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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30일 10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30일 14시 12분 KST

골목을 여행하는 법

만약 당신이 사진기를 들고 골목을 찍고 있으면, 불편한 눈빛으로 경계하듯 바라보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낯선 골목을 사진 찍거나 구경을 할 때, 만약 주민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거든 먼저 "안녕하세요, 골목이 참 예쁘네요." 하고 가벼운 인사라도 건네어보길 권유한다. 그게 골목의 매너이자, 여행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설재우

각박해지고 메마르는 인심과 일상에 지쳐서일까? 요즘 여기저기서 골목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비단 내가 살고 있는 서촌만의 얘기는 아니다. 책으로, 잡지로, 영상으로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그 동안 소외되고 방치됐던 골목이 조명되고 있다. 그야말로 골목의 재발견이다.

골목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보면 묘한 포근함과 추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담장에 적힌 짓궃은 낙서들, 바람에 펄럭이며 햇살을 듬뿍 받고 있는 빨래들, 골목 사이 집집마다 놓인 화단과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정겨운 느낌으로 우리와 동행한다.

골목길의 서정성은 청춘보다는 동심에 가깝다. 골목은 누구나 그러하듯 나에게도 역시 어릴 적 아이들과 술래잡기, 숨바꼭질을 하던 주무대였다. 그러나 키가 자라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골목은 즐거운 기억보다 무섭고 어려운 기억으로 변했다. 골목 곳곳에는 동네 불량배 형들이 숨어있었고, 툭하면 돈을 뺏기는 곳이었다.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거나, 둘이 지나려면 어깨를 피해줘야 하는 골목에서 불량배들을 만나면 꼼짝없이 당했던 것이다. 뒤돌아 있는 힘껏 달려 도망쳤지만 붙잡히기가 일수였고 두들겨 맞기 싫으니 돈을 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돈을 줘도 얻어맞기도 했으니 어쨌든 어린시절 나에게 인적없고 으슥한 서촌의 골목은 항상 두려움의 길이었다. 한편으로 서촌의 골목은 또 다른 방황의 도피처였다. 골목엔 지름길도 있지만 한없이 뱅뱅 돌아가는 길도 있다. 뱅뱅 돌아가는 길을 걸으면 골목과 방황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조합이 된다. 특히 예를 들자면 시험을 잘못 봐서 집에 가기 싫을 때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골목은 좁고 많이 불편한 존재다. 탈선장소로도 쉽게 쓰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화재 시 소방차가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여러모로 위험하다. 그리고 골목은 공공도로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분명 누구의 것이 아닌 길인데도 말이다. 골목은 상당히 주민 친화적이고 거의 사유도로에 가까운 성향을 띄고 있다. 골목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구어놓은 스티로폼 꽃밭과 화분들이 길을 막고 있고, 때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나와 있으며, 눈이 오면 직접 빗질로 길을 내는 노력이 뒤섞인 곳이다. 그래서 골목에는 거기서 살아온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이 스며있다. 그런 이유들로 강한 텃세도 존재한다. 오죽하면 골목대장이라는 말이 있을까? 만약 당신이 사진기를 들고 골목을 찍고 있으면, 불편한 눈빛으로 경계하듯 바라보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낯선 골목을 사진 찍거나 구경을 할 때, 만약 주민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거든 먼저 "안녕하세요, 골목이 참 예쁘네요." 하고 가벼운 인사라도 건네어보길 권유한다. 그게 골목의 매너이자, 여행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골목을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단순한 풍경감상이 아닌, 그 곳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는건 어떨까? 그 공간이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라는걸 우선으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곳을 찾는 사람도, 그 곳에 사는 사람도,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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