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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저항' : 트럼프와 공화당이 기어코 공개하려는 기밀 '메모'에 대해 알려진 것들

  • 허완
  • 입력 2018.01.31 14:12
  • 수정 2018.01.31 14:27
U.S. President Donald Trump applauds while delivering a State of the Union address to a joint session of Congress at the U.S. Capitol in Washington, D.C., U.S., on Tuesday, Jan. 30, 2018. Trump sought to connect his presidency to the nation's prosperity in his first State of the Union address, arguing that the U.S. has arrived at a 'new American moment' of wealth and opportunity. Photographer: Win McNamee/Pool via Bloomberg
U.S. President Donald Trump applauds while delivering a State of the Union address to a joint session of Congress at the U.S. Capitol in Washington, D.C., U.S., on Tuesday, Jan. 30, 2018. Trump sought to connect his presidency to the nation's prosperity in his first State of the Union address, arguing that the U.S. has arrived at a 'new American moment' of wealth and opportunity. Photographer: Win McNamee/Pool via Bloomberg ⓒBloomberg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할 새로운 전략을 개발한 걸까?

4페이지짜리 '메모'가 미국 미국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법무부를 며칠째 뒤흔들고 있다. 기밀 정보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이 메모를 공개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 메모를 공개하려고 한다. 민주당과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등은 이에 맞서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메모를 공개하려는 이들의 목표는 하나라고 지적했다. 바로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이들의 핵심 목표물은 두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또는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가 공모해 2016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검, 그리고 뮬러 특검을 지휘하고 있으며 그를 해임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차관이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간략한 개요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공화당).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4페이지짜리 메모는 1월 중순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작성자는 하원 정보위원장 데빈 누네스(공화당, 캘리포니아)의 보좌직원이다. 하원 정보위는 특검과는 별도로 러시아의 대선개입 사건 관련 조사를 진행해왔다. 정보위를 이끌고 있는 누네스는 지난해 3월 조사 정보를 백악관에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사에서 빠졌다.

이 메모를 본 사람들에 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메모에는 트럼프 캠프에서 외교고문으로 잠시 일했던 카터 페이지를 상대로 2016년 여름 발부된 90일짜리 비밀감청영장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의해 이 비밀감청영장이 발부되면 수사당국은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비밀리에 그를 감청할 수 있다. 이 특별한 영장은 법무부와 FBI 최고위층의 승인을 거쳐야만 청구될 수 있으며,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이 발부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페이지에 대한 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은 지난해 4월에서야 WP 보도로 알려졌다.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는 만큼, 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려진 또 한명의 트럼프 측 인사는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위원장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FBI가 비밀감청영장을 발부 받는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쟁 후보였던 민주당의 자금 지원을 받은 누군가로부터 제공받은 정보가 영장 청구 사유에 포함됐다는 것.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되는 부적절한 정보에 근거했기 때문에 애초에 영장이 발부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 이들은 감청 연장을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이 부적절하게 승인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임명한 로젠스타인 차관은 제프 세션스 장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스스로 손을 떼면서 실질적으로 수사를 지휘하게 된 인물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합법적으로 뮬러 특검을 해임할 권한을 지닌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러시아 간첩'과 '영국 스파이'

카터 페이지 전 트럼프 캠프 외교정책 고문.

트럼프 캠프에 몸 담았다가 수사당국의 비밀감청 대상이 된 카터 페이지에 대해 알아보자. FBI는 영장을 청구하면서 페이지가 해외 정부, 정확히 말하자면 러시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간첩'으로 활동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가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비밀 정보 활동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는 것.

에너지 산업 컨설턴트로 일했던 페이지는 2016년 초 트럼프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2016년 3월, 트럼프 당시 후보는 WP 인터뷰 도중 외교 정책팀으로 누굴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며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 때 함께 언급된 조지 파파도풀로스는 현재 특검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3년에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페이지를 고용하려 했다는 수사 결과도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모스크바에 위치한 투자은행에서도 근무했던 그를 오랫동안 감시망에 올려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페이지는 트럼프 캠프 합류 몇 개월 만인 그해 여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설을 하며 미국의 러시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한 이후 미국 정부가 단행한 러시아 제재조치를 비판한 것. 이 공개 활동은 곧바로 FBI의 관심 목록에 올랐다.

FBI는 페이지의 수상한 행적을 어떻게 알았을까? 영국 정보기관 MI-6 출신인 크리스토퍼 스틸이 제공한 정보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스틸은 트럼프와 러시아의 유착 의혹이 담긴 이른바 '트럼프 X파일'의 작성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 미확인 문서에는 러시아 정부가 '섹스 비디오' 등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스틸은 대선 당시 '퓨전GPS'라는 사설 정보업체에 고용됐다. 보수 인터넷 매체 '프리 비컨'은 공화당 경선을 앞둔 2015년 가을 이 업체를 고용해 공화당 경선후보들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트럼프가 후보에 지명될 것이 확실시되던 2016년 4월, 퓨전GPS는 상대편인 힐러리 클린턴 캠프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에 접근했다. 클린턴 측은 이들을 고용했다.

'트럼프 문서(dossier)'의 탄생

크리스토퍼 스틸 전 MI-6 요원.

스틸은 2016년 6월20일, 훗날 '트럼프 문서(dossier)'로 알려지게 될 문서 17건 작성을 마무리한다.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를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으며, 러시아가 두 후보 모두에게 해를 입힐 만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틸은 7월 초 FBI와 접촉해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알렸다. 몇 개월 뒤에도 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FBI와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틸이 작성한 문서에는 페이지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스틸은 페이지가 2016년 여름 모스크바 방문 기간 동안 푸틴의 측근이자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 대표인 이고르 세친과 만났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페이지는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스틸은 또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 정부와 공모하고 있다는 '러시아 인종' 트럼프 측근의 주장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스틸이 작성한 보고서, 즉 '트럼프 X파일'은 FBI, 국가정보국(DNI),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보기관들을 거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그러나 정보당국은 여기에 담긴 정보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일부 내용은 확인된 사실로 본 반면, 확인되지 않았거나 입증 불가능한 정보도 있다고 본 것.

NYT는 2016년 10월, FBI가 러시아와 트럼프 측의 뚜렷한 '링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 8월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퓨전GPS 설립자 글렌 심슨은 이 보도 이후 FBI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FBI가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스틸의 추가 조사 활동에 대한 비용을 지급할 것인지를 두고 약간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의 불순한 의도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차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보자. 공화당은 FBI가 트럼프 측근이었던 페이지에 대한 비밀감청영장을 발부 받는 과정에서 법원(FISC)에 스틸이 작성한 문서 내용 중 일부를 포함시킨 것을 문제삼고 있다. 클린턴 캠프가 고용한 사설 정보업체 직원이 작성한, 따라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이라는 점을 법원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영장 발부 자체가 부적절하게 이뤄졌다는 논리다.

누네스 정보위원장의 보좌직원은 이러한 내용을 바로 그 문제의 4페이지짜리 메모에 정리했다. FBI가 트럼프 캠프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했으며, 수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를 입힐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논리로 '완성'된다. 감청 연장을 승인한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의 결정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문서를 열람한 정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반박했다. 메모에 언급된 정보들이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됐으며, 특히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될 민감한 기밀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 비밀감청영장 발부 과정에 스틸의 문서는 제한적으로만 활용됐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나 FBI가 페이지에 대한 영장 발부를 준비하면서 위법적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도 했다.

이 메모의 소재가 된 기밀 정보들을 알고 있는 정보위 민주당 간사 애덤 쉬프 하원의원은 누네스 측이 작성한 이 메모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부정확한 주장들이 포함됐고, 특히 사법당국에 대한 잘못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주요 사실들이 생략됐다는 것. '짜깁기 (기밀) 자료'라는 얘기다.

NYT는 관련 내용을 잘 아는 인물을 인용해 스틸이 FBI에 제공한 정보는 비밀감청영장 청구에 활용된 자료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이 메모에는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는 것. 실제로도 FBI는 스틸이 수집한 정보를 자체 수집한 수사 관련 정보와 비교해 진위 여부를 검증하려 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트럼프 최후의 저항?

최근 드러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여름 뮬러 특검을 해임하라고 지시했다가 측근의 강력한 만류로 이를 철회했다. 만약 강행했다면 또다른 중대한 사법방해 혐의가 제기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해왔다. 러시아 수사에서 손을 떼 결국 특검을 불러왔다는 이유로 '나를 지켜주지 못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대놓고 모욕했으며,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 (이 사건은 현재 특검의 핵심 수사대상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젠스타인 법무차관 해임도 검토했다. 로젠스타인 역시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로젠스타인은 뚜렷한 위법행위가 나오지 않는 한 뮬러 특검을 해임할 의사가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특검의 수사는 트럼프 본인을 향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29일, 하원 정보위는 공화당 당론에 따라 이 메모 공개 여부를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는 공개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무부와 FBI는 30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고 WP는 전했다. 이 회동에는 로젠스타인 법무부 차관,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이 참석했으나 대부분의 발언은 로젠스타인이 했다고 한다. 그는 이 메모가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지 않으며, 공개할 경우 국가안보 측면에서 전례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충언을 귀담아 들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그는 최근 측근들에게 이 메모가 로젠스타인을 해임하거나 사퇴를 압박할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WP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말하자면, 특검 수사를 지휘하는 로젠스타인이 트럼프의 1차 목표물인 셈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2차 목표물은 로버트 뮬러 특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트럼프를 구원해줄 것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WP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러시아 수사를 끝내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전직 FBI 요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에게 매우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젠스타인이 물러나면 그 자리에 '말 잘듣는' 사람을 앉힐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특검 수사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법무부 3인자인 레이첼 브랜드가 후임으로 지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브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는 근거는 아직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젠스타인보다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를 신뢰하기 때문인지, 그저 로젠스타인을 빨리 내쫓고 싶어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반면 다른 인물을 지명하려면 의회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코미 전 FBI 국장을 해임한 사건은 이미 사법방해 여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법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수사를 방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또다른 행동은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이 메모가 공개된다면, 그건 트럼프 대통령이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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