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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때마다 땜질·땜질...구멍난 법규가 참사 키웠다

  • 박수진
  • 입력 2018.01.27 05:31
  • 수정 2018.01.27 11:12

‘스프링클러라도 있었더라면…’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대형 참사로 번진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는 등 화재 대비 시설이 취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소방시설법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 세종병원 같은 중소병원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특히 역대 정부는 2010년, 2015년 각각 경북 포항과 전남 장성에서 발생한 노인요양시설 및 요양병원 화재 사고 직후 해당 유형의 의료시설에만 적용되는 사후 대책을 내놓아 ‘땜질식 처방’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참사 역시, 우리 사회 고질적인 병폐인 안전불감증과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만들어낸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보건복지부와 세종병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 병원에는 화재를 감지하면 스스로 물을 뿜어 불길을 잡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손경철 세종병원 이사장은 이날 오후 밀양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건축법에 위반되지 않은 내장재를 사용했고 소방점검도 꾸준히 받아왔다”며 “(하지만) 건물 규모가 작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현행법상 이 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시행령을 보면, 바닥 면적 합계가 600㎡(제곱미터) 이상인 정신의료기관·요양병원이나 11층 이상인 의료기관, 또는 4층 이상 높이에 1000㎡ 이상 면적을 차지하는 의료기관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지상 5층 높이에 한층의 바닥 면적이 약 395㎡인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세종병원과 연결돼 있었지만 다행히 환자가 모두 대피해 인명 피해가 없었던 세종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모든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 포함되는데, 새로 짓지 않고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요양병원에 대해서는 올해 6월말까지 스프링클러 설치를 유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병원처럼 ‘스프링클러조차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허술한 법령, 이를 알면서도 사실상 방조한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 탓이다. 앞서 정부는 2010년 경북 포항의 노인요양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의 노인이 사망하자, 소방시설법 시행령을 개정해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노인·장애인 요양시설 등은 건물 면적에 상관없이 간이스프링클러 등의 화재 진압 설비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다.

주로 노인이 입원하는 요양병원은 ‘요양시설’과 달라 여기서 빠졌는데, 2015년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정부는 그제야 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관련 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병원에는 유사시 혼자 힘으로 탈출하기 어려운 환자가 많아 일반 건물에 견줘 한층 강화된 화재 안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부는 의료시설에서 대형 화재사고가 날 때마다 말 그대로 ‘땜질’로 일관한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100명 가까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에 스프링클러 등 화재 안전 장치가 없었다는 것은 환자 안전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사건 뒤에 땜질식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서라도 화재에 더욱 취약한 환자를 위해서 화재 안전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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