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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8일 11시 55분 KST

FCC 망중립성 개정안 : 인터넷에 급행차선이 생긴다고?

Getty Images

택배 운전기사 A씨가 있다. 그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오늘도 도로가 꽉 막힌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차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줄지어 서 있는 차량 행렬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있다. 거대 물류기업 DHL의 마크가 선명하다. DHL은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추가로 지불하고 자신들만의 전용차로를 달리고 있다. ‘급행 차선’이다.

여기에서 고속도로를 인터넷으로, 자동차 행렬을 데이터 트래픽으로 바꿔보자. DHL은 구글이나 아마존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콘텐츠 기업이 각각 돈을 지불하고 자신들만의 ‘인터넷 급행 차선’을 달린다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 모르게 생겼다.

망중립성 원칙이 무너졌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5일(현지시각) ‘망중립성 정책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핵심은 통신사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더 빠른 회선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급행차선’이 생기는 셈이다. 앞으론 인터넷망에 서열이 매겨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망중립성 원칙이란 인터넷 망(Network)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망을 관리하는 KT나 SK 등 통신사(ISP,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들이 유튜브의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전송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

(디지털타임스의 강희종 기자는 ‘망중립성의 개념과 쟁점’을 친절히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의 더애틀랜틱은 지난 4월 망중립성 논란의 역사를 다뤘다.)

이 원칙에 따르면, 통신사들은 데이터 패킷의 내용이나 기기의 종류에 따라 트래픽을 차별해서도 안 된다. 사진이나 동영상, 웹페이지, 음악파일, 음성파일 등이 서버에서 인터넷망을 타고 이용자의 컴퓨터나 모바일기기로 전송될 때, 통신사가 트래픽의 전송속도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인터넷 그대로다.

그러나 보도를 종합하면, FCC의 이번 개정안은 이 같은 원칙을 훼손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으로는 인터넷이 우리가 알던 그 인터넷이 아닐 수 있다는 것.

FCC는 이날 인터넷 통신망 사업자가 특정 콘텐츠 서비스를 막거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차별할 수 없다는 ‘오픈 인터넷’ 또는 망중립성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변했지만, 사실상 이 원칙이 깨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등의 콘텐츠 사업자가 컴캐스트, 버라이즌, AT&T 같은 인터넷 통신망 사업자에 돈을 더 내면 빠르고 특별한 회선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콘텐츠를 전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5월15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매셔블은 FCC의 이번 결정을 앞둔 14일 해설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대기업들이 더 빠른 회선을 사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면, 통신사들은 모든 이용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결을 제공할 동기를 잃게 된다. 그렇게 망의 전체적 속도가 느려지면, 돈을 지불하고 안정적 속도로 서비스 되는 넷플릭스와는 달리 (지불할 여력이 없는) 신생 기업들은 느려터진 망 때문에 (소비자들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매셔블 5월14일)

통신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통신사들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토렌트 서비스 등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망에 부하를 준다고 주장해왔다.

통신사들은 이런 콘텐츠서비스기업(CP)들이 투자를 분담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깔아놓은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낸다.

따라서 통신사들은 망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나 이용자들 때문에 나머지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트래픽을 관리하고, 상황에 따라 특정 서비스나 콘텐츠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서 또다른 쟁점이 등장한다.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다.

더 큰 문제는 통신사들이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과정에서 통신을 감청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통신사들은 트래픽 관리라는 명분으로 수천억원을 들여 DPI(심층패킷검사, Deep Packet Inspection) 장비를 구입했다. 통신사들은 이 장비로 이용자들이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다. 패킷의 헤더만 들여다본다는 게 통신사들 주장이지만 패킷의 내용이나 패턴까지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통신사들이 내가 보낸 메일을 들여다 볼 가능성은 없을까. 내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고 누구와 메신저를 하고 어떤 게시판에 어떤 글을 남겼는지 누군가가 모니터링 할 가능성은 없을까. 통신사들은 이미 그런 기술을 갖고 있고 이용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2012년 7월15일)

한국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2년, 카카오톡 보이스톡이 출시됐다. 통신사들은 가입자의 요금제에 따라 이런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를 제한했다. 3만5000원 요금제 이용자는 쓸 수 없고, 5만5000원 요금제를 쓰는 이용자는 쓸 수 있게 하는 식이었다.

통신사들은 ‘망에 과부하를 준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런 방침은 망중립성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액 통신요금에는 일정량의 데이터(500MB, 1GB 등)를 쓸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고, 데이터를 어디에 쓸 것인지는 이용자의 선택인데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서비스 접근 자체를 막는 건 부당할 뿐만 아니라 자의적 기준일 뿐이라는 것.

통신사들이 음성통화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유사 서비스'인 mVoIP을 차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마찬가지로 '트래픽 과부하'를 유발한다고 통신사들이 주장하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요금제에 따라 차단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mVoIP 트래픽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

이번 FCC의 개정안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망중립성 원칙이 다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망중립성 개정 움직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인터넷 정책 흐름은 줄곧 미국을 따라왔다. 최근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잇따라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했는데,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와 같은 서비스 이용에는 제약을 두면서 망중립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략)

인터넷 콘텐츠 회사들의 서비스는 무제한이 아니다. 대표적 사례는 카카오톡의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다. 각 통신사별로 mVoIP에 쓸 수 있는 데이터량에 제한을 둔 것이다. SK텔레콤은 350메가바이트(MB), KT과 LG유플러스는 600MB로 제한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제한이라는 말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조선일보 5월16일)

과거 방통위는 통신사들이 mVoIP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줬다. 논란 끝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말, 관련 기준을 새로 마련해 발표했다.

이 ‘합리적 트래픽 관리기준’은 망중립성 원칙을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미래부는 요금제와 관계없이 카카오톡 보이스톡 같은 mVoIP을 쓸 수 있도록 했지만, 위의 조선일보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통신사가 이용량을 제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

FCC 개정안은 이대로 확정될까?

FCC의 개정안은 이제 전체회의 표결을 거쳤을 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FCC는 여론 수렴 과정 등을 거쳐 연말쯤 새 정책을 확정할 계획이다. 아이뉴스24의 김익현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FCC 전체 회의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여전히 톰 휠러 위원장 앞엔 만만찮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콘텐츠 업계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 간의 이해관계가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 페이스북 등은 FCC의 새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콘텐츠 사업자인 넷플릭스 역시 ‘강한 망중립성 원칙’을 요구하면서 FCC를 압박하고 있다.

시민단체나 인터넷 이용자들의 집단행동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등이 회원사로 있는 인터넷연합은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새 망중립성 반대 운동을 일으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략)

망사업자들의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컴캐스트 등은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타이틀2로 분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는 톰 휠러 위원장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FCC를 압박하고 있다. (아이뉴스24 5월16일)

전체회의가 열리던 15일, FCC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인터넷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더버지가 이날 FCC 회의 직후 전한 각계의 반응에 따르면, 아마존 같은 콘텐츠 기업들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통신사들은 조심스럽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종 결론은 어떻게 내려질까?

분명한 건, 인터넷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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