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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0일 15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0일 14시 12분 KST

현대판 검투사, 종합격투기 선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따라 대부분의 것들이 상품화되어 매매되는 것이 허용되지만 적어도 인간은 상품화되어 매매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에 따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인간장기의 매매를 금지하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행위의 매매를 금지한다. 그에 비해 사람을 폭행하거나 상해하면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지만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아 싸움을 매매하는 격투기를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Esther Lin, MMA Fighting

얼마 전, 여러 가지 종류의 격투기를 섞어 만들었다고 해서 '이종격투기' 혹은 '종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 MMA)라고 불리는 싸움판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일본인 선수를 녹아웃(KO)시킨 개그맨이 화제가 되었다. 경기 시작 전 반드시 상대를 케이오시키겠다고 장담했던 일본인 선수가 오히려 그 상대의 강력한 펀치를 맞고 쓰러져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관중들은 환호하였다. '한일전'으로 포장되어 자극적으로 광고된 이 경기는 일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일본 개그맨들에게 난타당한 한국 여성 격투기선수에 대한 복수전으로까지 노이즈마케팅되면서 관례를 깨뜨리고 데뷔전이 메인이벤트로 진행되는 호사까지 누렸다. 경기가 끝난 후 승리한 개그맨이 알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싸움짱'이었다는 친절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다.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학교폭력의 근절을 외쳐대던 언론의 모순된 태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일종의 '싸움의 기술'인 무술(武術)은 화려한 동작 때문에 하나의 예술로 취급되어 무예(武藝)로 불리기도 하고, 정신적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종교나 철학으로 승격되어 심지어 무도(武道)로 불리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의 권투(boxing)나 레슬링과 같은 스포츠를 기원으로 하는 무술은 나라마다 오랜 역사가 있고 강조하는 기술이 다른데 한국의 태권도, 중국의 우슈(武術)나 쿵푸(功夫), 일본의 유도(柔道)나 가라데(空手), 태국의 무에타이, 브라질의 주짓수(jujitsu)와 같이 그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에 이런 다양한 무술들을 모두 활용하여 경기를 벌이는 종합격투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상대방을 주먹이나 발 또는 팔꿈치나 무릎으로 가격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목을 조르거나 팔이나 다리를 꺾어 항복(submission)을 받아내면 승리한다. 물론 나름의 경기규칙이 있고, 심판이 선수의 안전을 위해 경기를 중단시키기도 하며 경기장 주변에 링닥터를 포함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수의 건강이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경기임에는 분명하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따라 대부분의 것들이 상품화되어 매매되는 것이 허용되지만 적어도 인간은 상품화되어 매매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인간이 상품화되어 거래의 대상이 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인간장기의 매매를 금지하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행위의 매매를 금지한다. 그에 비해 사람을 폭행하거나 상해하면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지만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아 싸움을 매매하는 격투기를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장기매매는 재생이 불가능한 인간의 신체를 절단할 수 있도록 처분하는 행위이고, 성매매는 인간, 특히 여성을 성행위의 도구로 삼아 물건으로 취급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격투기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격투기 경기 중에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회복불가능한 장애에 이를 수 있고, 인간을 그저 타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단지 성행위의 도구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행위일 수 있다. 모든 스포츠는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고, 게다가 격투기는 다른 폭력행위와는 달리 선수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본인의 동의를 얻어 이루어진 성행위가 단지 돈이 오고간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상대방을 가격하고 넘어뜨리고 조르고 꺾는 격투기 선수들에게서 검투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성(masculinity)을 상징하는 용감한 행위로 대중들이 열광하며 선수 본인의 동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용되고 있는 격투기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피 튀기며 싸우다 링사이드로 들어가면 라운드를 알리기 위해 속살을 드러낸 채 야릇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지나가는 라운드걸이 등장할 때마다 복잡한 상념이 오고간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