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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피겨 페어 렴대옥-김주식은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에 만족하지 않는다

  • 허완
  • 입력 2018.01.25 13:07
  • 수정 2018.02.24 12:52

2017년 9월28일, 독일 바이에른주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베르스트도르프. 검정색 옷을 맞춰 입은 두 남녀가 아이스스포트첸트룸의 새하얀 얼음판 위에 섰다. 비틀즈의 명곡 'A Day in the Life'가 기타리스트 제프 벡의 연주곡 버전으로 흘러나왔다. 두 선수는 음악에 맞춰 구석구석을 북한 피겨 페어 렴대옥(18)·김주식(25) 조의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벌어지던 순간이다.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네벨혼 트로피'는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대회였다. 페어 종목에서는 20장의 출전 티켓 중 아직 5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렴대옥-김주식 조는 60.19점으로 16개팀 중 5위를 기록했다.

다음날 이어진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렴대옥-김주식 조는 119.90점(6위)을 얻었다. 자신들의 ISU 공인 프리스케이팅 최고점이었다. 이렇게 획득한 합계 점수 180.09점 역시 두 선수가 ISU 대회에서 기록한 최고점수였다. 이미 출전권을 확보한 5개를 뺀 나머지 11개팀 중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기도 했다. 그렇게 렴대옥-김주식 조는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두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불확실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들은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느냐'고 물었다. 북한팀 박현선 코치가 끼어들었다. "그건 조선올림픽위원회가 결정할 문제다." 꽁꽁 얼어있던 남북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선수등록 마감시한까지도 출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얼음이 녹는 건 순식간이었다. 1월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낼 뜻이 있다고 밝혔다. 며칠 뒤 남북 연락채널이 복구됐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성사됐으며,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확정됐다. 남북은 한반도기 공동입장,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도 합의했다. 렴대옥-김주식 조도 강릉 아이스 아레나 빙판 위에 설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가을 북한 핵·미사일 극한 대치를 완화시킬 계기는 "외교관들이 아니라 비틀즈의 음악에 맞춰 연기하는 북한 피겨 스케이팅 페어 선수들로부터 나올 수 있다"며 렴대옥-김주식 조를 소개했다. "올림픽은 엄청난 비용과 고질적인 부패로 더럽혀져왔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가들이 적대적이고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다는 (올림픽의) 이상을 구현하려고 한다."

북한 피겨 페어팀은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이 대회에 대비해 6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훈련을 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 유명 코치 브루노 마르코트와 함께였다. "그들은 매일같이 나에게 묻는다. '우리가 진출할 수 있다고 보세요? 우리 기량이 충분한가요? 진출하려면 뭐가 더 필요한가요?'" 마르코트 코치의 전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들의 메달권 진입 전망은 밝지 않다는 평가다. 9월 대회에서 이들은 애초 준비했던 '트리플 살코(3회전)'를 '더블 살코(2회전)'로 낮췄다. 연습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층 난이도 높은 '쿼드러플 살코(4회전)'를 구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지난해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5위에 올랐다. 결선 진출팀 중 밑에서 두 번째였고, 1위와의 점수차(합계)는 60점이 넘었다.

마르코트 코치는 희망을 본다. "그들은 매우 의욕이 넘치고 긍정적이다. 그럴 줄은 몰랐다. 그들은 스폰지 같다. 몹시 (더 많이) 배우고 싶어한다." 24일 대만에서 열린 '2018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렴대옥-김주식 조는 쇼트프로그램에서 65.25점(4위)을 기록했다. 지난해 세운 종전 최고점수(64.52점)를 또 한 번 넘어섰다.

지난 9월, 렴대옥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챔피언이 될 때까지 계속 성장하고 싶다." 평창의 관중들은 두 선수의 도전에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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