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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7일 10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17일 14시 12분 KST

군대 내 폭력이 젊은 세대의 의식 때문이라고?

동아일보의 8월 13일자 논설인 <이등병이 장군한테 담뱃불 빌리는 군대>가 바로 그것인데 이 글을 실제 통계를 놓고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논지 전개의 시작점에서 아주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70년대 군대에 집합과 구타는 있었어도 윤 일병이 당한 것 같은 무지막지한 살인폭행은 없었다"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논설의 필자가 말한 70년대 중 베트남 파병기인 1970~1972년은 논외로 하자. 그러면 전쟁이 없었던 1973~1979년이 남는데 이때의 연평균 사망자수가 1,403명이다.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111명, 117명이 사망했으니 현재의 열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12일 강원 춘천시 102보충대에서 입영 장정들이 경례하고 있다.

군내 내 폭력을 두고 오가는 여러 이야기로 무척 뜨거운 요즘이다. 문제의식을 고취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견해가 오가는 자체는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중 한 가지 견해만큼은 매우 우려스럽다. 사고의 원인을 젊은 세대의 의식 문제로 몰아가려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젊은 세대의 잔혹함, 나약함, 공동체 의식 결여, 애국심 부족 등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실제 통계 등을 통해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마저 도출된다. 위와 같은 견해는 오로지 편견에만 근거한 손가락질일 뿐 사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단 뜻이다.

마침 여론을 주도하는 주류 언론이 며칠 전 위와 같은 견해를 논설로 실었다. 동아일보의 8월 13일자 논설인 <이등병이 장군한테 담뱃불 빌리는 군대>가 바로 그것인데 이 글을 실제 통계를 놓고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논지 전개의 시작점에서 아주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70년대 군대에 집합과 구타는 있었어도 윤 일병이 당한 것 같은 무지막지한 살인폭행은 없었다"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아래 표를 통해 쉽게 확인가능하다. 1954년부터 2005년까지의 군대 사망자 통계이다. 출처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이다.

해당 논설의 필자가 말한 70년대 중 베트남 파병기인 1970~1972년은 논외로 하자. 그러면 전쟁이 없었던 1973~1979년이 남는데 이때의 연평균 사망자수가 보다시피 1,403명이다.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111명, 117명이 사망했으니 현재의 열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대략 열두 배 정도. 당시 병력이 현재의 64만 명보다 조금 더 많았음을 감안해도, 환경적으로 열악했던 그 시절의 안전사고나 질병 등이 지금보다 많았음을 감안해도 도무지 상쇄할 수 없는 간극이다.

전쟁이 없던 시기에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리고 해당 칼럼을 쓴 이의 벗들이 매년 1,400여 명씩 군대에서 숨을 거뒀다. 이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명백하다. 가혹행위와 병영폭력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폭력과 은폐가 군대 내에 가득했음을 실제 숫자가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살인폭행은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무시한 심각한 오류다.

표 하나를 더 보자. 아래는 위의 표에 집계되지 않은 최근 10년간 군대 사망자 통계이다. 출처는 통계청이다.

보다시피 10여 년 내도록 130여 명 수준에서 안정화된 추세이고 최근엔 좀 더 줄었다. 2011년에 유독 군기사고가 많긴 했지만 특별한 경향을 갖기보단 일시적 현상으로 보인다. 위 두 표를 종합해서 유추해볼 때 군대 내 가혹행위는 근래 들어 갑작스레 심해졌다기보다는 이제야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며 비로소 치부가 전면에 드러났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사망자수 통계로 볼 땐 과거에 더 심했을 공산이 크다. 언론 통제 등으로 인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측면에서 해당 논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전제 하에서 쓰였다고 평할 수 있다. 예전의 우리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청년들은 참 잔혹하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 게임의 영향인지 잔혹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포악한 비행 청소년들이 걸러지지 않고 군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부분 외동아들로 자라 집단생활이나 힘든 훈련에 적응을 못하는 심약한 병사도 많다" 등등. 그런 후 필자는 이스라엘로부터 애국애족의 정신을 배우자고 주장하며 "한국군이 바로 서려면 '썩는다', '2년 버린다'는 식으로 군 생활을 비하하는 말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보다시피 군대 내 폭력의 책임 소재를 병역에 임하는 청년들의 의식 문제로 돌리고 있다. 즉 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의 통계에서 드러났듯 그런 건 그저 '훈장질'하고픈 기성세대의 편견일 뿐 실제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그들이 더 심했으니까. 하여 난 해당 논설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편견에만 의존한 발언, 나아가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4년 현재 시점에서의 시대적 과제는 구조가 머금은 본질적 문제, 즉 폭력의 대물림을 통한 확대재생산을 치유하는 데 있다.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병영 문화 개선이 핵심 화두란 소리다. 지금 각계각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토론의 대부분 또한 정확히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군대 내 인권 담당기관을 군 내부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와 연계해서 운영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 또한 이런 배경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주요 언론의 논설위원이 세대론을 들이미는 걸 어찌 이해해야 할까.

이 토론에 참여하는 기성세대의 자세가 '우리 땐 괜찮았는데 너흰 왜 그러니?'여선 대단히 곤란하다. 실제 통계로 보았듯 그들의 시대 또한 전혀 괜찮지 않았을 뿐더러 그와 같은 접근으로는 청년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논설의 필자는 자기 땐 심한 구타 후에 돌아서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돌봐주는 정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사실 그가 정말 우리 사회의 '어른'이라면 이를 통해 구조적 병폐를 지적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메커니즘을 통해 폭력을 서로 묵인하고 내면화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지금껏 세습되어 오고 있으니까. 서로 눈감아 주며 대물림하다 문제가 생기면 은폐해온 게 병영폭력 구조의 핵심이지 않은가.

난 기성세대의 경험을 존중하는 입장이다. 하여 그들이 군대에서 겪었던 폭력의 경험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놓길 요구하는 바이다. 그렇게 해야 토론이 구조적 병폐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그들이 진정 '어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터무니없는 손가락질은 그만 거둬주길 바란다. 지금의 청년들이 애국애족의 정신이 부족해 군인으로서의 자긍심 없이 잔혹행위만을 일삼는다고? 그런 논리면 열 배 이상 죽어나갔던 70년대의 청년들은 애국애족의 정신이 지금 청년에 훨씬 못 미쳤다는 소리인가? 결코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버지들의 투철한 애국심을 아들로서의 우린 기꺼이 인정하고 또 진심으로 존경한다.

'썩는다', '2년 버린다' 같은 비하적 발언이 없어져야 한국군이 바로 선다고? 이 또한 선후관계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보기엔 한국군이 바로 서야 그리 비하하는 발언이 사라진다고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비하할 건수를 하나하나 제거해나가서 군을 바로 세우는 데 있지 비하하는 사람더러 손가락질하는 데 있지 않다.

군대 내 폭력은 세대를 넘어선 모두의 문제이다. 여기선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도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구조적 병폐를 뜯어고치기 위해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지 불필요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케케묵은 세대론을 펴며 손가락질을 하는 건 오히려 판을 깨는 행위이다.

우리에겐 더 나은 시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훨씬 풍족한 시대를 선사해주었듯이, 우리 세대 또한 우리의 아들딸에게 더 나은 시대를 선사할 의무가 있단 뜻이다.

그러니 간곡하게 당부하고 또 진심으로 부탁한다. 제발 손가락질하지 말아 달라. 그래야 우리가 우리 세대의 의무를 다음 세대에 다할 수 있다.

필자 홍형진 페이스북 주소 : https://www.facebook.com/hyungjin.hong.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