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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기구 판매 금지가 능사일까?

지난 6월 경남 창원의 고등학생 ㄱ씨(17)는 인터넷 구매대행업체를 통해 소위 ‘성기구’를 주문했다. 미성년자인 자신은 법적으로 성기구를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명의를 몰래 빌렸다. 하지만 ㄱ씨가 깜빡한 게 있었다. 택배가 도착한다는 문자가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것이다. 문자를 보고 택배를 확인한 ㄱ씨의 부모님은 아연실색했다. “딴 사람도 아니고 내 딸이 이런 걸 시키다니...” ㄱ씨는 한동안 부모님의 촘촘한 감시 아래서 눈치 보며 지내야 했다.

‘청소년의 성’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쉬쉬하는 주제다. 하지만 최근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청소년도 ‘성기구’를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 상 미성년자는 콘돔을 구매할 수 있지만, 변형된 형태의 ‘기능성 콘돔’과 성기구(섹스토이)는 구매할 수 없다. ‘청소년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에는 이들 ‘유해물건’들이 “신체적 부작용 초래하거나, 음란성, 비정상적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물건’인 기능성 콘돔을 판매했다 콘돔업체 대표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지난 1월 섹슈얼 헬스케어 업체 ‘이브’의 대표 성민현씨는 청소년에게 ‘요철식 콘돔’을 판 혐의(청소년보호법 위반)로 벌금 20만원에 약식기소 됐다. 이후 성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지난 11월 9일 법원은 동일하게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 이브 측은 항소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와 별개로 지난 4월 청소년보호법 해당법률에 대해 헌법소원도 제기한 상태다. 성 대표는 “기능성 콘돔이 청소년에게 ‘위험하다’는 현행법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취지를 밝혔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쪽은 “청소년에게도 성기구 판매를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성욕을 충족할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성기구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 청소년에게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성에 대한 특정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반면 성기구는 기능적 목적에 충실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찬성하는 쪽의 주장이다. 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쥬리(활동명)는 “기능성 콘돔이나 섹스토이나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성욕을 충족하는 방법이다. 이런 기구들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된다면 어른들이 우려하는 문제가 오히려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과 ‘성’을 떼어놓으려는 시도와 달리 ’청소년의 성’은 엄연한 현실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청소년 1만6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성인용 영상물 이용 경험’ 통계를 보면, 전체 청소년 가운데 41.5%가 ’성인용 영상물’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가장 연령이 낮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 중에서도 23.3%가 성인용 영상물을 접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용품점 ‘은하선 토이즈’를 운영하는 은하선씨도 “청소년으로부터 섹스토이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묻는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면서 “문의가 올 때마다 현행법상 구매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이 급선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소년인권연대추진단’의 공현씨는 “청소년을 다양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존재로 보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청소년이 성적인 걸 하느냐’는 단순한 반감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 활동 중인 고등학생 ㄴ씨(18)는 “어른들은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성에 대해서, 쾌락에 대해서 결정을 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욕구가 있고 그걸 안전하게 충족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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