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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가 연애하는 법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지적하는 일이 '프로불편러'라면, 나는 기꺼이 불편한 사람이 되겠다. 하지만 연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가끔 혼란을 느낀다. 깊게 관계하는 사이다 보니, 상대방은 느끼지 못한 불편함도 같이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했었던 우리의 이야기

이것저것 쓸데없는 트집 잡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비꼬는 신조어.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아무 의미 없는 단순 표현이나 현상을 쓸데없이 과대해석 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할 목적을 가지고 "이런 XX가 나만 불편해?" 라는 문구로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 나무위키, '프로불편러' 항목 中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나무위키님이 말씀하시는 프로불편러의 정의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지적하는 일이 '프로불편러'라면, 나는 기꺼이 불편한 사람이 되겠다.

하지만 연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가끔 혼란을 느낀다. 깊게 관계하는 사이다 보니, 상대방은 느끼지 못한 불편함도 같이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상대방에게 화가 치미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그 순간 불편함을 숨기면, 그만큼 뜬 눈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야 했다.

다행스럽게, 남자친구와 나는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찾았다. 아래의 대화는 '우리, 연애가 가능할까?'에서 시작해서 '그래도 우리는 행복해!'라는 확신이 들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연애가 힘든 '프로불편러'에게 작은 공감이 되길 바란다.

ROUND1 . 유아인 때문에 3시간을 싸운 이유

▲ (나) 우리가 진지하게 대화했던 날 기억나?

(남자친구) 당연히 기억하지. 유아인 사건.

▲ (나) 옆에서 친구들이 유아인 사태 얘기를 하니까, 너도 한 마디 거들었잖아.

(남자친구) '빛아인'이라고 했었고

▲ (나) 좀 충격이었어. 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남자친구) 근데, 난 네가 왜 화난지 모르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때도 말했지만, 난 그때 유아인 사태의 맥락을 잘 몰랐고, 그냥 네이버 댓글에 사람들이 '빛아인'이라고 했길래 말한 거였지.

▲ (나) 사회 분위기를 보고 되게 절망스러운 시기였어. 그런데 네가 아무런 고민도 안 하고 그런 단어를 쓰니까 나는 또 상처였고.

(남자친구) 그래서 근처 카페 가서 얘기를 했지

▲ (나) 무려 3시간 동안.

(남자친구) 그랬지. 그냥 싸우는 걸로 끝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우린 많이 다르잖아. 일단 나는 현실적이이야. 먹고 사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그래서 세상일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도 않아. 근데 너는 사회문제에 관심 많고, 네가 앞장서서 그런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하고

▲ (나) 이런 차이가 오래도록 문제가 된 것 같아. 너는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나한텐 상처였던 상황이 말았지. 그간 그런 충돌들을 애써 외면했었고.

(남자친구) 유아인 사건은 그게 터진 계기지.

▲ (나) 서로의 성향이 다른 만큼, 너도 서운한 경우가 많았을 것 같은데.

(남자친구) '이런 일은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태도가 좀 그랬어.

▲ (나) 이를테면?

(남자친구) 나는 사회 이슈에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잖아. 그런데 너는 특정 이슈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어. 그러다보니 얘기를 할 때 나는 항상 훈계받는 기분이 들었지.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지레짐작하기도 했잖아.

▲ (나) 맞아. 진짜 그건 내 실수였어.

(남자친구) 기본적인 정보 격차가 있잖아.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좀 더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너무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좀 있었어.

▲ (나) 미안해. 하지만 젠더이슈와 같은 경우는 내가 그 당사자다 보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울컥할 때가 있더라고.

(남자친구) 이제는 이해해.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설명을 듣다 보니 적어도 어떤 마음인지 알겠더라고.

ROUND2. 강남역 사건 : 같은 시간대, 서로 다른 공간

▲ (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이후 세상을 보는 생각이 달라졌던 것 같아

(남자친구)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그 이슈를 접하기 어려웠어

▲ (나) 맞아. 그 점을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오랜 대화 끝에 알 수 있었어. 나도 너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남자친구)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기본적으로 너를 이해하고 싶어. 그런데 내가 너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해도 너는 항상 조금 더 앞에 있더라고.

▲ (나) 당시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이었지

(남자친구) 아무래도 군대는 생각 이상으로 폐쇄적인 곳이라, 그만큼 나는 멈춰있었으니까.

▲ (나) 반면에 사회에 있던 나는 젠더 이슈를 접하고, 걸음을 시작했고, 또 여성이다보니 더욱 그 이슈를 잘 흡수했었고.

(남자친구) 그래서 가끔은 '내가 과연 너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 (나) 나도. 서로가 노력을 한다 해도 만족할 만큼의 스탠스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어.

(남자친구) 그런 소재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한참이고 입을 열지 못했고. 그런데, 이게 우리가 헤어져야 할 만큼 스탠스를 좁히지 못하는 사항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했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될 거란 결심이 서더라고.

▲ (나) "내가 더 노력할게"라고 말해줘서 놀랐어. 사실 헤어지자라는 말이 나올까봐 걱정도 많았거든,

(남자친구) 연인이란 '사랑'을 깔고 시작하는 관계잖아. 서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왜 저렇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쯤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 (나) 심지어 우리는 정치적 스탠스도 다르잖아.

(남자친구) 다르지

▲ (나) 근데, 난 그건 상관없거든.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인권이란 것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래서 관계적인 측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

(남자친구) 결국, 우리 둘 다 한발 더 다가갔던 계기라고 생각해. 서로의 간격을 인정한 거지. 덕분에 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너는 내가 정보적으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아.

ROUND3.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연인에게

▲ (나) 근데 요즘은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는 연인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

(남자친구) 너무 뻔한 얘기지만 대화를 진짜 해야 하는 것 같아.

▲ (나) 네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가급적 말을 꺼내지 않았어.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내 속만 상하더라고.

(남자친구) 말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 (나) 응. 서로 문제가 있으면 숨기려 하지 말고 말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 물론 누구나 싸우기 싫고 감정소모하기 싫지. 하지만 쌓아두다 보면 결국 자신 스스로도 연인과의 관계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

(남자친구) 서로의 공동의 관심사를 키워서 해결해보는 것도 좋고. 이번 학기에 네가 만든 독서모임에 가입했잖아. 그것도 사실 나름의 노력이었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얘기하는지 알고 싶었고, 나도 다양한 시각을 얻고 싶었어.

▲ (나) 나도 요즘 힙합 관련 기사를 많이 읽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

(남자친구) 커플이란 관계는 이해를 기반으로 사귀는 거니까.

▲ (나) 오래 갑시다 우리... 혹시, 마지막으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남자친구) 너도, 나도.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고민하지 말기. 그렇게 하면 답이 없는 것 같아. 이번 계기로 배웠잖아. 대화로 풀 가능성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걸.

▲ (나) 어떤 문제가 발생하건 우리, 얘기하자. 그저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서로 좋아하는 사이니까.

(남자친구) 그래서 오늘은 뭐 먹을까?

▲ (나) 일단 카페에서 시킨 것들 다 먹고 (웃음)

우리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혹자는 저렇게까지 서로 노력해야 할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냥 안 맞으면 차라리 끝내라고도 말할지 모르겠다.

맞다. 우리라고 이런 과정이 행복하겠는가. 이 과정은 전혀 편하거나 재미있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서로가 다르다고 포기하는 것보다 서로 간에 존재하는 간격을 좁혀가는 과정을 오늘도 반복하고 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크게 할 말은 없다.

다만, 우리는 이미 사랑에 빠진 사이가 아니던가.

글·주진희 Twenties Timeline 에디터

이 글은 트웬티스 타임라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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