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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를 직접 해명하다 -2

  • 백승호
  • 입력 2018.01.24 11:20
  • 수정 2018.01.24 12:55

진은숙 작곡가는 자신과 서울시향을 따라다니는 온갖 오해들을 해명하기 위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가 밝힌 사임의 이유는 어느 한 가지를 대표해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지켜본 결과 그가 떠난 이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관행처럼 굳어진 사회의 부조리, 정치적 이해에 따라 달라지는 결정, 그리고 미디어의 자극적인 보도.

아래는 “왜 그는 서울시향을 떠났는가?”, “서울시향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홍형진 소설가가 묻고 진은숙 작곡가가 답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 여러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조리’들의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가 홍형진은 음악 애호가로서 오랜 시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허프포스트 등에 관련 글을 기고해왔다. - 편집자 주

[허프인터뷰]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를 직접 해명하다 -1

홍형진 | 그런 성과를 낸 아르스 노바가 도리어 외부 비판의 빌미가 됐다. 서울시의회 등은 관객이 많지 않음을 지적하며 올해 예산을 줄였을 뿐 아니라 상임 작곡가가 서울시향을 위해 곡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공연기획자문 겸직으로 더 많은 연봉을 수령했다며 정명훈 예술감독 때와 마찬가지로 ‘특혜’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거론한다. 요약하면 ‘10년 이상 감투를 독점하고선 세금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진은숙 | 지난 수년간 외부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 어떠한 반박과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내가 몸담은 서울시향이라는 공공단체에 행여나 피해가 갈까 봐 발언을 자제했다.

'누가 어떤 자리에 가면 그 자리를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한다'는 인식은 부정부패가 횡행했던 우리 역사가 남긴 잔재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았고 아직도 꽤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서울시향에서의 일이 나에게는 ‘책임’과 ‘의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권력’과 ‘특혜’인 것이다. 이처럼 인식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해 토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대통령부터 청소부까지 다 그렇다. 그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과 그의 노동력을 원하는 단체나 직장 사이의 협약에 의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부르지도 않는 곳에 쳐들어가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주지도 않는 봉급을 가져가는 일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향이라는 단체에 영입되어 일했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았다. 실제 내 계약 내용을 설명하면 이렇다.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에 의한 의무>

1. 아르스 노바 전반에 걸친 기획과 감독

2. 마스터 클래스 진행

3. 나의 초상권, 모든 작품에 대한 아시아 초연 또는 한국 초연 독점권을 시향이 가짐

2006년 영입 당시의 연봉은 4만1천 유로였다. (환율 변동에 따라 한화 금액은 유동적이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6000만 원은 아마도 대강의 평균 금액으로 보인다.) 이후 8년간 연봉은 동결됐고,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약 5%씩 인상됐다. 공연기획까지 맡았던 2017년에는 자의로 다시 10년 전 수준인 4만1천 유로로 삭감해달라고 요청했다.

계약서에는 상임 작곡가 활동에 들어가는 기타 경비를 시향 측에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12년간 단 한 번도 요청한 적 없이 모든 경비를 개인 부담했다. 2013~15년의 3년간은 외국 오케스트라와의 공동위촉 사업의 예산이 책정되지 않는 바람에 한 문화재단이 나에게 제공한 활동비 전액을 시향에 기부했다. 매해 5000만 원씩 총 1억 5000만 원이다. 아르스 노바 10주년 기념 책자도 이 기부금의 잔여분으로 출간했고 모자라는 경비는 내가 부담했다.

공연기획자문역을 잠시 겸임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역할은 시향의 부탁으로 맡게 됐고 당시 시향에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어서 수락했다. 연봉은 약 6만7천 유로였고 1년 반 가까이 일했으며, 앞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처음 3~4개월 동안은 무보수 자원봉사를 했다. 이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악적 이슈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기에 막중하다.

홍형진 | 상임 작곡가면서 악단을 위해 곡을 쓰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진은숙 | 앞서 설명했듯이 나는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 제도를 나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데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시향과 계약했고 계약서에는 작곡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일 시향이 신작 초연을 원하면 공식적으로 위촉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최소한 3~4년 전에는 위촉해야 하는데 한국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공동위촉 방식으로 참가한 적은 두 번 정도 있다.

무엇보다 신작 위촉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 작곡가의 공동위촉도 내가 기부한 돈으로 운영해야만 했다. 전반적인 예산 부족과 여러 문제로 시향은 나를 위촉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위촉하지도 않았다. 나는 프로페셔널 작곡가로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 있기에 공식 위촉 없이 누구에게 곡을 써주고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계약위반이다.

그리고 나는 만일 시향에 그런 예산이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신작 위촉을 위한 시향의 예산은 상당히 적은 수준인데, 그를 외국 작곡가 두 명과 한국 작곡가 두 명에게 나눠서 위촉하고 있다. 또한 그 위촉 사업은 내가 진행했던 일이다. 내가 나에게 셀프 위촉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이슈를 쉽게 요약하면 ‘내 계약에는 곡 쓰는 것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나는 서울시향이 나에게 작품위촉을 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이다.

홍형진 | 아르스 노바의 수익성에 대한 지적, 그러니까 예산만 많이 들고 관객은 적다는 비판에도 대답해주면 좋겠다.

진은숙 | 현대음악 연주회는 당연히 클래식 음악 연주회보다 관객의 수가 적다. 어디를 가도 그렇다. 도리어 아르스 노바의 관객은 외국의 현대음악 연주회 관객에 비하면 현저히 많다. 그래서 외국에서 초청된 지휘자나 협연자가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는 아르스 노바를 진행하며 한 번도 호객행위를 해본 적이 없다. 지인이나 학생을 동원해 홀을 채우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같아서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의 아르스 노바 관객은 모두 다 자발적으로 그 음악을 들으러 온 진짜 청중이다.

사람들은 현대음악 연주에만 돈이 든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연주하는 데 더 많은 돈이 든다. 또한 여태껏 아르스 노바에 참여한 지휘자와 협연자는 정기 연주회에서 통상적으로 지급받는 연주료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받고 출연해왔다.

그리고 아르스 노바는 단순히 연주회 하나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마스터 클래스 같은 교육 사업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업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렇게 큰 예산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 회사에서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항간에는 ‘서울시향이 베토벤, 말러 연주해서 번 돈을 아르스 노바로 탕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공연계의 메커니즘이나 오케스트라 행정은 상당히 특수하다.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나온 비판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하고자 했지만 일반인 어느 누가 저 복잡한 것을 이해하겠는가.

홍형진 | 서울시향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서울시향에서 처음 논란이 불거진 2011년에 목소리를 높인 건 진보 측이다. 당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갓 취임하던 시기로서 정명훈 지휘자를 ‘이명박의 잔재’로 공공연히 부르는 이도 있었다. 그때 비판을 주도한 서울시 의원은 시간이 흘러 국회의원이 됐다. 반면 논란이 재점화된 2014년에 목소리를 높인 건 보수 측이다. 어느 보수 언론은 서울시향을 보도하며 연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고, 심지어 평양 공연을 거론하며 종북 뉘앙스까지 풍겼다. 시향에서 이런 기류를 느낀 적이 있나?

진은숙 | 서울시향에 대한 정치적 공격은 초기에는 서울시장이 어느 당이냐에 따라 보수 쪽 혹은 진보 쪽에서 해왔다. 이것은 서울시향의 성과가 한 특정 정치인의 업적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선 시향에 대한 정치적 공방, 아니 ‘정치화된’ 공방이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뭔가 초당적 결의하에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북문제나 한일협상 같은 중요한 나랏일에 저런 단결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향에 대한 공격은 이미 오래전에 보수와 진보의 차원을 넘어섰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한마음이 되는 영역은 아마 시향 이슈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시향을 둘러싼 ‘정치화된 공방’ 속에서 진정으로 이 단체를 위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그 과정에서 얻는 개인적 이득이 정치적 행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보인다. 한 오케스트라의 성과나 그 사회에서 갖는 문화적 의미가 단순히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업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다. 어느 정당 출신이 시장이 된다 해도 반대파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홍형진 | 대답 이면에 환멸과 체념이 은근히 녹아 있다. 이런 지루한 정치적 공방을 오래도록 겪으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는가?

진은숙 | 나는 한국사회에서 누군가가 무능력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단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고 특출한 성과를 내면, 즉 말하자면 이 사회에서 '튀는 사람'이 되면 여지없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시향에 대한 논란과 정치적 공격이 시작된 몇 년 전 나는 순진하게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면 공격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시향이 이루는 성과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격은 더욱더 심해졌다. 공격 대상의 위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를 공격함으로써 얻는 것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시향이 서울시에서 주는 예산을 받으면서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남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있었다면 저런 공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말없이 조용히 후지게 일하면서 평화롭게 살든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 훌륭한 성과를 내며 처절한 공격의 대상이 되어 끌어내려지든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페스트와 콜레라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큰 딜레마다.

홍형진 | 서울시향은 공공예술단체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되 서울시의회의 감시를 받는다. 이를테면 '서울시-서울시향-서울시의회'의 삼각 구도인데 흔히 말하는 갑을관계다. 서울시향은 여기서 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런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권력 관계가 작용하지 않았나?’, ‘전문성이나 소통 등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같은 의문이 제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부당하다고 느낀 대목이 있거나 미래를 위해 꼭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듣고 싶다.

진은숙 | 예산을 받아쓰는 입장인 서울시향은 을이 아닌 병이라 할 수 있다. (웃음)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사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감사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와는 별개로) 예산을 받아 쓰는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저 세 기관의 관계는 상하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이슈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홍형진 | 서울시향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만 한참 걸린다. 보도된 내용과 업계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서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전 대표가 직원들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내용이 오래잖아 ‘정명훈의 사주를 받은 직원들이 반기를 들었다’로 탈바꿈했고, 경찰은 관련 의혹이 전 대표를 음해하기 위한 직원들의 조작이라고 발표했으나 이후 검찰과 법원은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도리어 전 대표만 폭행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죄다 앞뒤가 안 맞기에 단편적으로 기사를 접한 대중은 진실에서 괴리된 채 염증만 느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향의 이미지는 하염없이 실추됐다. 이를 지켜보며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 아울러 서울시향 이슈를 대하는 시민에게 당부하고픈 말씀이 있는지?

진은숙 |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원칙이라고 알고 있다. 이 이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재작년에 발표한 글 <진실의 얼굴>에서 다 피력했다. 이 사태는 전 대표와 사무국 직원들 사이의 문제다. 한쪽에선 이랬다고 주장하고 반대쪽에선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일방적인 음모론 여럿이 여론을 장식하면서 단순한 사건이 복잡해졌다. 개인적으로는 힘의 균형이 깨진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빠른 시일 내에 사필귀정이 되기를 바란다.

홍형진 | 작곡가 진은숙에게 서울시향은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는 '서울시향만 아니면 진은숙은 지금이 가장 행복할 수도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작곡계의 으뜸가는 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손꼽히는 거장 작곡가로 자리매김했으며 전 세계의 명문 악단이 작품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그런 진은숙이 무엇을 위해 유학을 떠난 지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인가?

진은숙 | 지난 12년 동안 서울시향은 나의 모든 정열을 불사른 곳인 동시에 외국에 사는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자주 얘기했고 아르스 노바 책자에서도 밝혔듯이 2005년 당시 음악 감독이었던 정명훈 지휘자가 같이 일하자고 제의해온 사실은 나에게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자국에 자리 잡고 일하는 외국 동료들을 많이 부러워해왔기에 나도 뭔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국 출신 음악가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국제 음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12년 내도록 내가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시향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계속된 지난 수년간은 그걸 막아보겠다고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시향의 심각한 내홍을 견디며 루체른 페스티벌의 위촉을 받은 ‘사이렌의 침묵’과 클라리넷 협주곡을 썼다. 직원들의 호소문 사태와 당시 대표의 사임, 또 두 번의 사무실 압수수색 소식을 들으며 보스턴 심포니가 위촉한 ‘마네킹’을 썼다. 음악 감독 사임이라는 황망한 소식을 접한 후엔 새로 맡은 공연기획자문역으로 고군분투하면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썼다. 지난여름엔 시향을 결국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감하며 베를린 필이 위촉한 ‘코로스 코르돈’을 썼다.

항상 시간에 쫓기느라 작품 위촉을 많이 거절했고 내 작품이 연주되는 연주회에 가지 못한 적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심각한 사춘기 열병을 앓은 아들 때문에 가슴앓이까지 해야 했다. 지금 와서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저 많은 일을 견뎠나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망하지 않고 작곡가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웃음) 이만큼 시향은 지난 12년간 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홍형진 | 한국에서 12년간 일하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 서울시향을 둘러싼 각종 논란 이면에는 정치, 언론, 사회 등을 망라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깔려 있다고 보기에 묻는다. 외국과 한국 양쪽에서 동시에 활동해온 당신의 시선이 궁금하다.

진은숙 | 한국에서 일한 12년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힘든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며 폭넓은 인맥을 쌓아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누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사느냐보다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다들 상대방이 듣기 원하는 말을 립서비스로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누군가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얘기해도 그 순간 나는 ‘~빠’ 내지 ‘그와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그 순간부터 그의 적이 몽땅 내 적이 되어버린다. 공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문제 제기나 비판도 항상 감정적 차원에서 비상식적으로 행해지고, 비판하는 사람은 비판의 대상을 마치 원수 대하듯이 개인적 원한을 가지고 파멸시키려고 한다. 게다가 공격의 대상이 된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왕따(Persona non grata) 취급을 받는다. 그가 옳다는 것을 알 때조차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의 적이 자신의 적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서 정도가 지나치다.

홍형진 |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욕주기’ 문화에 대한 일침으로 들린다. 사실 음악계 내막에 밝은 이들은 시향 이슈를 접할 때마다 어떻게 저런 모욕감, 모멸감을 견딜 수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진은숙 | 일전에 우연히 길을 걷다가 큰 빌딩에 부착된 전광판의 아래쪽에 내 이름이 뜨는 걸 봤다. 정명훈 감독, 마이클 파인 자문역, 나 이렇게 세 사람이 10년간 시향에서 150억 원을 ‘가져갔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n분의 1로 나누면 각자 50억 원씩 가져간 셈이다. 그 뉴스 제공자는 세 사람의 연봉을, 그것도 10년 치를 합친 금액이면 더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나름 머리를 쓴 것 같다. 어떤 이는 우리를 문고리 삼인방에 비유해 시향 삼인방으로 칭하기도 했다.

이 뉴스는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그 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수도 없이 찾아오는 모멸감을 참아야 했고 아무 잘못 없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항상 시달렸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작품 쓸 때 나 스스로가 벌레같이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나를 벌레 취급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걸까? (웃음)

누구나 생존하기 위해 자존감이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생존해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갖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스스로가 나를 보호해야만 한다. 이것이 시향을 떠나기로 한 많은 이유 중의 하나다. 내가 살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결정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향을 떠난 지금의 나에겐 그 시간이 너무도 충만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많은 분이 나의 활동을 성원해줬고 단원들과 같이한 연주회는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의 순간이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시련조차도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경험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나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과 권력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가진 행복한 사람이다. 내 일에서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삶을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든든한 가정과 진실한 친구들이 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

홍형진 | 이번 사임을 계기로 당분간 해외에서 작곡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로서는 그것이 서울이나 한국과의 완전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서울시향, 나아가 한국 음악계 전반을 위해 남기고픈 이야기가 있나? 당신과 시향을 아끼고 감사해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진은숙 | 나는 33년째 독일에서 프리랜서 작곡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시향에서 일하건 안 하건 작곡가로서의 진은숙은 변함이 없다. 그동안 시향에서 일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겨 작품활동을 소홀히 한 면이 있다. 그래서 항상 불안했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어 절절매며 살았고 아이가 다섯 살 되었을 때 시향에 영입되어 12년을 일했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은 후부터 18년 동안을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셈이다.

이제 시향을 떠났고 내년이면 자녀도 성인이 되어 분가하니 앞으로의 내 인생은 완전히 나만의 것이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책임과 의무, 그리고 문제들로부터 해방되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기쁘다. 현재 작곡 스케줄이 2023년까지 차 있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작품에만 전념하며 살고 싶다. 작곡가로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것이 한국음악계를 위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

국내 음악 애호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좋은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좋은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 우리가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주길 바란다. 지난 수년간 서울시향을 둘러싸고 너무나 많은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다. 그런 일들은 이 사회가 그것을 용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부조리를 알면서도 침묵한다. 침묵으로 부조리를 용인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이란의 최고 통치자 호메이니가 인도의 작가 살만 루슈디를 살해하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적이 있다. 루슈디가 자신의 작품에서 아슬람을 모욕했다는 게 이유다. 며칠 후 그 작품을 번역하겠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일본 작가가 자객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러자 세계의 어느 누구도 그의 작품을 출판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 책의 번역본이 출판될 수 있었다. 수백 명의 문인이 똑같이 법적인 책임을 지는 발행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끔찍한 살해의 위협까지도 물리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나는 시향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다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분개하고, 통탄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침묵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서울시향이 이 과도기를 잘 극복하고 발전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 12년간 쌓아온 성과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 공연 계획은 이미 탄탄하게 짜여 있고 2019년 공연 계획도 작년에 어느 정도 라인업을 갖춰뒀다. 두 수석 객원 지휘자가 담당하는 연주회의 모든 디테일도 계약이 종료되는 2019년 말까지 다 완성되어 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안정을 찾으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넓게 보고 한마음으로 해나가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도기에 좀 더 도움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유감이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jacta est!) ! 결정이란 그것이 내려지는 순간에는 좋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 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정이 될 수도, 나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인생을 살며 많은 결정을 내려왔고, 그중에는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도 그것이 좋은 결정이 되도록 늘 노력했고, 현재의 내 삶은 그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이 결정이 좋은 결정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서울시향도 내가 떠나는 이 결정이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에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앞으로 모든 것을 잘 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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