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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내 나이 30줄에 들어선 이후, 남녀 사이에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떤 고생을 하게 되는지 점차 알게 되니 사람을 만나더라도 조심스럽게 되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도 하나씩 생겨났다.

  • 박지선
  • 입력 2018.01.19 12:01
  • 수정 2018.01.19 12:02

내 나이 30줄에 들어선 이후, 남녀 사이에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떤 고생을 하게 되는지 점차 알게 되니 사람을 만나더라도 조심스럽게 되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도 하나씩 생겨났다. 피해야 할 부분과 필요한 부분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보더라도 이 사람과 내가 맞을지 안 맞을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고생할지 아닐지 단 시간 내에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20대 풋풋한 시절에는 내가 그 사람이 좋으면 상대방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들도 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30대 초반에는 그런 경험들조차 나이가 어렸으니 가능했던 거라고 치부해왔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지혜롭게 사는 방식이고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몇 년이 지나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다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만날 때 고려했던 것들은 그 모두가 사람에 대해 '욕심'을 부렸던 것이라고. '욕심'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 또한 욕심에 눈이 멀어 생각이 곪아버렸고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비열한 인간이 돼있었다.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배우자를 만나려고 할 때,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바라보려고 하기보다 상대방의 조건을, 상황을 보았다. 내가 상대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처하게 될 상황을 예상하며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양보하거나 희생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취하고 싶은 욕심은 갖고 있었다.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만이 나를 이해해주고 양보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관계가 유지될 수 없었고, 손해 볼 장사는 안했기 때문에 시작도 할 수 없는 관계도 많았다. 내 주제는 생각도 안 하고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버티고 있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기도 하다.

여기서 웃기는 상황은 나만 계산하고 따져드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방 또한 나이가 들면서 결혼 생각도 하다 보니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해가며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했던 것 이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그러니 그렇게 콧대 세우고 있었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여하튼, 그렇게 나도 물건 취급당하며 이것저것 점수 매겨지는 게 느껴지니 씁쓸한 마음 감출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선을 보고 나와서 착잡한 마음에 그 동네를 한없이 걸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했을 때 그걸 직감적으로 느꼈을 내 앞의 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내 행동이, 내 생각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들도 나도 상대방에게 느꼈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당신은 나의 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나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군요.'

사람을 만날 때 신중을 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몇 년 전의 나처럼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재고 따지느라 신중해지는 거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람을 물건 취급 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득을 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것은 자신이 채워가길 바란다고 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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