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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7일 16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7일 14시 12분 KST

뉴욕아 책임져라~!

돌아온 서울은 정겨웠다. 생계도, 인간관계도, 직장도, 언어도, 철학도 다 뉴욕보다는 좀 더 내겐 살만했다. 그래도 역시 뉴욕의 문화는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온 지 한 달쯤 될 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림이 너무너무 그리고 싶어졌다.

김미경

뉴욕에서 꼭 8년을 살았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1년, 그리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7년. 2012년 봄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뉴욕은 내 인생 추억의 한 챕터로 남았다.

2012년 뉴욕을 떠나기 전 나는 서울과 뉴욕은 가로줄에, 기본생계/인간관계/직장/언어/문화/철학 등 6개 카테고리는 세로줄에 넣은 큰 도표를 만들어 놓고, 도표 속 빈 박스에 뉴욕에 계속 살아서 좋은 점, 나쁜 점, 한국으로 돌아가서 좋은 점, 나쁜 점을 써보고, 점수도 요리조리 매겨보는 작업을 한참 동안 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점수는 이리저리 뒤바뀌면서 어떤 날은 꼭 서울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고, 또 어떤 날은 뉴욕에 계속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작업을 하는 동안 6개 카테고리 중 뉴욕은 문화 카테고리에서 항상 최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MoMA가 직장에서 3분 거리에 있고, 메트로 뮤지엄은 1불만 내면 들락거릴 수 있는 뉴욕, 프릭 뮤지엄, 모간 라이브러리의 맛깔 나는 전시에, 뉴욕필하모닉 연주를 큰 돈 안 들이고도 들을 수 있는 뉴욕. 동네 브루클린 작가들이 수시로 여는 오픈 스튜디오를 찾는 즐거움에, 가는 곳마다 새로운 문화 실험이 펼쳐지는 뉴욕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꽤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문화 카테고리의 높은 점수만으로 기본생계/인간관계/직장/언어/철학 카테고리의 낮은 점수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돌아온 서울은 정겨웠다. 생계도, 인간관계도, 직장도, 언어도, 철학도 다 뉴욕보다는 좀 더 내겐 살만했다. "세상에 한국말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니! 세상에 내가 왜 그렇게 안 되는 영어로 쌩고생을 하고 살았던고!!" ㅎㅎㅎ 그래도 역시 뉴욕의 문화는 아쉽고 또 아쉬웠다. 금요일 저녁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MoMA의 기획전, 브루클린 뮤지엄의 The Dinner Party...그립고도 그리웠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온 지 한 달쯤 될 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림이 너무너무 그리고 싶어졌다. 처음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에 긁적거리기 시작하다 동네 그림교실에 나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자꾸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일주일 근무가 끝나는 금요일 밤부터 시작해 주말 내내 그림만 그리며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머리 속엔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생각만 자꾸 커져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워졌다. 급기야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년여 만인 지난 2월 말 직장을 그만뒀다. 그림을 중심에 놓고, 생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살아보겠다는 결정을 내려버린 게다. 2014년 3월. 한국 나이로 쉰다섯살. 나는 초보 화가로서의 걸음마를 어설프게 시작했다.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생각해 본다. 뉴욕을 떠나기 가장 싫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뉴욕의 문화가 나의 이 무모한 결단을 부추겼음에 틀림없다. 뉴욕생활 8년이, 뉴욕의 질펀한 문화가 나를, 대한민국 서울 서촌으로 얌전하게 돌아온 나를 엄혹한 화가의 길로 내몰았다. 뉴욕아 책임져라! ㅎㅎㅎ

그림설명/0.03밀리, 0.05밀리 펜으로 그려본 서촌 풍경이다. 신인왕제색도라 이름 붙여봤다. 2013년 여름 동네 커피숍 바깥 테이블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린 그림이다. 서촌에선 어디서나 늠름한 인왕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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