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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7일 14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7일 14시 12분 KST

맥주잔에 담긴 와인과 콘텐츠의 본질

와인의 가치는 와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와인 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의 대표 주자인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하는 말을 10년 넘게 들어오고 있다. 인류 역사의 탄생 이후부터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 온 맏형인 출판 산업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이제 와인을 반드시 와인잔에 담아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webrestaurant.com

"콘텐츠와 미디어 홍수 시대에 전통적인 콘텐츠 산업이 위기를 겪는 아이러니칼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뉴올리언즈

내가 속한 학회의 운영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올리언즈를 갔을 때 일이다. 쉐라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절친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 저녁 시간 어때?"

"별일 없는데, 왜?"

"내가 이곳에서 요즘 최고로 뜨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2주 전에 예약해 놓았거든. 너도 원하면 같이 가자"

프랑스와 케이준의 음식 문화에 풍부한 해산물이 결합한 뉴올리언즈는 미국인들에게는 맛의 고장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전주쯤 된다고 할까?

"좋지! 그런데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면 정장이라도 입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날 저녁, 맛의 본고장 뉴올리언즈에서 한창 인기를 얻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라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그곳은 내 예상을 깨고, 미국의 강남역이라고 부를 만한 프렌치쿼터가 아닌, 길 건너편의 아담한 호텔 1층에 한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욱이, 식당에 들어서자, 내가 상상하던 프랑스 식당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프랑스 교외의 시장통에 있을 만한,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Source : LUKE

와인 마시는 법

그날 우리 일행은 식당 문 닫을 때까지 유쾌하게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식사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와인을 맥주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맥주잔 2/3 크기의 막잔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가 웨이터에게 물었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프랑스 식당에서 와인을 이런 잔에 따라 마시는 거죠?"

웨이터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유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원래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마십니다"

"음식 문화의 최고봉인 프랑스 식당, 그것도 맛의 본고장에서 최고 명성을 얻는 곳에서 와인을 맥.주.잔.에 따라 마시다니!"

본질은 무엇인가?

이날의 경험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 와인의 가치는 와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와인 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좋은 와인 잔에 따라 법도를 지키며 마시면, 와인을 조금 더 맛있게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본질을 변하지 않는다.

자, 이제 이 경험을 콘텐츠의 세계로 투영해보자. 나의 콘텐츠에 대한 철학은 이러하다.

"콘텐츠를 물이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책은 물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콘텐츠의 본질

물은 형체가 없다. 물은 자신을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콘텐츠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콘텐츠는 인간의 정.신.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정신"이란 상상력, 아이디어, 감정, 이야기 등 인간의 두뇌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콘텐츠 산업들- 책, 음악, 영화 - 은 결국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릇 산업의 쇠퇴

콘텐츠 산업의 대표 주자인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하는 말을 10년 넘게 들어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하면서, 책읽기 운동, 스마트폰 끊기 운동을 하자고 주장한다.

과연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

콘텐츠가 인간의 정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출판업계의 불황은 전통적인 그릇 산업의 쇠퇴를 의미할 뿐이다. 다음에 다루겠지만, 기존 출판산업 에코시스템은 오히려 '창작자'들이 중심이 되는 미래의 콘텐츠 혁명의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탄생 이후부터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 온 맏형인 출판 산업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이제 와인을 반드시 와인잔에 담아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