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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과하다

매체마다 기본 논조가 있고 독자들의 요구를 의식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소한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본말을 뒤집는 것은 삼가야 한다. 태블릿 피시까지 문제삼는 걸 보면 이러다 적폐옹호의 최전선에 나서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련의 보도는 과하다는 느낌이다.

"임종석, UAE의 '74조 원전' 불만 무마하러 갔다" 'UAE측 "탈원전 한국, 원전 건설·운영 제대로 할 수 있나" 따져'

지난해 12월18일치 <조선일보> 1면 제목이다. 2면에도 "UAE가 원전 항의 방한 추진하자...한국, 임종석 급파"라는 제목을 머리로 올렸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항의했고, 이를 무마하러 임 실장이 급히 특사로 갔다는 취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원전 수주 대가로, 유사시 우리 병력의 자동개입 조항을 담은 이면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UAE 문제, 결국 '적폐청산' 소동이 부른 평지풍파'(1월10일치 사설)라고 주장했다. "전 정권을 공격할 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가 제 발등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문제를 국내 정쟁에 이용하겠다고 접근했다가 UAE를 자극한 것이다"라고 정부를 나무랐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주어가 바뀌었다. 현 정권 공격할 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가 제 발등 찍은 건 조선일보고, 외교·안보 사안을 국내 정쟁에 이용하려던 건 자유한국당 아닌가. 내부 독자권익위조차 "팩트 취재와 확인 역량이 전보다 떨어진 것 아닌가"(1월12일치 29면)라며 '오보'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사실관계도 확인 않은 채 급히 내보낸 첫 보도로 한달 가까이 온 나라를 들쑤셔 놓고는 정부만 탓하는 건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엔 '검찰의 최순실 태블릿 보고서가 보여준 진실'(10월21일치 27면) 등 태블릿 피시가 최순실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월간조선> 편집장의 칼럼을 두차례나 실었다. 가짜라고 우기던 태극기부대 등 극단세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기기를 열기만 해도 이미지가 자동 형성되는 섬네일 사진의 기본원리나 시스템 파일의 생성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도한 문제제기다.

군과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 추가수사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사실상 '정치보복'이라는 논조를 반복하고 있다. 군 사이버사 대원들이 작성한 댓글 가운데 정치댓글은 1%에 불과하고 '하루 10건도 안 되는 댓글을 본 사람이 몇명 안 될 것'이라며 그걸로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느냐(2017년 11월27일치 사설)고 주장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초기 파격적으로 1면에 실은 기명칼럼에서 "대선 여론조작 목적이라면 하루평균 방문객 수가 네이버의 1%도 못 되는 사이트를 골랐겠느냐"(2013년 4월24일치)며 국정원을 감싸던 것과 같은 논리다. 사이버사가 이미 상당수 댓글 증거를 은폐했고, 선거 영향력 여부와 관계없이 군부대의 정치댓글 자체가 헌법 위반의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외면한 무리한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이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등 문제투성이 사업까지 적극 지지하면서도, 민간인 사찰이나 댓글공작·블랙리스트 탄압 등 헌정 유린의 국기문란 행위는 외면하거나 축소보도해왔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적폐청산 작업을 '정치보복'으로 폄하하며 피로증을 강조하고, 최근의 권력기관 개혁안을 포함해 대선공약 추진에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보고서조차 '좌향좌'라며 색깔론으로 정부여당을 겨냥하더니 최근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기까지 문제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사 다루듯이 남북회담을 보도한다면 모처럼의 평화 분위기까지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매체마다 기본 논조가 있고 독자들의 요구를 의식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소한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본말을 뒤집는 것은 삼가야 한다. 태블릿 피시까지 문제삼는 걸 보면 이러다 적폐옹호의 최전선에 나서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련의 보도는 과하다는 느낌이다.

언론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잘못된 보도를 방치하면 기레기 언론이 된다. 지나친 보도는 언론끼리 지적해주는 게 맞다. <한겨레>가 창간 초부터 미디어비평을 이어온 것도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한겨레 역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잘못된 보도도 많을 것이다. 발행부수가 제일 많다는 조선일보이니 책임도 더 크게 느껴야 한다. 다른 보수언론과 야당이 최근 무리한 주장을 펴는 데는 조선일보 영향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최근 제정한 윤리규범에서 '속보경쟁을 위해 정확성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든 언론이 새겨야 할 규범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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