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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9일 07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0월 25일 13시 49분 KST

테리 리처드슨 성희롱 공방전

지난 며칠간 유명한 셀러브리티 패션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을 둘러싼 공방전이 뜨거웠다. 그의 작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성희롱'이 원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지난 3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샬롯 워터스라는 전직 모델이 5년 전 테리 리처드슨과의 촬영에서 있었던 일을 미국 인터넷 가십 사이트 보카티브를 통해 폭로했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녀는 테리 리처드슨이 일이 아닌 성관계를 목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그녀에 따르면 테리 리처드슨은 모델의 누드를 촬영하면서 자신도 옷을 벗었다. 심지어 모델에게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고 섹스를 요구했다. 심지어 그녀 앞에서 자위도 했다. 워터스는 또한 테리 리처드슨이 자신의 입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엉덩이를 핥았다며 충격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왜 5년이나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폭로하느냐는 질문에 샬롯 워터스는, 당시엔 판단이 잘 서지 않는 19살이었고 유명 사진작가 테리 리처드슨의 미감을 믿고 따랐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촬영이 진전될수록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촬영이 끝난 후 5년간 지울 수 없는 기억의 고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워터스가 인터뷰에서 예로 든 사진작가 리처드 켄과의 누드 촬영. 리처드 켄은 테리와 대조되게 옷을 입고 있다. 미국잡지 바이스(VICE)의 TV 프로그램에 쓰인 사진이다.

워터스는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뉴욕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자신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테리 리처드슨에 대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에게서 돌아온 답은, 촬영 당시 워터스가 "노"라고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워터스의 폭로가 올라간 지 정확히 이틀 뒤인 3월 13일, 또 다른 피해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유명한 모델이라서 익명을 요청한 제보자는 "테리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한다면, 다시 모델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테리 리처드슨의 기괴한 행동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가 있기 전에도 그의 작업방식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허핑턴포스트 라이브에서 모델 사라 지프(Sarah Ziff)와 앨리스 슈메이커(Alice Shoemaker)는 "나라면 테리 리처드슨과 다시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모델은 테리 리처드슨이 자신의 유명세와 권력을 남용해 성공을 꿈꾸는 모델들에게 성적인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센 여론이 휘몰아치자, 지난 3월 14일 테리 리처드슨은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기고했다. 아래가 그 전문이다.

<소문을 바로잡습니다>

저는 4년 전 과거의 나에 관한 인터넷의 가십이나 비난은 기본적으로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십에 대응하면 오히려 그 사건을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고, 이건 제 작업 스타일이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저에 대한 혐의들은, 특히 더 잔인하고 왜곡됐습니다. 비평적인 논의를 벗어났고 감정적인 마녀사냥으로 사건이 변질됐습니다. 자유롭고 또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의 특징은 저의 직업적, 개인적 삶을 비방하기 쉽습니다. 저는 지금 이 글에서, 저에 대한 소문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당사자인 저의 입장이 빠진 이 공방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1990년에 제가 사진을 찍으러 뉴욕으로 왔을 때, 대부분의 사진 작업의 이스트 빌리지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업은 투박했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기존 패션 이미지들을 답습했기에 미학적으로는 영 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처음으로 큰 캠페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바에서 커플이 껴안고 있는 도발적인 사진이었습니다. 당대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진이었고, 주류 패션 광고계에서 이런 사진이 쓰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헬무트 뉴튼 같은 이전 세대의 수많은 사진가처럼, 성적인 이미지는 항상 제 작업의 일부였습니다. 10년 전인 2004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제 사진전은 아주 성공적이었으며 좋은 평도 받았습니다. 사진에 에로틱한 순간을 묘사했고 성의 아름다움, 날 것이 주는 유머를 탐구한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제 작업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성인 모델과 동의 하에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제가 하는 어떤 프로젝트에도 적용되며 모델들은 이런 과정을 거친 작업을 공개하는 데 사인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원하지 않는 걸 강제적으로 협박해가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존중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델들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절 대중들이 저를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수정주의자로 보는 건 힘들었습니다.

슬프게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란을 보면, 엉성한 저널리즘이 사건을 과장하고 악의적으로 조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는 인터넷 대중들의 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폭로한 것이 선의였던 아니었던 간에, 거짓말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제가 예술을 하며 지켜왔던 신념을 해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도 진짜 희생자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는데 열의를 갖고 참여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소문이 저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달라듭니다. 또한 섹스라는 주제는 이면적입니다. 섹스는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일반적이지만, 동시에 민감한 주제라 논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자면, 몇몇 도발적인 사진으로 법적 다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듣겠습니다. 다만 이 논쟁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실에 근거해서 말해달라는 겁니다. 제 작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떤 것이 진실인지 꼭 이 글을 읽고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테리 리처드슨을 둘러싼 이번 논쟁이 불현듯 떠오르게 만드는 사건이 있다. 지난 2월 1일 우디 앨런의 양녀 딜런 패로우가 뉴욕타임스에 공개 서한을 올리면서 불거진 우디 앨런의 성추행 의혹이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당사자인 우디앨런은 뉴욕타임즈에 장문의 기고문을 통해 결백을 주장했다.

우디앨런과 테리 리처드슨

[테리 리처드슨(Terry Richardson)]

패션업계에서 성공한, 그리고 논쟁적인 사진작가다. 포르노그래피를 패션 사진의 영역으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패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 톰 포드, 생 로랑, 미우미우 등의 광고 캠페인을 찍었고 <보그><하퍼스 바자> 등 유수의 잡지와 작업했다. 버락 오바마, 린제이 로한, 마일리 사이러스, 레이디 가가, 비욘세, 조니 뎁 등 그가 찍지 않은 셀러브리티가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서 영향력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빅뱅, CL, 김혜수 등과 작업했다. 작업의 모토는 "나는 지금 당장 섹스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이다.

테리 리처드슨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