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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완전무장한 대가야 기마무사 복원될까

지산동 고분군 남쪽 구역에 자리한 3호무덤 출토 현장. 가야무사들의 말갖춤들이 나왔다.

1400~1500년전 한반도 남부의 가야무사들은 특산 철갑옷과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영호남 산하를 누볐다. 백제군, 신라군과 싸우며 그들이 썼던 무기와 갑옷, 갖춤유물들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됐다. 5~6세기 가야사를 주도한 대가야국의 대표 유적인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동 고분군(국가사적)에서 최근 가야무사들의 갑옷과 칼, 기꽂이 등 관련 유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발굴조사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산동 고분군에서 조사를 벌여 5세기 중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 만든 대가야 무덤 74기와 금동관모, 갑옷, 칼, 인골 등 유물 1천여점을 거두었다고 15일 발표했다.

말등에 놓았던 기꽂이. 권위를 과시했던 말갖춤의 일종이다. 19호묘 출토품

지대가야 전사들이 썼던 투구 출토품. 북쪽 조사구역 27호묘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주목받은 대가야 지배계층의 거대한 떼무덤이다. 특히 1970년대 44, 45호분 등의 발굴 당시 아랫사람을 죽여 함께 묻는 순장의 흔적이 있는 대형 왕릉급 고분이 확인돼 큰 관심을 모았고, 현재까지 봉토무덤 700여기를 포함해 1만기 넘는 고분이 흩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굴된 고분들은 추정하는 봉분 지름이 6~7m로 이전 발굴한 대형고분보다 작고, 대부분 도굴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가야 무사들이 사용했을 갑옷, 무기류, 말갖춤(마구) 등이 집중적으로 무덤 안에서 출토돼 눈길을 모은다. 북쪽 구역의 2호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에서는 금동 관모, 세잎무늬(삼엽문) 환두대도(둥근고리자루큰칼), 말방울, 철제 갑옷조각 등의 중요 유물들이 잇따라 나왔다. 금동 관모의 경우 백제 관모와 모양새가 닮았고, 세잎무늬 환두대도는 왕릉급인 45호분에서 출토됐던 칼과 비슷하다. 이런 유형의 환두대도는 신라권에도 사례가 많아 제작기술을 놓고 가야-신라의 교류양상을 뚜렷히 보여준다.

또, 발굴된 상당수 무덤(북쪽 구역 19·27호묘, 남쪽 구역 3호묘)에서는 철제 투구, 발걸이(등자), 재갈, 말안장, 기꽂이 등 무사가 탔던 말의 말갖춤(마구)들이 다수 출토됐다. 물결 모양의 기꽂이는 말등에 말 주인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놓은 장치다. 경주의 신라 천마총, 만주의 고구려 벽화고분인 통구 12호분, 쌍영총 등에서도 폭넓게 확인되는 당대 주요 교류사 유물중 하나다. 조사단 쪽은 “출토된 철제무기와 마구가 완전무장한 대가야 기마무사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작은 무덤의 주인공을 묻은 주곽과 이 주곽의 방향을 따라 작게 조성된 위쪽의 순장곽 모습.

조사구역 남쪽의 4호묘에서 온전하게 확인된 가야인의 인골.

대가야 고분군에서 작은 무덤에 순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흔적이 처음 드러난 것도 특기할 만하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지산동 고분의 과거 발굴과정에서는 큰 무덤 구덩이에 여러 명을 순장한 흔적이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3기의 작은 무덤에서 무덤 주인공을 묻은 주곽 방향에 맞춰 순장자를 묻었던 것으로 보이는 별도의 작은 곽이 확인됐다. 배성혁 조사실장은 “전시나 하급 관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무덤에도 순장 흔적이 드러난 것은 순장 풍습이 대가야의 유력지배계층에 폭넓게 퍼져있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밖에 남쪽 4호묘에서는 전체 모양이 온전한 사람뼈도 나왔다. 조사단 쪽은 “키가 160㎝를 넘는 데, 성별은 아직 모른다”고 밝혔다.

발굴조사 내용은 16일 오후 1시30분부터 열리는 현장설명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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