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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04일 06시 04분 KST

주민번호 변경? 하늘의 별따기!

한겨레
카드사 영업정지 첫날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를 일으킨 케이비(KB)국민, 롯데, 엔에치(NH)농협카드 3사에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시작된 2월 17일 오전 서울 내수동 국민카드 본사 입구에 관련 내용을 공지하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해당 카드 3사는 영업정지 기간인 5월16일까지 신용카드 신규 회원모집과 대출, 약정 등이 금지된다.

‘유출 피해땐 변경 허용’ 무용지물

‘생명·재산 큰 피해 때’로 한정

기준 모호하고 피해입증 어려워

OECD “유출 순간 인권침해”

“유출만으로도 번호 바꿀 수 있어야”

회사원 최영민(32)씨는 3년 사이에 주민등록번호를 ‘공식적’으로 두차례 ‘털렸다’. 지난 1월 케이비(KB)·엔에이치(NH)·롯데 등 신용카드 회사 3곳이 1억400만건에 이르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냈을 때도, 2011년 7월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3500만건이 유출됐을 때도 최씨 주민번호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달 31일 정부는 주민번호가 유출·도용·변조돼 △생명·신체를 해치거나 △중대한 재산 피해를 입을 것이 확실할 때 △당사자 신청이 있으면 △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를 변경할 수 있게 하겠다며 ‘개인정보 보호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번호 오류 등을 정정할 때만 바꿀 수 있었는데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중대한 재산 피해가 확실한 경우에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유출 피해를 입은 저 같은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최씨는 ‘중대한 피해’ 가능성을 항상 안고 살지만, 정부 대책을 보면 실제로 피해를 보기 전까지는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민번호도 1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를 포함해 이미 여러 차례 유출됐다. 2006년 7월에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투표를 앞두고 신분 확인을 하는 박 대통령의 주민번호 13자리가 통째로 한 신문 사진에 박혀 전국에 배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변경 기준으로는 박 대통령도 당장 ‘구제’받기는 힘들다.

정부는 조만간 세부 기준을 마련하겠다지만 큰 틀은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출만으로 변경을 허용하면 사실상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를 바꿔줘야 하는데다, 범죄자 신분 세탁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엄격한 심사도 필요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엄격한 조건을 달아놓은 것은 결국 주민번호 변경을 안 해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중대한 재산 피해라는 기준도 모호하다. 100만~200만원 정도의 금액은 국가에서 보호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냐”고 했다. 이 때문에 변경 기준을 허용 가능한 경우를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신분 변조, 범죄 이용, 채무 면탈 등에 이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변경 가능하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인권법)는 “주민번호 변경 ‘절대 불가’에서 ‘변경 가능’으로 입장을 바꾼 것 자체는 일단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개인정보는 ‘유출 순간’에 이미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신훈민 변호사도 “주민번호는 주소, 전화번호 등과 함께 엮여 있다. 유출만으로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주민번호 폐지 등을 포함한 ‘전면 개편’ 논의는 공청회(9월)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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