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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07일 10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06일 14시 12분 KST

쓰레기는 쓰레기로 끝나지 않는다 | 버려진 물건들, 그 이후의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때 들고 다니던 학원 가방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치원 책가방은 또 어디로 갔을까? 케냐에 오지 않았더라면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질문들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케냐에 왔을 때, 친하게 지낸 아이는 내 카메라를 보고 자신의 사진을 하나 찍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포즈를 잡아보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가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가지고 와서 뿌듯하게 함께 찍어줬으면 했다. 대체 무슨 가방이길래 그러나 하고 가방을 쳐다보니 가방에는 선명한 까만색으로 "OO 어린이집"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나이로비에서 중고물건들이 많이 거래되는 시장에 가면 영어는 물론 한국어가 쓰여 있는 옷, 신발 등의 물건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아프리카와 케냐가 특수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버려진 물건들, 그리고 빈곤과 함께하는 삶은 세계 도처에 있지만 저는 그런 삶에 대해서 나이로비에 와서야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실명이 아닙니다.

고로고초의 쓰레기장 (사진출처: AFP )

쓰레기가 생계가 될 때

2010년에 이어 2011년, 다시 케냐를 방문했을 때, 고로고초(Korogocho)라는 곳에 갈 일이 생겼다. 나이로비에는, 키베라(Kibra 또는 Kibera), 마타레(Mathare), 단도라(Dandora) 등 보통 슬럼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빈민촌들이 있는데 고로고초는 단도라 안에 속한 동네이고, 나이로비의 쓰레기들이 도착하는 종착지 같은 곳이다. 케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쓰레기 처리 방식은 물론 집 안의 뜰이나 마을 공터에서 태워버리는 방식이지만, 도시화와 중산층의 증가로 그런 방식으로만은 쓰레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쓰레기 수거 차량들이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서 가져가는데 그 하치장들 중 가장 큰 곳이 바로 고로고초이다.

그곳에서 나는 쓰레기가 바다처럼 넓게 깔린 그리고 빌딩처럼 높게 쌓여 눈 앞을 가로막는 풍경을 보았다. 쓰레기가 깔린 바닥으로 내 발은 푹푹 꺼졌고,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를 찾는 커다란 새들이 내 주변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필요한 물건들, 그리고 다시 팔 수 있는 플라스틱, 깡통, 비닐 등의 물건들을 찾으면서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고 있거나 말거나, 나 같은 외국인이나 기자들이 한 번 정도 슬쩍 들여다 보고 사진을 찍어가는 것에 익숙했던 그곳의 사람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눈 앞에 쌓인 쓰레기들을 뒤적거리면서 늘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차마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었고, 수첩을 꺼낼 수도 없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서도 메모를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을 마치 관광지인 양 나를 안내한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야속했고, 또 이곳의 존재를 몰랐던 나와 이제는 이곳의 존재를 알아버린 나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느꼈다. 몰랐던 것도 문제이지만, 안다고 해서 뭔가 변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고로고초에서 잠시 쉬고 있는 친구들 (사진 출처: AFP)

쓰레기가 쓰레기만은 아닌 삶

고로고초에 갔을 때보다 더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수요일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2014년 1월 1일, 새해의 첫 수요일, 나는 가끔 찾아가는 수녀원 근처의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내 앞에 정말 작은 몸집의 두 여인들이 자기 몸집의 두 배가 되는 커다란 푸대를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는 종종 멈춰서 뭔가를 주워서 집어넣기도 하고, 또 집집마다 내어놓은 초록색 쓰레기 봉지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 이 사람들은 쓸만한 물건을 찾아서 가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어쩌다 보니 인사까지 한 후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고 또 걸은 이들이 도착한 곳은 새로 지어지는 고급 주택단지가 있는 곳 근처의 작은 공터였다. 자그만 도랑을 건너 갈대 같은 수풀들이 우거진 사이에 있는 그 공터는 수요일마다 플라스틱이나 깡통 등을 모아 시장에 갖다 파는 사람들이 일을 마친 후에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다. 커다란 푸대를 플라스틱으로 가득 채우면, 보통 5-6kg 정도인데, 1kg에 10실링(115원 정도)을 받고, 깡통이나 고철의 경우에는 1kg에 15실링(170원 정도)이란다. 내가 집에서 그곳까지 갈 때 쓰는 차비가 기본이 20실링인데, 분명 한참을 걷고 또 걸어와서, 다시 또 걸으면서 플라스틱과 깡통들을 모으는 사람들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시간이 되는 수요일 아침이면 그 공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또 그 물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들이 챙기는 것은 비단 플라스틱이나 고철만이 아니었다. 쓰레기 봉투를 뒤지다가도 귀여운 동물 그림, 테엽을 감으면 윙윙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장난감, 조그만 플라스틱 자동차 등이 나오면 품 속에 잘 챙겨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간다. 그들은 모두 집에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집에서 기다리는 어린 자식들이나 동생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인가, 어떤 젊은 엄마는 라이온 킹에 나오는 꼬마 사자 심바인 듯한 그림이 그려진, 그러나 꼬리 부분은 부서진, 나무 판을 내게 보여주며 "For my daughter! (우리 딸 줄 거야!)"라면서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십대의 소년들은 버려진 이어폰이나 전자제품들을 어떻게든 수리해서 사용해 볼 생각에 따로 소중하게 담아두고, 흥미를 끄는 물건들은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잘 모르면서도 호주머니 속에 챙겨 넣는다. 모으면 상품으로 바꿔주는 마가린 통의 스티커들을 떼서 챙기는 엄마들도 있다. 음식도 예외가 없다. 엄마들은 상한 빵이나 음식을 발견하면 집에서 키우는 닭의 모이로 쓰겠다면서 따로 챙긴다. 소년들은 땅콩 버터가 남은 통이나 과자 부스러기가 들어 있는 봉지를 찾아서 남은 것을 탈탈 털어 먹기도 한다. 가끔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물건이 나오면 서로 어떤 물건인지 추리를 하기도 하고, 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무리에서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열다섯 살 소년 카란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런저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다가 혹시 이 친구들이 물건들을 모아서 공유하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까 하여, "이걸 모아서 다른 동료들과 공유하니?" 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럼 이건 다 네 거니?" 했더니, "아냐. 이건 내 거 아냐. 이건 우리 가족들 거야." 라고 대답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가난과 빈부격차에 유난을 떠는 것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로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그들의 '부유한 쓰레기 봉투'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물건 하나를 버릴 때마다 생각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 손을 떠난 이후에 그것을 다시 만질 사람들, 이후에 그것이 도착할 공간과 갖게 될 또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물건들, 그 이후의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때 들고 다니던 학원 가방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치원 책가방은 또 어디로 갔을까? 케냐에 오지 않았더라면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질문들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케냐에 왔을 때, 친하게 지낸 아이는 내 카메라를 보고 자신의 사진을 하나 찍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포즈를 잡아보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가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가지고 와서 뿌듯하게 함께 찍어줬으면 했다. 대체 무슨 가방이길래 그러나 하고 가방을 쳐다보니 가방에는 선명한 까만색으로 "OO 어린이집"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물론 그 밑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조합의 전화번호가 있었고, 가방 뒤에는 아마도 이전에 이 가방을 들고 다녔을 것으로 추측되는 한 아이의 이름이 한글로 삐뚤빼뚤 쓰여있었다. 나이로비에서 중고물건들이 많이 거래되는 시장에 가면 영어는 물론 한국어가 쓰여 있는 옷, 신발 등의 물건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사은품으로 나누어주는 비매품인 물건들, 그리고 대형 마트의 이름이 찍힌 장바구니와 비닐봉지 가방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가끔 버스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쳐다보면 OO피아노 학원, OO 태권도 학원, OO 영어교실 등 나만이 읽을 수 있는 한글을 발견할 때도 많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물건들의 삶이 이렇게 국경을 넘어서도 이어진다.

가방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이 가방이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무슨 글씨가 쓰여 있는지를 설명해주니, 아이는 너무나 기뻐했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도 궁금했었고, 또 친구의 나라에서 온 가방이라고 하니 너무 반가웠던 것이다. 그리고 전보다 더 그 가방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가지고 다녔다. 1년이 지나 다시 케냐에 돌아왔을 때, 아이는 또 다른, 하지만 조금 더 큰 한국의 유치원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키가 자란 만큼 그 가방이 작아졌기 때문에 아이의 엄마가 다른 가방을 사다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의 그 작은 유치원 가방은 이제 막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옆집 아이의 등에 메여 있었다. 그 가방은 그렇게 출발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버려짐으로써 끝나는 줄 알았던 물건들의 삶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이웃 간의 공유재가 되기도 하고, 또 처음 사용했던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사연들과 사회들을 거친다. 버렸지만, 또 버린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물건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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