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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9일 10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19일 14시 12분 KST

점자 이야기

점이 튀어나온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디에 찍혀있는지 구별까지 하라니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읽다보면 몇 줄씩 건너뛰기도 하고 요상한 단어들로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밤새도록 만지고 또 만져도 한 페이지도 읽기가 힘들었다. 혹시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도 주는 날이면 내용은 궁금해 죽겠는데 며칠 동안 진도가 안 나가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견뎌야만 했다. 그렇지만 늘 빠른 독서가 훌륭한 독서는 아니므로 난 오늘도 점자를 통해 책과 느리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어쩌면 점자는 남들보다 조금 느린 내 삶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Getty Images

점자는 점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점 점자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브레일이라는분이 제일 처음 만들었다고 해서 점자의 영어식 이름은 브레일이다.

한글점자는 '훈맹정음'이라고도 하는데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일제시대에 처음 만들고 반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암은 맹학교 교사이기도 했는데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어두운 곳에서 점자를 만드시느라 결국 본인마저 실명을 하셨다고 한다.

나도 직접 점자를 만져보기 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라고 해서 일반적인 글자를 양각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생각과는 달리 점자는 가로 두 칸 세로로 세 줄로 배열된 6개의 점이 배열된 모양과 개수에 따라서 각각의 낱자를 만들어 내는 문자체계였다.

예를 들어 네 번째 칸 점만 튀어나오면 기역 첫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이 튀어나오면 니은이 되는 식이다.

점자판과 점관이라고 하는 도구 사이에 점자용지를 끼우고 송곳처럼 생긴 점필로 구멍을 내는 것이 점자의 필기방법인데 작은 구멍을 찾아 정확한 위치를 찍는 것이 처음엔 쉽지가 않았다.

당시에는 점자를 모르면 맹학교 입학자체가 힘들던 때라 밤을 새면서 점자를 찍다 보면 손가락은 여기저기 물집 투성이로 변해갔다.

지금은 점자정보단말기라고 하는 점자형 노트북 같은 게 있어서 직접 점필을 쓸 일은 별로 없지만 손글씨가 꼭 필요할 때가 있듯이 가끔은 점자판을 꺼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내 손가락엔 늘 굳은살들이 함께 다닌다.

그래도 쓰는 건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라도 했다.

읽기를 시작했을 땐 이게 가능한 일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점이 튀어나온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디에 찍혀있는지 구별까지 하라니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읽다보면 몇 줄씩 건너뛰기도 하고 요상한 단어들로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밤새도록 만지고 또 만져도 한 페이지도 읽기가 힘들었다.

점자는 촉각으로 읽는 문자라서 아주 어린 나이에 배우지 못하면 평생 동안 노력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속도로는 못 읽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답답해도 너무 답답했다.

혹시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도 주는 날이면 내용은 궁금해 죽겠는데 며칠 동안 진도가 안 나가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견뎌야만 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인 점자 실력 때문에 어떤 재활생들은 사포나 수세미 같은 걸로 손가락을 밀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개미오줌만큼이라도 늘긴 늘었는지 학교입학 때에는 한 페이지를 5분 정도에는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한 페이지라고 해봤자 일반책 내용의 반의 반 정도 분량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정도로 학교수업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점자는 받침글자도 옆으로 늘여서 써야 하고 글씨의 크기도 조절할 수 없어서 일반적인 책들을 점자로 옮겨놓으면 몇배의 양이 나온다.

수학정석책은 8권의 큰 점자책이 되었고 성경책은 100여권의 점자책이 모여야 한 권의 내용을 완성할 수 있는 정도다.

이 때문에 여러 낱자를 한 칸의 점자로 표현하는 약자가 발달한 것도 점자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물론 요즈음엔 디지털 도서나 음성도서가 많아서 소설 같은 것을 볼 때는 점자를 이용하지 않기도 하지만 전문서적처럼 자세히 봐야 하는 책이나 교재는 점자로 정확히 봐야 한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듣기만 하면 맞춤법을 잘 모를 수 있어서 더더욱이 점자를 열심히 가르쳐야만 한다.

내 방 책꽂이에는 유난히 오래된 점자책들이 많다.

대학 전공서적부터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중학교 문법책까지...

교육과정도 바뀌어서 누구에게 물려줄 수도 없는 애물단지이지만 한 땀 한 땀 읽을 때마다의 기억들이 너무도 소중히 박혀있는 책들이라 버리기도 너무 힘들다.

벌써 점자를 만난지가 20년이나 되어가는데 내 실력은 그다지 많이 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늘 빠른 독서가 훌륭한 독서는 아니므로 난 오늘도 점자를 통해 책과 느리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어쩌면 점자는 남들보다 조금 느린 내 삶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좋은 책은 다 읽고 덮는 순간까지도 깊은 여운이 남는 것처럼 내가 가는 길도 꼭꼭 눌린 점자처럼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잘 살았다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친구 점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