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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07일 10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07일 14시 12분 KST

왜 사케는 되고, 막걸리는 안 되는가?

서너 달쯤 납품을 하다 보면 꼭 품질이 크게 나빠집니다. 재료도 적게 쓰고, 숙성 기간도 줄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량 생산 브랜드 외에 소규모 OEM 계약 시에는 저희가 막걸리 레시피를 제공하고 꼭 조건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비용을 줄이고 공정을 단순화한다는 명분으로 맛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객들이 품질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는데도, 제조업체 측은 자신들이 더 전문가라며 우깁니다. 이러니 어떻게 외국인은 고사하고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막걸리를 사랑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한겨레

8월6일(수)자 <뉴욕타임스> 국제판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실었습니다. 일본 사케 제조업체들이 서구 시장을 뚫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오랜 전통의 사케 업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술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 심지어는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설득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기사의 중심인물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텐산(天山)주조의 젊은 대표 시치다 켄슈케(七田健介)입니다. 텐산주조라면 1835년에 설립된 규슈(九州) 사가현의 사케 명가입니다. 시치다 사장은 6대 사장이고요. 그는 사케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절박한 위기감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사케 산업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뭔가 변하지 않으면, 이 산업은 20~30년 내에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

이 기사에 유독 눈길이 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막걸리 시장과 워낙 비교가 돼서입니다. 최근에 국내 막걸리 제조업체들의 눈 먼 이기심 몇 가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 지역 영세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어렵사리 전통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고령의 부부가 어렵게 만든 명주를 택배로 보내주는 곳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 곳이야말로 월향이라는 막걸리 전문점 탄생의 영감을 받은 곳들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좀 된다, 그 덕에 사람 입에 오르내린다 싶은 곳들은 다릅니다. 막걸리 열기가 뜨겁던 시절 돈도 만졌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았던 터라 시장이나 소비자, 심지어 협력업체에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막걸리 유행이 한풀 꺾인 후에도 안하무인입니다. 이런 제조업체들은 실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부나 대기업 돈을 투자받았거나 투자받을 예정이었던 곳일수록 더 합니다. 막걸리 산업이 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투자나 계약 전문가들만 끌어들인 업체일수록 더 합니다. 이런 업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막걸리를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최근 직접 경험한 몇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 월향에서 판매하겠다고 지역의 이름 난 막걸리 제조업체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의 막걸리 공급 계약을 체결할까 했습니다. 저희가 꼭 담았으면 하는 핵심 조항 서너 가지만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편하신 대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정부 권유도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서, 계약서 문구도 갑을이라는 표현 대신 A와 B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 돌아온 계약서 조항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계약서 자체에 막걸리를 제조해 납품하는 곳이 갑으로 돼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파는 월향은 을이고요.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했습니다. 요구 사항이 무지막지했습니다. 을은 갑에게 5천만원 보증금을 보내거나 보증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배송 및 일체의 비용을 모두 을이 대야 합니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을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매달 배송비 포함 900여만원어치 이상을 팔아야 하고, 제품은 한 달에 두 번에 걸쳐 받습니다. 제품을 받은 지 2일 이내에 현금 결제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월향으로서는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도, 생산공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조항까지 삽입돼 있었습니다. 이건 그냥 갑이 아니라 슈퍼 갑이고, 월향은 을이 아니라 병이나 정인 계약이었습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막걸리를 누가 받아서 고객에게 정성껏 팔고 싶을까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라고 알리고 싶을까요? 정나미가 딱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몇몇 업체로부터는 꽤 오래 전부터 제품을 납품 받아 고객들께 팔아왔습니다. 그 업체가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가 아닙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성껏 만든 막걸리라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런데 서너 달쯤 납품을 하다 보면 꼭 품질이 크게 나빠집니다. 재료도 적게 쓰고, 숙성 기간도 줄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량 생산 브랜드 외에 소규모 OEM 계약 시에는 저희가 막걸리 레시피를 제공하고 꼭 조건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비용을 줄이고 공정을 단순화한다는 명분으로 맛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객들이 품질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는데도, 제조업체 측은 자신들이 더 전문가라며 우깁니다. 이러니 어떻게 외국인은 고사하고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막걸리를 사랑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 저희가 사람을 써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막걸리 제조 과정은 그렇게 멋진 작업이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발효 과정과 환경을 늘 점검해야 하는 고단한 일입니다. 더욱이 막걸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서 소비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요. 그보다는 눈 먼 돈을 투자받을 궁리만 하다 공장은 내팽개치고 맙니다. 막걸리에 관심 있다는 분치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투자하겠다는 분을 여태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말뿐입니다.

● 오늘자 신문에 난 꽤 이름난 막걸리 제조업자 한 분의 인터뷰는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분은 막걸리 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사업에 지장이 많다고 불만을 터트리셨는데요. 아마 그 분이 어떤 대기업과의 계약이 예정돼 있다가 취소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분 입장에서야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막걸리 산업이 예전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나 사람이 덜 유입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나 사람이 지나치게 흘러들어서입니다. 그 때문에 돈과 인기에 눈을 뜬 막걸리 제조업자들의 기업가 정신이 망가져서입니다. 대신 소비자와 시장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죠. 벤처가 진짜 잘못 되는 경우는 자원이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넘쳐날 때입니다. 막걸리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텐산주조 기사를 읽으면서 부러웠던 것은 단순히 일본주의 세계화 과정만이 아닙니다. 그거야 사케 양조장의 역사가 백 년 이상씩 돼 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브랜드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수도 있죠.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막걸리 판매에 관심이 많은 저나 월향이 대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국내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일관된 품질의 막걸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죠. 각 지역별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차별화된 막걸리들 말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막걸리를 팔기 전에 늘 시음을 하는 저로서는, 아직까지는 우리 막걸리 제조업체들이 영혼을 바쳐 막걸리를 빚는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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