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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09일 06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09일 14시 12분 KST

울어라 기타야~

이젠 흔적도 없이 철거돼 버린 아현4주택재개발지역이 그날의 스케치 장소였다. 일주일 후면 철거될 동네엔 담벼락마다 빈집이라는 표시인 '공가'와 'X'가 빨간 페인트로 크게 쓰여 있었다. '저기선 다 같이 모여 저녁밥을 먹었겠지?', '여기선 잠을 잤을까?' 골목은 꼬불꼬불 이어졌다. 한 골목을 돌아섰을 때였다. 다 쓰러져가는 집 앞에 노란 기타가 얌전히 서 있다. 숨이 멎는 듯했다.

김미경

2013년 3월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서울드로잉' 수업시간이었다. '서울드로잉'은 일반인들이 미술 선생님과 함께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스케치하는 형태의 수업이다.

이젠 흔적도 없이 철거돼 버린 아현4주택재개발지역이 그날의 스케치 장소였다. 오전 10시 애오개역에서 모인 우리는 대형 장막을 들춰내고 철거 직전의 아현동 산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벌써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일주일 후면 철거될 동네엔 담벼락마다 빈집이라는 표시인 '공가'와 'X'가 빨간 페인트로 크게 쓰여 있었다. 텅 비워진 부엌엔 먼지를 뒤집어쓴 양은냄비가 나뒹굴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이부자리가 안방이었던 듯싶은 방의 한 쪽 벽에 얌전하게 개켜져 있기도 했다. 길바닥엔 깨진 유리조각이 나뒹굴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을 우린 '장소헌팅'을 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저기선 다 같이 모여 저녁밥을 먹었겠지?', '여기선 잠을 잤을까?' 골목은 꼬불꼬불 이어졌다.

한 골목을 돌아섰을 때였다. 다 쓰러져가는 집 앞에 노란 기타가 얌전히 서 있다. 숨이 멎는 듯했다. 별로 부서진 흔적도 없다. 줄을 튕겨보니 소리도 제법 난다. 갑자기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들었다. 웅성웅성한 산동네의 밤. 고등어 굽는 냄새가 풍겨 나오고,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도 진동한다. 저 멀리 골목 끝 집에선 한바탕 머리끄덩이 붙잡고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이쪽 골목 작은 방에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독학으로 배운 솜씨라 소리가 매끄럽지도 못하다. 옆에서 흥얼대며 따라 부르는 친구의 화음도 어설프다. 그들 외에 그 기타 소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없다. 그래도 기타 소리는 밤늦게까지 산동네에 울려 퍼진다. 산동네의 온갖 잡음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어렸을 땐 뭔가 세상을 확실하게 바꾸는 큰일을 해야 한다고 조급증을 낸 것 같다. 이제 나이가 들고 힘이 빠져서일까? 조그마한 일을 살살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싶다. 판자촌 앞에 얌전히 세워져 있던 저 기타, 그 기타 소리가 했던 만큼, 그만큼의 일을 하면서 살다 가면 좋겠다.

그림설명 /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저 기타를 그렸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