아동을 악용하는 집시 등의 앵벌이 즉 집단구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선 경범죄 처벌법을 개정해, 2013년부터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은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의 시행에 대해 인권시민단체 등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단순하게 구걸 통을 놓고 구걸하는 행위는 처벌대상이 아니며, 지하철에서 메모쪽지를 나누어주는 행위나 돈을 주지 않으면 욕설을 하는 행위가 처벌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도 공격적 구걸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셈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와 마찬가지이므로 외국인거지가 몰려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약중독자도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선 적은 편입니다. 따라서 걸인 문제도 덜 심각하고, 그래서 법규정 상으로는 비교적 무난한 유럽식 규제를 들여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정확한 걸인 통계는 찾을 수 없었고,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말 그대로 노숙하는 사람들은 약 2천명으로 독일의 1/10 규모입니다.)

걸인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은 이처럼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소극적 구걸을 허용하되 공격적 구걸과 범죄적 성격의 집단구걸에 대해선 대체로 금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공격적 구걸이고 어디까지가 범죄적 성격인지는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다.

걸인대책을 포함한 복지문제는 '사회문제'입니다. 이런 사회문제에는 '산수문제'처럼 딱 부러지는 '해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법입니다.

교육비용을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세금은 얼마나 거두어야 하는가, 범죄자에 대한 처우는 어찌 해야 하는가, 실업자 ·장애인·노인의 삶은 어느 정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에는 딱 부러진 정답이 없지요.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좀더 배려하는 진보적 입장과 사회적 강자를 좀더 배려하는 보수적 입장이 의견을 달리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입장의 차이 속에서 바람직한 선진사회일수록 나름대로 진보와 보수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격적 구걸과 집단구걸을 금지하는 것도 나름대로 균형을 모색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보파와 보수파는 서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를 둘러싸고 아직도 담론세계나 정치판은 혼돈 상태입니다. 또한 그 와중에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는 정체불명의 이념까지 가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진보, 보수, 중도라는 개념과 그와 관련된 현실의 혼란을 제 나름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걸인에 대한 대처방식을 통해 진보와 보수 및 그 둘 사이의 균형 문제를 살펴본 이번 글이 거기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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