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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망루를 기억하는 이유

2009년 1월20일 새벽 인터넷 생중계로 불타는 망루를 지켜보았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을 지배한 암흑의 시대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 '1987'이 후일담처럼 읽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이유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이름하여 용산참사.

2009년 1월20일 새벽 인터넷 생중계로 불타는 망루를 지켜보았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을 지배한 암흑의 시대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 '1987'이 후일담처럼 읽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이유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이름하여 용산참사.

1987년 이후 오늘까지, 특히 1998년 이후 오늘까지 사람들이 만난 삶은 몇줄로 그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의 목숨은 노후한 기계부품처럼 교체될 수 있고, 지역주민의 안보는 국가안보라는 큰 목소리에 가볍게 묵살되며, 대도시 공장에 전기를 보내려면 살 날 얼마 안 남으신 노인들의 시골 고향은 사라져도 좋고, 살고자 몸부림쳤을 뿐인 세입자들의 목숨은 땅 '주인'의 권리와 바꿀 수 있으며, 선박 주인의 벌이를 위해 안전을 도외시하고 윗사람한테 보고하려고 전화통 붙들고 늘어지는 동안 청소년을 포함한 생때같은 목숨 304명이 수장되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고.

붙타는 망루에서 가라앉는 배까지, 너무 기막힌 수미상관이다. 적극적 폭력과 소극적 폭력 사이 어디쯤에선가 늘 국가를, 국가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야만을 만났다.

5월 광주가 그토록 많은 청년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학업이고 인생이고를 몽땅 들어서 민주화운동에 바치게끔 했던 원동력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아마 이런 외침이 될 것이다. "국가가, 국군이!!!" 용산에서도 똑같은 말이 들렸다. "국가가, 경찰이!!!"

용산참사가 유난히 비극적인 것은, 국가가 자본의 용역이 되어 국민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근대는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국가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만들자. 그 속에서 우리는 주권자가 되어 서로 돕자. 약한 우리는 국가를 만들어 서로를 보호하자. 그 약속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용산참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거쳐 박근혜 탄핵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를 지배한 것은 '정치의 실종'이었다. 용산참사가 벌어졌을 때의 절망감이 아직도 피부에 소름처럼 남아 있다. 전지구적 금융자본이 벌이는 탐욕의 광란에 맞서야 할 최소한의 정치윤리가 사라진 정권이, 아니 그 자체가 오로지 탐욕의 이빨에 불과한 정권이 우리의 삶을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 불을 질렀다. 마무리하지 못한 광주가 이런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몸의 정치는 아직도 이어지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는 아픈 몸이 아픈 마음으로 사무쳐 버렸음을 드러내 보여준 참사였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골수에 사무쳐 마음의 병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것이 나라냐"고. 이 말은 결코 논리적 언술이 아니다. 신음이다.

흔히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들 한다. 이 말 뒤에는 꼭이라 할 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가 부족해서"라는 말도 따라붙는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마시고 들이켜며 자랐다. 4·19, 인혁당, 긴급조치, 5·18, 박종철, 이한열, 백남기 등등을 부를 것까지도 없다. 6월항쟁으로 민주화와 산업화가 일단락되고 서로 화해했다고 말해지는 지금도, 여전히 곳곳에선 피가 흐른다. 여기저기 드높은 굴뚝에 이 추운 날에도 사람이 올라가 있다. 들리지 않는 말이 들리게 하기 위하여, 몸 그 자체를 들어서 바쳐야만 한다.

우리는 작년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긴 시간을 온몸으로 암흑을 헤쳐나와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는 약속을 맺을 수 있었다. 화염병 대신 간절한 심장에 초를 꽂고 얼며 떨며 스스로 불타오르는 망루가 되어 죽음을 넘고 시대의 어둠을 넘어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잠식되고 붕괴되어온 우리의 공동체는, 곳곳에서 병든 징후를 드러낸다. 어디 목동의 굴뚝 위뿐이랴. 이 나라 제일가는 부유한 아파트 단지 중 하나에서 만원도 안 되는 관리비 부담을 핑계로 경비원을 해고하는가 하면,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장려되어야 할 기술이 가난한 젊은이들의 희망고문의 도구가 되기까지 한다. 모두가 병들고 아프다.

1961년 김수영 시인은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고 썼다.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라고 썼다. 용산참사 9주기를 앞두고, 그 골목 하나쯤은 바로 펴는 것이 아픈 몸의 아주 약간의 치유가 아닐까. 국가의 이름으로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한다. 진실한 말이 회복될 때 국가라는 근대의 약속이 비로소 올바른 정치가 된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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