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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역 청소노동자들에게 '인사'는 작은 문제에 불과했다

  • 백승호
  • 입력 2018.01.18 09:20
  • 수정 2018.02.01 02:58

소셜 미디어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수서역 청소노동자들이 열차에 대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사진은 금세 퍼졌다. 여러 매체에 기사도 나왔다. 온라인에서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청소노동자의 본 업무를 벗어난 일을 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수서역을 직접 찾아 물어보았다. 현장에 있는 이용객들은 대체로 청소노동자들의 인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 젊은 이용객은 "이 사람들이 왜 이걸 하는지도 모르겠고 인사를 받으면 불편하다"고 말했다. 노년의 이용객은 "인사는 나누는 거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자녀와 함께 탑승을 준비하고 있던 중년의 이용객은 "기사 다 읽어봤고 노동자의 입장과 회사의 입장도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인사 서비스에 비용을 추가로 지불했다고 봤는데, 같은 돈이면 안전에 먼저 지출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만나본 십수 명의 사람 중 "고객으로서 당연한 대접을 받는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인사' 이야기만 들어보려고 그들을 찾았다. 수서역 청소노동자들이 꺼낸 이야기 중 '인사'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아파서 휴가를 쓰려면 12만 원을 내고 대타를 구해야 했다. 모자란 청소 물품은 자비로 사야 했으며 자녀의 결혼 때문에 며칠 휴가를 내려다가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해야 했다.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다. 여태까지도 계속 논란이 된 문제였고 지금도 문제다. 사용자들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 선상에서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간접 고용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합법의 가장 바깥에서 일하고 있었다. 법이 규정한 최소한은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논란이 된 다음 날, 청소노동자들은 더이상 인사하지 않았다.

한산한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온다. 열차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청소노동자들은 줄을 맞춰 반듯이 서 있다. 요 며칠 화제가 되었던 사진과는 다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는 않는다. 간단한 묵례 후 손님이 빠지길 기다린다. 손님이 다 내리자 노동자들은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열차 출입문에는 "차내 청소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십여 분 뒤 청소를 끝내고 나온 청소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인사 안 하시네요?"

한 노동자는 걸음을 늦추며 대답한다.

"어제부터 하지 말라고 합디다."

"인사하는 게 불편하셨나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나? 시키면 하고 하지 말라면 말아야지."

짧은 말을 남기고 노동자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또 다른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말을 건넸다.

"오늘부터 인사 안 하신다고 들었어요."

청소노동자는 반색하며 묻는다.

"안 그래도 어제 기사가 나가서 어찌나 기쁘던지. 당장 오늘부터 인사 안하잖아요."

"그간 많이 불편하셨나 봐요."

"자존심도 자존심인데... 그것만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할 말이 무지 많아요."

청소노동자를 따라 들어간 곳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이게 십 키로가 넘어요. 무거워서 불필요한 짐 좀 빼자고 말해도 똑같아요."

노동자가 보여준 가방에는 각종 청소도구, 그리고 헤어드라이기와 각종 미용용품이 들어있었다.

"단정하게 하고 다니라고 하니까, 안그래도 무거운데 이걸 들고 다녀요"

다른 노동자가 말을 더한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저희가 객실 청소만 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 있는 쓰레기들 다 분리수거 해야 해요. 차 들어오면 또 나가야 하고, 정말 정신없이 일해요."

그래도 어제 보도가 나간 뒤 인사는 안 해서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냐고 묻자 그들이 대답한다.

"훨씬 낫죠. 그래서 인사는 안하니까. 그런데 거기 서 있는 것도 싫어. 여기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우린 차 진입할 때 플랫폼에 서 있어야 하니까 그 먼지 다 마셔야 해. 자존심 상하는 건 둘째 치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먼지 때문에 눈 아프고 목 아프고. 마스크라도 쓰면 좋은데 보기 싫다고 그것도 못 하게 한다니까?"

허프포스트코리아는 수서역 청소노동자를 만나기 하루 전, SRT 측과 통화를 했다. SRT 측은 "인사 서비스 등 부가적인 활동에 대한 비용을 부담"했으며 "이는 용역업체가 먼저 제안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들은 "이용객들의 반대가 많다면 굳이 청소노동자가 인사하는 것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나 우리 같은 서비스를 다른 업체에서도 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SRT는 이어 "우리는 언제든지 애로사항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이 건의한다면 근무환경을 개선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한때 민원이 들어와서 인사 서비스를 중단한 적도 있지만 하기 원하시는 고객들도 많아 재개했다"며 "많은 사람이 지적했던 것처럼 쇳덩이에 인사했던 것은 아니고 고생하신 기장님과 멀리서 온 승객 여러분께 인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프면 12만 원, 오래 쉬려면 회사 나가야

이야기가 길어지자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노동자들 휴게실을 따라 들어갔다.

"그래도 쉴 공간은 있는데, 여기 보이시죠? 여기서 밥 해 먹고 다 해요."

한눈에 봐도 좁은 공간이었다. 취재에 응한 노동자는 본격적으로 참았던 말을 쏟아낸다.

"우리는 점심시간도 없어요. 배차가 드물 때가 있어요. 30~40분 나요. 보통 그때 밥을 허겁지겁 먹어요"

노동자들이 차량 시간표를 보여준다. 수서역 청소노동자들은 한 조당 두 개의 플랫폼을 담당한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4~50분에 한 대씩 온다. 일 인당 할당된 청소량은 객차 한 대. 쓰레기를 줍고 객차마다 부착된 간이책상을 다 닦고 의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출입구를 걸레로 닦는 데까지 주어진 시간은 15분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한데 모아 분리수거를 한다. 갑자기 열차가 들어오면 또 나가야 한다. 이날은 평일이었다. 운송서비스 특성상 주말에 배차가 더 많다. 주말엔 눈코 뜰 새 없이 일한다고 한다.

이들의 하루 근무시간은 열 네시간이다. 작년까지는 열 네시간 반이었다가 올해부터 30분 줄었다고 한다. 갑자기 근무시간이 준 이유에 대해 이들은 '최저임금' 때문이 아닌가 의심한다. 아침 일곱시부터 나와 저녁 아홉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일한다. 그러고 다음 날 쉰다. 월 15일만 일하면 적게 일하는 것 같지만 워낙 일 근무시간이 많으니, 법정 근로시간인 209시간을 채우고도 남는다. 이들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80만 원 가량이다.

"우리가 나이가 있잖아요. 경조사도 있고. 그거 간다고 빠지면 대타가 와야 하는데, 업체가 여기서 분리수거하는 아저씨를 불러요. 그 사람 5만 원인가 받아요. 근데 이 사람이 이게(청소가) 본업이 아니잖아요. 우리 돕다가 시간 되면 자기 본 업무 하러 가요. 객차 하나당 한 명 씩 들어가야 하는데 사람이 하나 비다 보면 둘이서 객차 세 개를 맡고 그러죠. 사람 하나 더 불러주면 되는데, 그걸 안 해줘요. 그래서 누가 휴가 가면 일이 더 고돼요"

노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에게 연차휴가는 없다. 이들이 휴가를 쓰려면 12만 원을 내고 '대타'를 찾아야 한다. 12만 원은 180만 원을 15일를 나누면 나오는 숫자, 그들의 일당이다. 몸이 아파도 쉬이 쉴 수 없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그 언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먼저 퇴사한 노동자는 딸의 결혼 준비로 며칠 쉬어야 했지만 회사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모양새는 자발적 퇴사였지만 그 직원에게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 직원이 "그래도 해고는 아니지?"라고 묻자 다른 직원 "그게 자른 게 아니면 뭐야"라고 답했다.

"청소 용품도 우리 돈 내고 사서 써요. 물도 안줘서 우리 돈으로 사 먹어요. 밥값? 당연히 없죠. 한 달에 고무장갑 두 개 주는데, 청소하는 데 쓰는 약품이 얼마나 독한데 남아나겠어요? 관리하는 소장이 걸레 몇 개 남았나 숫자 하나하나 다 세요. 월급 그만큼 주는데 밥값 나가지, 물 사 먹지, 청소용품사지, 휴가 한번 쓰려면 돈 들지... 어차피 용역업체가 본사(SRT)에서 받는 돈은 똑같을 테니, 우리 쥐어짜고 물품도 아끼면 그거 다 자기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한때 논란이 되어서 인사를 중단한 적 있다는 사측의 설명도 노동자들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수서역 개통 때부터 일했다는 한 노동자는 인사하는 걸 멈춰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용역업체가 '인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본사로부터 돈을 더 지급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 물으니 어제 기사로 봤다고 한다. 인사하는 대가로 더 받는 임금이 있냐고 묻자 들은 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여기저기 다 일해봤는데 여기 같은 데가 없어요. 정말 갈 데 없어서, 언니들이랑 정들어서 버티고 있는 거지 여기 일할 데 못 돼... 우리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다니까요"

우리는 원칙대로, 언제든 대화할 준비 돼 있어

수서역 청소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그리고 본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하청업체는 (주)대청에스에치다. 대청에스에치는 2009년에 철도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95만 5천 원에서 10만 5천 원을 삭감해 85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하고, 십수 명을 정리해고한 일로 노동자들의 반발을 산 이력이 있다.

노동자가 제기한 문제들을 전달하자 대청에스에치 김윤수 본부장은 먼저 '청소 용품'에 대해 답했다. 그는 "그것 몇 푼이나 한다고 아끼겠나, 개수가 모자라면 언제든 더 사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물품이 모자라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적 있냐고 묻자 그는 "들은 적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현장 관리소장이 처리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본사도 용역업체도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만 들은 적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연차휴가 사용에 대해서 묻자 그는 "우리는 연차수당을 미리 계산해 월급에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받은 월급 180만 원은 시간 외 수당에 연차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실제로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고 연차를 쓰려면 12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요청하자 그는 "먼저 지급한 수당을 차감하는 것뿐이고, 만약 노동자들이 나중에 연차수당을 한꺼번에 받길 원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노무법인 청명의 안태은 대표노무사는 연차수당의 선지급에 대해 "원칙적으로 법 위반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안 노무사는 "그러나 만약 노동자들의 휴가사용 청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면 그건 위법"이라며 "특히 노동자가 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직접 대타를 구해야 한다면 청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노무사는 "연차휴가의 핵심은 수당이 아니라 청구권이지만 노동부는 청구권이 제대로 보장되었는지를 보기보다는 수당을 줬는지에 대해서 주로 확인하는 경향이 있고 사용자도 '돈을 줬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어 노동자의 휴가사용 청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휴게시간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차량이 오지 않을 때 노동자들이 계속 쉰다. 이거 합치면 두시간 가까이 된다 . 오히려 휴게시간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대해서 묻자 "우리 업무 특성상 차가 계속 들어오는데 중간에 쉴 수는 없지 않느냐"며 중간에 비는 시간을 활용해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 노무사는 이에 대해 "애매한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휴게시간은 30분 정도 보장되면 되고, 사용자가 사전에 언제부터 휴게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며 "배차시간이 고정되고 있고 최소 30분 이상 보장되는 시간이 있다면 법 위반은 아니지만 판례는 10분씩 쪼개어서 제공되는 휴게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에 의하면 용역회사가 표면적으로 법을 어긴 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들은 계약서에 "연차수당은 미리 월급에 포함해 지급한다"고 적어놨고 밥 먹기에도 빠듯하지만 어쨌든 남는 배차시간을 이용한 휴게시간도 제공했다. 청소 물품도 지급하기는 했다. 이를 세세하게 다투기 위해서 얼마나 큰 품을 들여야 하는지는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대청에스에치는 언제든 노동자들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말했다. 본사와 같은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노력도 이야기했다. 김 본부장은 "미화원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유니폼도 제작했다"며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하길 바라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업체가 말한 자긍심은 가방의 무게를 더하는 헤어드라이기와 화장품으로 돌아왔다.

달콤한 간접고용, 어떻게 만드는 '비용 절감'일까?

SRT 쪽에 다시 문의했다. 연차휴가 문제, 물품 자비구입 문제, 휴게시간 문제 등 여러 질문을 했지만 결국 내용은 하나였다. "이 같은 문제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본사 측은 "우리가 하나하나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용역회사의 경영에 하나하나 개입한다면 그게 갑질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 일을 하는 용역 업체나 파견 업체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 인천공항공사가 첫 시범을 보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안전과 보안에 관련된 비정규직 3,000명은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7,000명은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가 신호탄을 쏘아올림에 따라 다른 공공기관도 문재인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채용'으로 준수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건 분명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고용안정이 보장되었고 해고의 위험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용역 회사 노동자'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장시간 노동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 저임금 문제 등이 '정규직 전환'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간접고용은 달콤하다. 공고를 내고 업체를 모집한다. 법에서 허용하는 한에서 가능한 저렴한 업체를 고용한다. 종종 이를 "비용 절감 사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비용만 절감하는 게 아니다. 구의역에서처럼 위험도 전가할 수 있고 수서역에서처럼 부당에 가까운 노동행위에 대한 책임도 전가할 수 있다.

용역업체는 어떻게든 입찰에 성공하려고 한껏 비용을 낮추고 이렇게 저렇게 부담을 떠안는다. 결국 계약을 따낸 업체는 수익을 남기기 위해 아끼기 시작한다. 그게 인건비이고, 청소 물품이다.

SRT의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어쨌든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수서역 아니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용역업체가 담당하는 일이라 간섭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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