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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코코'의 한 장면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이 떠오르다

*’코코’와 ‘인사이드 아웃’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픽사의 새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는 스페인어로 ‘Día de Muertos’라 부르는 멕시코 전통 축제를 소재로 한다. 영어로는 ‘Day of the Dead’. 바로 죽은 자들의 날이다. 주인공인 소년 미구엘은 바로 이날 죽은 자의 물건을 건드렸다가 저주에 걸리고,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만나 그들과 저승 세계를 방문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장면은 이때부터 등장한다. ‘코코’가 그리는 저승 세계는 ‘신과 함께’의 그 곳처럼 심판을 받는 곳이 아니다. 죽은 자들이 또 다른 사회와 계층을 이루고 사는 그곳은 이승보다 더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져 있다.

‘코코’의 저승 세계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저승 세계가 이승 세계의 다른 판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미구엘을 돕게 된 헥터는 소년을 데리고 자신이 사는 동네로 향한다. 그곳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잊혀진 죽은 자들이 사는 곳이다. 도시 주변부의 ’빈민가’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코코’의 제작진은 이승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들은 저승에서도 가장 소외된 계층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승에서 전설적인 가수였던 델라 크루즈가 저승에서도 가장 높은 빌딩에서 가장 화려하게 사는 것으로 설정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 낡고 허름한 동네에서 ‘코코’의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가 전개된다. 이승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죽은 자의 또 다른 마지막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점점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이 죽은 자는 헥터의 노래를 들으며 먼지가 되어버린다. ‘기억’은 ‘코코’의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다. 죽은 자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누가 그를 기억하는가, 언제까지 그를 기억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는가. 저승 세계에 온 미구엘의 미션은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복원하는데에 있다.

그동안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쭉 봐온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은 솜사탕의 몸과 코끼리의 얼굴, 그리고 사탕 눈물로 구성된 캐릭터다. 소녀 라일리가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 함께 놀던 친구다. 빙봉은 라일리의 의식 곳곳을 떠돌며 사는 중이다. 아마도 라일리는 무의식 저편에서 빙봉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빙봉은 ‘기쁨이’를 라일리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빙봉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그곳은 바로 ‘앞으로 영원히 떠올릴 수 없는 기억들의 쓰레기장’이다. 그렇게 빙봉은 라일리의 무의식 속에서도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 살아있고, 기억의 소멸로 인해 사라진다는 점에서 ‘코코’의 죽은자와 빙봉은 운명 공동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데비안트 아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인 ‘JuanpaDraws’는 미국에서 ‘코코’가 개봉할 무렵 아래와 같은 그림을 공개했다. ‘코코’ 속의 ‘빙봉’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봉봉을 ‘코코’의 죽은 자들처럼 ‘해골’과 비슷하게 묘사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라일리의 상상이었던 빙봉은 죽어서도 저승세계에 갈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픽사이론’을 대입해보자. ‘픽사 이론’은 작가이자 픽사의 열렬한 팬인 존 네그로니(Jon Negroni)가 만든 상당히 종합적인 연대표다. (한 블로거가 한글로 번역한 내용은 여기에 있다.) 한 마디로 ‘픽사의 모든 영화들은 다 연결돼 있다는 이론이다. ‘업’에서 칼과 엘리가 사인한 엽서가 ‘토이 스토리 3’에 나온다든가, ‘월E’에서 세상을 장악한 기업 바이-엔-라지(Buy-n-Large)가 여러 픽사 영화에서 언급된다는 점에서 추론한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이 이론은 인간들이 ‘월E’에서 세상을 파괴했지만, 이후 ‘몬스터 주식회사’의 몬스터들이 세상을 재건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몬스터들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사용하는 통로는 사실상 과거 인간들이 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인 셈이고, 몬스터들은 과거로 가서 웃음을 충전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7월, ‘인사이드 아웃’을 본 사람들은 ‘픽사이론’을 대입해 빙봉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빙봉은 라일리가 상상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당시 레딧에서는 ‘빙봉이 몬스터주식회사’의 직원일 것이라는 논의가 활발했다. 즉 ‘몬스터 주식회사’의 마이크와 설리가 부에게 그랬듯, 빙봉은 어린 라일리를 웃게 만들었던 실제 괴물인 것이다. 이러한 연결에 따르면 빙봉은 아기 라일리의 웃음을 통해 주식회사에서 실적을 올렸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라일리는 빙봉과의 경험을 ‘상상 속의 친구’로 기억하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라일리의 머릿 속에 있는 빙봉은 어디까지나 그때의 기억일 뿐이고, 실제 '몬스터 주식회사'의 직원인 빙봉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린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있을 거란 얘기다. 그러니 이 이론에 따르면 빙봉은 지금 죽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몬스터가 아이들과 만나는 그 통로가 ‘코코’의 저승세계와도 연결된다면 어떨까? 아주 황당한 가설만은 아니다. ‘코코’를 연출한 리 언크리치 감독은 지난 2017년 8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코코’의 저승세계와 ‘몬스터 주식회사’의 연관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그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논리를 세우길 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를 만드는 일에 집착하여 잘 공감이 가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내면 (보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거리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코코’의 저승 세계가 '몬스터 주식회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우리는 몬스트로폴리스를 만들었다. 친숙하면서도 환상적인, 괴물들의 세계였다. 특이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우리의 세계에 뿌리내린 세계였다. ‘코코’에서도 우리는 사후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젼을 (‘몬스터 주식회사’와)같은 식으로 표현했다.”

'픽사이론'을 정리한 존 네그로니가 '픽사이론'을 업데이트 한다면, '몬스터 주식회사'와 '코코'를 잇는 통로가 가능할 것이고, 그렇다면 '인사이드 아웃'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그림처럼 ‘몬스터 주식회사’의 직원인 빙봉도 '코코'의 저승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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