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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남자인가 봐요

나는 제이미의 팔뚝에서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한 혈액검사 주사바늘자국을 발견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자인가 보다" 라고 했을 땐 "그래,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지만, 정말 외형을 바꾸려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커밍아웃 스토리 15]

2014년 봄, 제이미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주변에서 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 나도 다시 기르는 게 좋겠다고 하자, "다시 기르게 될 것 같지 않아요"라며 무심한 척 답했다. 그리고 어느 더운 여름 날, 대수롭지 않게 듣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남자인가 봐요."

꿈 많은 대학교 2학년, 그렇게 제이미의 트랜스젠더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니, 힘들었던 20년의 정체화 여정이 막을 내리고 커밍아웃과 새롭게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후 2015년 여름, 본격적으로 트랜지션이 시작됐다. 나는 제이미의 팔뚝에서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한 혈액검사 주사바늘자국을 발견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자인가 보다" 라고 했을 땐 "그래,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지만, 정말 외형을 바꾸려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말 제이미가 "Nonbinary transman"(이분법적으로 완전히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지만 남자에 가까운 성별)로 재-정체화를 하는 과정 속에도 트랜지션은 계속 됐다. 몇 달의 남성호르몬 주사로 목소리가 굵어지고, 부작용으로 난 여드름이 얼굴을 덮어가던 2016년 봄에 개명을 하고, 여름에 가슴제거 수술을 하고, 겨울에 유두축소 수술을 했다.

이 전을 돌이켜 보면 난 정말 무지한 엄마였다. 20년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싸인이 그렇게나 많이 있었음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나는 그냥 제이미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움, 불확실함, 또래 여자 남자 양쪽 모두와의 친해지기 어려움, 마음 탁 터놓고 속이 시원해지도록 웃지도 울지도 못했을 고통들. 분명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강요되고,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 정체가 모호해서 반발 할 변명거리를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혼란스러움과 불편함이 20평생을 짓눌렀을텐데, 앞으로 20년 동안 털어내면 다 털어낼 수는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제이미의 권유로 그 해 9월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갔다. 그 부모모임을 통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고, 제이미의 지지자가 되었으며,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사람이 되었다. 성소수자가 무엇인지, 커밍아웃이 왜 중요한지, 성소수자를 향한 어떤 혐오가 있는지, 인권 단체들의 어떤 노력이 있는지, 종교계에서의 시선은 어떤지, 나라별 성소수자의 위치는 어떤지, 우리나라의 보편적 인권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성소수자에게 어떤 법적 제도가 필요한지, 교육 현장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등의 성소수자 관련 정보를 접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오늘의 모든 힘든 상황을 꿋꿋하게 이겨 나가는 성소수자 자녀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용감한 존재들인지 알게 되었다.

"엄마, 이제 행복해요"

제이미가 이름을 바꾸고 외형이 조금씩 남자처럼 바뀌어 가던 어느 날, 환하게 웃으며 정말 자기 자신이 된 기분이라고 행복해했다. 그러나 A대위 사건, 성소수자의 자살, 성소수자 혐오테러 등의 소식을 들으면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고 곤두박질 쳐 밥을 못 먹고 가슴앓이를 하더니, 한 번은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엄마, 저 트랜스젠더를 모르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지지 속에 있어도, 비성소수자 중심의 사회시스템과 아무런 법적 보장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제이미와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두려움, 소외감, 어려움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지내며 2017년도 저물어갔다. 이제 제이미는 두 번째 휴학 뒤의 두 번째 복학을 앞두고 있다. 멋진 계획도 세우고 어깨에 힘이 빵빵 들어가 힘차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 나 지금 행복해요.' 라며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런 날을 만들기 위해 나도 성소수자 부모로서의 커밍아웃 현장으로 더 씩씩하게 나아가야지.

내가 마주한 무지와 혐오

"이리 와 보세요. 할 말이 있어요."

70세 전후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서서 내 쪽을 바라보더니 그 중 한 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2년 전, 당시 4살이던 강호(네눈박이 진돗개)와 산책 중이었다. 내가 몇 발 다가가자 "개는 왜 키우냐?"로 시작해서 "개를 데리고 나오지 말아라. 아파트를 더럽힌다."로 언성을 높이더니 "애나 낳아서 키워라. 어른이 얘기하면 '알았습니다' 해야지 버릇없이 웬 말대꾸냐?"는 내용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단지 내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개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와 견주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견주에게 나도 화가 난다. 견주들이 개티켓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로 말문을 열었고, "난 개를 키우는 사람이고, 개를 키우는 이상 산책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개를 키우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켜왔다. 견주로서 개티켓을 잘 지키면 개를 키운다는 이유로 또 개와 산책한다는 이유로 비난 받을 수 없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경우와 같이 개를 잘 알고 예뻐 해서 키우는 사람도 있고 개를 잘 모르고 싫어해서 키우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어느 한 쪽도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양쪽 모두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아파트가 진짜 좋은 아파트가 아니겠느냐?"는 논지로만 차분히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얼마 후 목소리를 높였던 그녀의 현관 주변의 화단은 철책으로 둘러싸였고, 그 옆을 지나는 산책로의 끝은 막혀버렸다.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에 나오는 정원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였던 것처럼.

우연히 한 번 그녀와 마주쳤는데 우리 아파트사람이 아닌 줄 알고 그랬다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혐오를 마주한 이후로 그리고 그녀와 우연히 마주친 이후로도 상당기간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성소수자들이 마주칠 무지와 혐오가 오버랩되어 저린 가슴을 달래야만 했다.

사랑과 활기로 가득 찬 정원

나를 비롯하여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성소수자들에게 성소수자라 이슈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배운 것과 다르고 내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성소수자가 틀린 것이다. 그래서 혐오해도 되는 존재이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교정을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지만 그 큰 손해와 힘든 현실을 감수해가며 소수자의 자리에 서야만 하는 성소수자의 입장이 되어 보고, 모든 인간이 똑같다는 평등 의식을 가지고 성소수자를 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곧, '성소수자의 인권도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상반되게 다른 입장에도 목적에는 보편적 인권, 사회적 정의라는 공통 사항이 있다.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를 차지하는 비성소수자들이 보편적 인권을 향상시키거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며 교정하여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라고 하는 보수 기독 단체, 아직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찬반의 문제로 인식하는 정치가, 문란한 세상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이웃의 부모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보편적 인권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열쇠를 좋든 싫든 나눠 잡고 있는 것이다.

'거인의 정원'에 사는 거인은 높이 둘러싼 담을 허물어 어린이들이 와서 마음껏 놀게 함으로써 사랑과 활기로 가득 찬 정원을 되찾았다. 산책로를 막은 우리 아파트의 그녀는, 성소수자를 사회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인식하는 우리의 이웃은 언제 담장을 허물까? 언제쯤 잡고 있는 손잡이를 같이 돌려 사랑과 활기로 가득 찬 정원의 문을 열게 될까?

성소수자 자녀들이 "이제 행복해요" 라며 꿈을 한껏 펼쳐 나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성소수자 자녀들에게 사랑과 활기로 가득 찬 정원을 선물하고 싶다.

글·성소수자 부모모임 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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