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4년 08월 01일 18시 12분 KST

"홍준표가 날 조폭 두목으로 만들었다"

한겨레신문

▶ 이미 24년 전에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 실형을 살았습니다. 세인의 기억에서도 거의 잊혀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하다고 합니다. 검사가 공명심에서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기소한 검사를 상대로 진실을 가리자며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검사는 바로 홍준표 경남도지사입니다. 그는 정말 억울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러시아 가요 <백학>의 장중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수십대의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아스팔트를 줄지어 달린다. 짙은 노란색 은행나무 낙엽이 검은 타이어에 묻어나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흩날린다. 멈춰진 승용차가 열리며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들이 도열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1990년대 중반 친구인 검사와 조직폭력배 두목의 이야기를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민 드라마’가 됐다.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된 당시 검사 홍준표(60)는 ‘국민 검사’라고 불리면서 정계에 진출해 성공하며, 경남도지사로 미래의 대권까지 노리고 있다. 드라마의 조폭 두목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여운환(61)씨는 실형을 살고 나와 광주에서 어엿한 기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검사도 조폭도 모두 과거의 주인공인 듯했다.

그런데 홍 검사에 의해 국제-피제이(PJ)파 두목으로 기소돼 실형을 살고 나온 여씨가 지난 4월 돌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모래시계에 갇힌 시간>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홍 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보자는 것이다.

비록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긴 했으나, 당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분위기를 타고 홍 검사가 자신에게 조폭 ‘두목’이라는 누명을 씌워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다는 주장이다.

홍 지사는 1995년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라는 책을 통해 10년간 범죄와 거친 싸움을 벌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책에는 여씨의 검거와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수록돼 있다.

‘모래시계 검사’와 ‘조폭 두목’의 악연은 끈질기다. 자신을 구속시킨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3년이 지난 지금, 진실 확인 작업을 공개적으로 제의한 여운환씨.

여씨는 홍 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과거 홍 지사님께서 광주에서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오랜 기간에 걸쳐 저를 수사하고 기소하여 실형을 받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은 오래전에 이미 났지만 아직도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 지사님도 그동안 저와 관련된 내용을 담아 책을 썼고, 저 역시도 늦게나마 책을 쓰게 됐으니 과연 어느 쪽이 진실과 양심에 가까운지를 공개토론을 통해 가려보고 싶은 마음 너무 간절하기에, 감히 공개토론을 요청하고자 합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홍 지사 쪽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여씨는 각 언론사에 자신의 책과 홍 지사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 등을 보냈다. 1990년대 초반 서울지검을 출입했던 기자는 여씨의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커졌다.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려는 노회한 행동일까, 아니면 정말로 억울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중순 서울의 인사동 거리에서 처음 만난 여씨는 ‘조폭 두목’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사업가’ 인상이었다. 말투도 상냥했다.

“이대로 진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늘 가족들에게 떳떳한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낙인찍히는 이가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해요.

그는 “비록 사법부의 판단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남아 있다고 봅니다.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식과 친척들은 나에게 씌워져 있는 ‘조폭 경력’을 엄청 부담스러워하고 있어요. 나 스스로는 참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친인척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여씨는 1991년 당시 호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피제이파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4년의 징역을 살았다. 출소해 사업가로 살던 여씨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최대 권력 스캔들이었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무고죄와 경매방해죄가 추가되어 1년2개월을 더 사는 등 모두 8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 2005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홍 검사로 인해 조폭 ‘두목’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이용호 게이트에도 억울하게 휩쓸려 들어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2001년 9월25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이용호(왼쪽)씨와 여운환씨가 증인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홍 지사는 검사 생활을 마치며 쓴 자신의 책 서문에서 “검사 생활 11년 동안 내 청춘을 바쳐 이 사회의 부정과 비리와 맞서 싸우며 하루라도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고위 권력자의 비리를 추적하다가 이를 밝혀냈을 때 느꼈던 환희도, 부당한 압력에 단호히 맞서서 내 전부를 내던져 이를 이겨냈을 때의 쾌감도 이젠 아스라한 기억의 언덕으로 넘어가 버렸다.

나는 이제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집착하던 이 사회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검사는 아닌 것이다”라고 썼다. 홍 검사에게 여씨는 사회 정의 수호를 위해 제거돼야 할 대상이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씨에 대해 알아야 했다. 여씨는 자신의 책에서 광주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면장을 지냈고, 정미소와 운수업을 하는 지역의 유지였다. 고향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덕비가 있다고도 했다.

어릴 때 공부를 잘했으나 중학 시절부터 불량서클에 들어가 거리를 맴돌았다. 그때 같이 어울렸던 주먹이 서방파 두목이 된 김태촌(사망)이었다. 건달끼리 싸움이 붙으면 앞장서서 활약했던 여씨는 21살 때 생선회칼을 휘둘러 상대방을 크게 다치게 했다. 피해자와 합의하고 집행유예로 40일 만에 출소한 그는 그길로 건달 생활을 청산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여씨가 훗날 조폭 두목으로 낙인찍히는 불행의 씨앗이 됐다.

야쿠자 비디오와 ‘식칼 배달 사건’의 진실은

이후 집에서 마련해준 자금으로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소규모 공장을 운영한 그는 전남도지사 비서를 하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 뒤 처가에서 운영하던 4층짜리 여관을 맡아 운영하던 여씨는 대규모 유흥주점도 하다가 자식들이 성장하자, 유흥업에서 손을 떼고 사업가의 길을 갔다고 한다. 목포의 관광호텔도 인수했고, 건설회사도 설립해 건축자재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는 ‘성공한 건달 출신’이 됐다.

“당시 광주지역 조폭 두목들이 한때 같이 건달질 하던 후배였고, 저를 친형처럼 대접했어요. 그러나 그 사회의 생리를 알기에 몸조심을 철저히 했어요. 폭력세계에서 떠난 이후 단 한건의 입건도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건달 후배들의 인사는 철저히 외면하지 못했어요. 그들에겐 제가 성공의 모델이었고, 기준이었어요.”

여씨는 1991년 무렵 광주지검으로 부임한 홍준표 검사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홍 검사는 노태우 정권 초기 서울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 사건을 수사했고, 그 사건에 연루된 고위 인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광주지검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예회복을 노리던 홍 검사는 광주 토착 조폭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그 중요 대상이 여씨였다. 홍 검사는 공교롭게도 여씨와 한 아파트에 살았다. 홍 검사는 5층, 여씨는 15층이었다. 여씨의 아들과 홍 검사의 아들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1997년 10월 13일자 17면

홍 검사는 여씨를 국제-피제이파 ‘두목’으로 지목하고 내사를 벌였다. 여씨가 조직원 130명을 거느리며 광주 충장로 일대를 장악한 광주·전남지역 최대 폭력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여씨가 프랑스로 출장 간 사이 홍 검사는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소식을 들은 여씨는 곧장 귀국해 홍 검사에게 전화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홍 검사는 “지금 광주로 내려오면 바로 구속되니 조금 있다가 정리되는 대로 내려오라”고 했다는 게 여씨가 책에서 내세운 주장이다.

어쨌든 여씨는 서울 방배동 한 아파트에 몸을 숨겼다. 그사이 홍 검사는 기자들에게 “여씨가 얼마 전 우리 집에 식칼을 보내와 협박했다”고 공개하는 등 언론을 통해 여씨를 조폭 두목으로 기정사실화해 놓았다는 것이다. 검사에게 식칼을 보낸 조폭 ‘두목’의 이야기가 세간에 숱한 화제를 낳았음은 물론이다.

여씨는 ‘식칼 배달 사건’도 실제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독일제 명품 주방용 칼세트를 수입한 여씨의 가까운 친구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추석 선물용으로 사줄 것을 부탁해 130세트를 사서 명함까지 붙여 주변에 돌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홍 검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홍○표’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여씨의 운전기사가 아파트 경비원에게 맡겨 놓았고, 경비원은 이름을 착각해 홍 검사 집에 배달했다는 것이다. 이를 다음날 알아차린 운전기사는 홍 검사 집에 찾아가 선물을 다시 찾아왔는데, 홍 검사가 왜곡해 알렸다는 설명이다.

당시 검찰은 여씨가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과 함께 1988년에 일본으로 가서 야쿠자와 형제 결연식에 참석했다며 그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도 공개했다. 비디오에는 여씨가 한·일 조직폭력배 가운데 앉아 행사에 참여하는 광경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홍 검사는 일본 야쿠자의 형제 결연식에는 이를 보증하는 의미로 다른 폭력조직의 간부를 초청하는데, 여씨 등을 초청해 폭력조직의 국제적 연대를 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서도 여씨의 설명은 다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가수 남진씨가 민속씨름을 일본에 알리는 행사에 공연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오사카에서 천하장사대회가 열렸고 씨름협회 관계자들, 남진씨 등과 함께 건너갔죠. 어느 날 일행들과 한 일본인 가정집에 따라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씨름협 부회장이던 이강환씨와 일본 야쿠자 두목 간의 형제 결연식이었어요. 물론 이강환씨하고는 전에 한번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죠.” 당시 촬영된 비디오에는 여씨는 물론 씨름선수 출신 개그맨 강아무개씨도 등장해 대중들에게도 제법 유명한 장면이 됐다.

일본행 권유한 가수 남진의 변호

결국 가수 남진씨는 여씨 사건이 불거진 직후 전남도경에 와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씨가 일본에 간 것은 나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고 여씨를 변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비디오테이프는 당시 여씨가 조폭 두목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됐고, 서울의 아파트에 숨어 지내던 여씨는 전화 추적을 한 수사원들에게 붙잡혀 구속되기에 이른다.

드라마 '모래시계'

여씨의 재판부는 여씨에게 조직폭력 두목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고, 두목이 아닌 ‘자금책 겸 두목의 고문간부’였다고 실형을 선고했다. 여씨는 “국제-피제이파의 두목으로 활동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자, 법원은 이상한 명칭으로 판시했어요. 이런 명칭은 법원 판결상에도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자금책’이라고 하면 그런 조직에 돈을 준 적이 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들에게 돈 한 푼도 준 적도 없고, 이에 대한 증거 역시 아무것도 없었어요. 검찰은 국제-피제이파라는 폭력조직의 두목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못했어요.”

실제 여씨는 범죄단체 국제-피제이파의 ‘수괴’로 이 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으나 1심 판결문을 보면 그가 두목이라고 진술한 증인들의 증언을 믿기 어렵다며 두목이라고 인정할 아무 증거가 없다고 밝히고 이 부분에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서 단체를 구성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가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기에 이른다.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이긴 하나 두목은 아니라는 취지다. 여씨는 나아가 판결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왜 자신이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인지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여씨는 책에서 ‘모래시계 검사’로 묘사된 홍 검사가 ‘조작된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책에서 주장한 내용들이 모두 진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진실을 가려보자는 여씨의 공개토론 제안을 거절한 홍 지사는 <한겨레>의 반론 요청에 대해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비서진을 통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