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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직원·다스...MB ‘영포빌딩의 역습'

  • 김성환
  • 입력 2018.01.29 09:41
  • 수정 2018.01.29 09:43

편집자 주: 정치 개입 의혹을 둘러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 원장에 대한 검찰의 칼끝은 이제 국정원 특활비 상납, ‘다스 비자금’ 120여억원, 다스의 비비케이(BBK) 투자금 140억 강압 환수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다스는 누구 것이냐”란 질문으로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규명을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겨레'는 2007년 여름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이 전 대통령의 도덕성 검증을 위해 특별 취재팀을 구성해 끈질기게 추적한 바 있습니다. 당시 취재팀이었던 김태규 기자가 취재 수첩을 공개 합니다.

관련기사:1회_2007년 그땐, 하늘이 MB를 도왔다

다스 투자금 140억 회수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018년 1월25일 밤,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의 지하 2층 비밀창고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영일군과 포항시의 첫 글자를 따 이름을 지은 영포빌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이 전 대통령이 세운 청계재단으로 넘어갔다.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대선 직전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는 공약을 이행한 데 따른 것이다. 이때 서초동 대명주빌딩과 양재동 영일빌딩도 청계재단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3채 합쳐 감정평가액이 400억대인 서울 강남 지역의 금싸라기 건물들이다.

특히 영포빌딩과 대명주빌딩은 서초동 법조단지에 자리잡고 있어 법조기자 시절 검찰청사를 오갈 때 흔히 지나치는 곳이었다. 5층짜리 영포빌딩에는 변호사 사무실이 대부분이었고 음식점 용도로 지어진 2층짜리 대명주빌딩에는 2000년대 초·중반에는 ‘희래등’이라는 이름의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검찰청에서 가장 가깝고 널찍한 방이 있는 곳이라 그곳에서 가끔 식사도 했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중식점 ‘희래등’은 후에 ‘대명주’, ‘타워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맛은 변하지 않았다.

평범한 변호사 사무실이 들어차있던 영포빌딩은 2007년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핫한 뉴스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그해 11월9일, 그날은 국회 대정부질문이 있는 날이었다. 대선이 코앞에 있었기에 대부분의 언론은 대선후보 동정과 캠프에 집중했지 국회 일정은 주목 대상이 아니었다.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와 폭로로 정부를 긴장하게 만드는 게 국회 대정부질문의 일반적인 특성이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가만히 시간만 보내도’ 이명박 후보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될 상황이었기에 대정부질문에 신경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2007년 11월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김진표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자녀위장취업관련 브리핑에서 이 후보가 밝혀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요식행위로 받아들여졌던 그때 주머니 속에서 송곳을 꺼내든 건 여권의 강기정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었다. 모든 의원들이 그렇듯 강 의원도 대정부질문 전,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메일로 질문 요지를 담은 보도자료를 뿌렸다.

난 그날 오후에 강 의원의 보도자료 메일을 열어보았다. 별 거 없겠지만 그래도 내용을 확인이라도 하고 지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들어갈 뻔 했던 보도자료에는 ‘펄 속의 낙지’ 같은 팩트가 펄떡거렸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이 만든 빌딩관리업체에 자식들을 직원으로 올려놓고 ‘월급’을 지급했다는 내용이었다. 큰딸 주연씨와 아들 시형씨가 서초동 영포빌딩을 관리하는 업체인 대명기업의 직원으로 등재돼, 큰딸은 2001년 8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달 120만원을, 아들은 2007년 3월부터 11월까지 매달 250만원을 월급으로 받아간 사실이 건강보험 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건물 관리를 했다는 그 기간 중 큰딸은 미국에 1년 동안 체류했고 아들은 국제금융센터 인턴으로 근무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 후보가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등재한 사실이 ‘딱 걸린’ 것이다. 그렇게 자녀들에게 건너간 돈은 8800만원이었다.

엠비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일단 세금 회피 의도가 짙었다.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등재해 인건비를 부풀리면 공제 비율이 높아져 법인으로서는 세금을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증여를 월급으로 위장하는 편법증여 성격도 있었다. 세금도 줄이고 증여도 하는, 그 누구도 상상못한 신종 탈법행위였다.

데스크에 먼저 보고하고 강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받아쳤다. 기사는 1면 톱으로 잡혔다. 이명박 후보의 해명이 필요했다. 당시 이 후보의 ‘입’이었던 나경원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경원 의원은 BBK 투자사기 등 엠비의 각종 의혹을 해명하는 공식 창구였다. 내가 이명박 후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쓰면 나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기계적인 반론을 듣는, 그런 사이였다. 선거기간 내내 나의 전화가 결코 반갑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날도 그랬다.

“저 통합신당 출입하고 있는 김태규 기자라고 합니다. 강기정 의원 주장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강 의원의 메가톤급 폭로를 짤막하게 전하고 해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 대변인은 강 의원의 대정부질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어, 저는 그거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아…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힌트를 주면서 다시 한 번 해명을 요청하며 물었다.

“이게 탈세나 증여나 다 문제가 될 거 같은데…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명박 후보 쪽의 ‘성의 있는 답변’을 최대한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해명을 받아서 기사를 완성했다. 초판 신문이 인쇄되기도 전인 그날 오후 5시19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쐈다.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반응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한겨레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사람들은 댓글로 분노하기 시작했다.

“돈에 미쳐서 별 짓을 다했구만. 우리가 진짜 이런 인간을 우리 대표로 선출해야 되는 거여~”, “중소기업 3년차 월급 200만원도 못받는 젊은이가 이 나라에 넘치는데, 취업 못한 젊은이가 이 나라에 넘치는데. 명박씨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서글픕니다”라는 내용으로 이명박 후보의 부도덕함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한겨레’가 인터넷을 통해 1보를 터뜨리자 다른 언론들도 뒤늦게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나경원 대변인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를 통해 수정된 해명을 보내왔다. “상근직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지만,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한 바가 있어 직원으로 등재했다”는 주장이었다.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라…이전보다는 성의를 보인 해명이었지만 누리꾼들은 “화장실 청소를 했는지, 전구를 갈았는지, 무엇을 해서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를 했는지 밝히라”, “대변인 말이 걸작이다. 이왕이면 자녀들에게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근무시켰다고 해명하지”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분노의 댓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기사가 노출된 다음날 오전 9시 기준으로 다음 포털에만 걸린 댓글이 1만6천개였다. 하루도 되지 않아 댓글 수가 1만개를 돌파하는 경우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 민란’이라고 할 만했다. 엠비의 행태를 접한 성난 민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국세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명박 탈세 의혹을 조사하라’는 글이 줄을 이었고 이를 주요뉴스로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를 비판하는 댓글도 넘쳐났다. 누리꾼들은 이 기사를 메인 화면에 노출하지 않은 네이버도 질타하며 ‘유령직원’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결국 이명박 후보는 문제가 불거진 뒤 이틀 만인 2007년 11월11일 보도자료를 내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BBK, 다스, 도곡동 땅 등 온갖 의혹도 꿋꿋이 부인하며 버텨내던 그가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본인의 불찰”이라며 “꼼꼼히 챙기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세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딸은 결혼도 했는데 별다른 직장이 없어 집안 건물관리나마 도우라고 했고,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도의 급여를 주었다. 다만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유학가는 동안 이 부분을 정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아들 시형씨의 경우 “유학을 다녀와 취직하려는 것을 선거 중이라 특정 직장에 근무하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잠시 건물관리를 하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끝까지 자녀들이 영포빌딩 관리 업무를 한 건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쪽이 이 후보를 횡령·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나경원 대변인은 “바쁜 후보를 대신해 가족들이 건물 관리를 일부 도와주기도 했다. 이를 두고 고발하겠다는 것은 이번 선거를 진흙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깔끔한 사과가 결코 아니었지만 엠비는 그렇게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2007년 9월6일 서울 송파구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예술인특별위원회 전국대회 도중 사회자 이상용씨의 농담에 목을 뒤로 젖힌 채 웃고 있다. 왼쪽은 임태희 비서실장, 오른쪽은 나경원 대변인.

BBK 투자사기 연루 건, 다스와 도곡동 땅 차명소유 등 당시 그를 둘러싼 의혹은 모두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자녀를 빌딩관리 직원으로 등재해 월급 명목으로 증여도 하고 세금도 줄이는, ‘일타쌍피’의 신공도 돈을 향한 열망으로만 설명이 가능했다. 2007년 11월의 ‘이명박 자녀 유령채용’ 사건은 ‘인간 이명박’의 본질을 살짝 드러내준 ‘맛뵈기’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의 매개체였던 영포빌딩은 지금 서류상으로는 그가 세운 청계재단의 소유다. 그런데 정말 그는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은 게 맞는 것일까? 검찰은 최근 BBK 투자금을 다스가 가로채는 과정에 엠비가 대통령 시절 개입한 의혹의 물증을 찾겠다며 영포빌딩 지하 2층 비밀창고를 털어갔다. 엠비의 건물, 영포빌딩이 오랜 기간 품고 있었던 비밀이 정말 궁금하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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