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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퇴사했다

딱 내가 그랬다. 신입일 때 나는 늘 일찍 출근했고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마감 때가 되면 할 일이 딱히 없어도 주말에 출근하곤 했다. 당시 난 이창민 기자가 주인공이 된 서사에 흠뻑 취해 있던 것 같다.

나는 퇴사했다. 그리고 내 주위 몇몇은 나의 퇴사를 놀랍게 생각했나 보다. 아마 내가 이 직업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내가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려 한다.

취직 전 내 꿈은 '글 써서 돈 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자가 됐다. 글을 썼고 그걸로 돈을 벌었으니 나는 꿈을 이룬 것 (적어도 이뤄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이창민 기자'라는 자아를 만들어냈고, 어느 순간부터 그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학창시절 난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폐쇄적인 아이였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당시 몇 안 되는 친구는 내가 꼭 상자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게 서툴고 어려워 상자 속에 숨어버린 아이. 그래도 그 작은 상자 속에서 꽤 섬세하게 내 마음을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글은 작가와 독자의 세상에 대한 대화이지 않은가. 그 시절 난 사람과 세상을 두려워했는데...세상 밖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이 직업을 이룰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를 극복해야 했다. 타고난 나를 벗어나지 않으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를 꾸며냈다. 원래의 이창민과 다른, 훌륭한 성품과 자질을 가진 새로운 자아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는 수많은 나로 구성된다는 걸 알았다. 장소, 상황, 상대에 따라 나라는 모습은 꽤 달라진다. 다른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의 하루는 무수히 많은 나를 직면하는 순간으로 채워진다. 난 매번 다른 가면을 필요할 때마다 꺼냈다.

취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창민 기자'의 자아로 살았다. 이 자아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밝고 유쾌해서 사람들과 늘 잘 어울리며 소탈하고 긍정적이라 놀리거나 무시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이창민 기자라는 이상적인 자아가 가능한 이유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이상・목표・꿈을 위해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이창민 기자는 일도 잘했다. 모든 행동에는 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창민 기자는 어떤 행동이든 '이창민 기자의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떠올렸다. 만일 도움이 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가?'로 생각을 확장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은 '사람 이창민'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억지로 해낼 내적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예를 들어보자. 난 일주일간 최선을 다했고 심신이 지쳐있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집에서 맛있는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고 싶다. 편의점에서 네 캔 만원에 산 블랑 캔맨주 하나를 따서 꼴깍꼴깍 먹으면 그곳이 천국일 것 같다. 그런 상상을 한창 하고 있던 오후 4시쯤 동료 A와의 저녁 미팅이 잡힌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내 업무와 연관 있는 사람과의 미팅이다. 동료 A는 내가 같이 가주면 좋겠다며 제안한다. 이창민은 이때 행복했던 상상을 잠시 내려두고 '기자 이창민'으로서의 고민을 시작한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

-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인가?

- 기자는 네트워크와 인맥이 중요하다. 동종 업계 사람을 만나두면 여러모로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결국 맛있는 제육볶음과 (정말 맛있거든) 블랑 캔맥주를 뒤로 하고 저녁 미팅을 따라나선다. 이런 일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난다. 나의 하루는 점점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행동을 결국 해내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점은 누구도 그걸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이창민 기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었다.

어쩌면 이창민 기자로서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어온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믿으면 정말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이창민 기자'에게 불필요하다면 하지 않았고, 정말 하기 싫어도 이창민 기자에게 유익하다면 기꺼이 해냈다.

이런 모습은 의외로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매일 한 시간을 일찍 출근하고 30분씩 늦게 퇴근하는 신입사원들. 이들은 해야 할 일이 없어도 정시에 맞춰 퇴근하지 않는다. 더 일찍 출근하길, 더 늦게 퇴근하길 강요하지 않아도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꽤 많다. (물론 강요하는 곳도 종종 있다)

"갑작스러운 회식도 빠지면 말자." "주는 술은 기쁘게 받아먹자." "복장은 단정히." "반바지는 입지 않아." 같은 것들. 요즘은 이를 '노예근성'이라고도 부른다. 돌아보니 이런 행동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공간과 신입사원이라는 신분에 맞춘 또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현실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겪기 시작하는 직장생활을 '직장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지옥으로 만들고 스스로 이를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비련의 주인공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 이런 세상에서 신입사원의 꽃길은 참고 견뎌야 할 지옥길이 되는 건 아닐까?

딱 내가 그랬다. 신입일 때 나는 늘 일찍 출근했고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마감 때가 되면 할 일이 딱히 없어도 주말에 출근하곤 했다. 당시 난 이창민 기자가 주인공이 된 서사에 흠뻑 취해 있던 것 같다.

가끔 마음에 탈진이 왔다.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오래전 열어젖히고 뛰쳐나왔던 그 상자가 그리워졌다. 나는 다시 상자로 들어갔다. 퇴근하고 나서나 혹은 주말마다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꿔놓고 가만히 멍을 때렸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최선을 다해 칩거하며 마음을 치유했다. "주말을 나를 위해 보내면 괜찮겠지", "퇴근 후에 쉬면 괜찮아지겠지".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매일을 버텨왔다. 그런데도 좀처럼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잦아지기 시작했고 '이창민 기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어느날부터 사람들은 내게 '우울증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퇴사를 결심했다. 계속 회사에 다녔다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이상 나를 방치할 수 없었다. 물론 겁은 났다. 퇴사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경력 단절로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건 아닌지, 남은 할부는 대체 어떻게 갚을 것인지(중요)... 난생처음 사주도 봤다. 반년을 힘들게 고민한 뒤 퇴사했다.

억지로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다. 똑똑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도 줄였다. 페이스북은 나에게는 비즈니스의 공간이자 '이창민 기자'라는 꾸며낸 자아를 전시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나는 더는 의무적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생에 가장 평온한 시간을 살고 있다. 이창민 기자일 때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 일에 대해 고민했고,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했다. 그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혹은 해결해야 하는 대단한 사람 '이창민 기자'를 버리니 삶이 달라졌다.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듣는 요새다. 이전만큼 많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진 않지만 주기적으로 만나며 연락하는 사람은 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집에 손님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해줄 때의 쾌감을 얼마 전에서야 처음 알게 됐다. 내가 몰랐던 '진짜 이창민'을 더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꿈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권장되는 삶의 태도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한다. "꿈을 가져라!!", "드림쓰컴트루!!". 나도 그랬다. 난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녔다. 단지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꽤 멋진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뚜렷한 직업관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 난 내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모두가 '그게 맞다'고 입을 모아 말하니 의심을 품을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내 꿈은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일까? 어쩌면 꿈은 없어도 되는 것 아닐까? 지금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이유는 스스로 내 삶을 조율하며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꿈보다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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