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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미국 국방부의 복잡한 속사정

  • 허완
  • 입력 2018.01.16 10:00
  • 수정 2018.01.16 12:00

한 핵·미사일이 초래할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그동안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북핵 문제는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대통령이 필요할 경우 사용할 수 있도록 대북 군사 옵션도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제2의 한국 전쟁' 가능성에 대한 그의 입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8월10일 발언이다.

"내 직책, 내 사명, 내 임무는 필요할 경우 군사적 옵션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시다시피... 미국의 활동은 외교적으로 주도되고 있으며, 외교적 영향력이 있고 외교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다. 나는 현재 바로 그 지점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전쟁의 비극은 충분히 잘 알려져 있다. 파멸이 될 것이라는 것 말고 다른 묘사는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서 방점은 '북한과의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데 찍혀있다. 그는 북한과의 전쟁에는 '어마어마한' 대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최후의 수단'을 써야하는 상황에 대비해 미군이 실제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가 14일 보도한 기사 '군은 조용히 최후의 수단에 대비한다 : 북한과의 전쟁'에 이를 일부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최후의 수단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육군 공수부대 및 특수작전부대의 기지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서는 아파치 헬기와 치누크 수송헬기 48대가 동원된 훈련이 실시됐다. 실시간 포격 상황에서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병력과 장비들을 수송하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에는 네바다주 상공에서 제82공수사단 병력 119명이 한밤중에 C-17 수송기에서 낙하하는 훈련을 벌였다. 외국의 점령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다음달에는 미국 전역에서 1000명 이상의 예비군이 긴급 상황에서 해외 군 병력을 이동시키는 일명 '동원 센터' 구축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미국 국방부는 예전보다 더 큰 규모의 특수작전부대를 한반도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NYT는 전했다. 몇몇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과거 이라크 및 시리아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형태의 '한국 기반 태스크포스' 형태의 초기 단계로 규정한 반면, 다른 관계자들은 이 계획이 대(對)테러 작전에 한정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NYT는 지난 1월2일 토니 토마스 특수작전사령관(대장)이 연설에서 했다는 발언도 소개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경우 5월이나 6월부터 중동에 주둔 중인 특전사 병력이 한반도로 더 많이 배치될 수 있다는 것. 대변인은 NYT에 해당 발언을 확인하면서도 '결정이 내려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20여명의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 및 고위 군 관계자를 인용해 "이 훈련들은 어떠한 한반도에서의 잠재적 군사 행동에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매티스 장관과 각 군 총장의 지시를 상당부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열린 나토(NATO) 연합 군사훈련 당시 미국 공군 82공수사단이 낙하훈련을 하는 모습.

물론 미국이 북한 선제공격을 검토하고 있다거나 전쟁 가능성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의 영향으로 군 고위 지도자들은 컨틴전시 플랜을 가속화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

여기에는 그동안 미군의 대응태세가 다소 미흡했다는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16년 동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시리아에서 반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미국 군 지휘부는 미군이 가공할 군대와 방공 체계를 갖추고 강력하게 무장된 지상군을 제압하는 전통적 임무보다 국가 없는 무장단체를 상대로 한 작전에 더 잘 준비되어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포트 브래그에서의 훈련은 최근 몇 년 동안 실시된 공중 강습 훈련 중 가장 큰 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훈련에서는 지난 훈련들에서 사용된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송기가 낙하산 부대를 위해 동원됐다.

다음달로 계획된 예비군 훈련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마무리된 후 대부분 휴면 상태에 들어갔던 동원 센터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을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 열린 2014 월드컵 같은 과거 글로벌 이벤트에 미군이 특수작전부대를 파견하긴 했지만 그 규모는 보통 100명 가량이었다. 몇몇 당국자들은 이는 한국에서 열릴 (평창) 올림픽에 파견될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일축했다. (뉴욕타임스 1월14일)

참패의 교훈

좀 더 구체적인 동기도 소개됐다. 이에 따르면,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은 최근 국방부에서 열린 여러 회의에서 미군이 준비 부족으로 재앙적 패배를 겪은 역사적 사례를 언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카세린 패스 전투'(1943년)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최초로 참전한 스미스 특임대의 오산 전투(1950년) 사례다.

카세린 패스 전투는 미군이 당시 아프리카 튀니지 전선 카세린 고개에서 독일군의 롬멜 전차군단에 참패한 것을 지칭한다. 오산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미군 선발대로 파견된 스미스 특임대가 북한군에 의해 격파 당한 사건을 뜻한다.

NYT는 밀리 참모총장이 미군이 북한과의 잠재적 전쟁 가능성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언급하며 이 두 전투를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국가단위 정규군을 상대로 한 지상전에 대한 대비태세가 한동안 소홀했던 점을 지적하며 이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은 반군이나 무장단체를 상대로 하는 전쟁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방공 체계, 탱크, 보병, 해군, 심지어 사이버무기"까지 동원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사력을 어떻게 평가하든, 북한이 체계적으로 훈련된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군이나 무장단체와는 다른 차원의 상대다.

사진은 2015년 지명 당시 상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밀리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모습.

다만 이 기사에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관계자들의 발언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한 군 관계자는 이라크 전쟁 때와는 달리, 이같은 훈련이 당장의 전쟁에 대비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점령에 앞서 2002년부터 병력을 이동시켰던 사례와는 다르다는 것.

NYT는 네바다주 훈련을 소개하며 이 훈련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활용될 수 있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훈련은 "전 지구적 준비태세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차관보를 지낸 데릭 촐렛은 "이건 이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 것 만큼이나 단순한 일일 수 있다"며 전쟁에 나서기로 결정했음을 보여주는 "어떠한 거대한 군사적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별히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는 취지다.

NYT는 한국이나 일본을 피하라는 여행경고도 내려진 바가 없고 미국 기업들에게 주의를 내린 곳도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NYT는 "그곳에 있는 미국인과 다른 이들에게 먼저 경고를 하지 않고서 국방부가 한반도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은 낮다고 군 관계자는 말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낸 미셸 플루노이 역시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해보일 듯한 말로 이 상황을 분석했다.

"군대의 임무는 어떠한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도 완벽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국가안보팀의 최대 관심사인 만일의 사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할 필요성은 군 지휘부로 하여금 예정된 훈련 기회들을 준비태세 강화에 활용하도록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만약을 위해서다."

(왼쪽부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그리고, 약간의 정치적 해석

다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안보당국의 최대 관심사가 북한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미국 국방부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무작정 군사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근본적 제약조건 때문이다.

매티스 장관은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그런 옵션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NYT는 '그의 생각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매티스 장관 본인도 그런 옵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미국 정부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군사 옵션은 어떻게든 살려둬야 하는 카드다. 군사적 압박과 외교적 압박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두 개의 옵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그동안 미국은 군사 옵션을 언급하며 북한를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한반도에 막강한 전략자산을 보내기도 했다. 북한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에 따라 조용히 훈련을 강화하고 대비태세를 점검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NYT는 "그러나 1991년 걸프 전쟁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매우 공개적으로 병력을 증강하며 외교적 합의를 하도록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압박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국방부는 예기치 않게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대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같은 준비 상황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을 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약간의 정치적 해석도 따라붙는다. NYT는 이같은 훈련들은 매티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방부가 북한의 위협을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줌으로써 거꾸로 (함부로 전쟁 계획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는 측면이 있다는 것.

또 매티스 장관으로서는 군 체계와 준비태세를 점검함과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효과도 있다. 비교적 차분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매티스 장관이 북한을 겨냥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곤 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추측을 잠재울 수 있다는 얘기다.

NYT는 "매티스 장관과 고위 군 관계자들이 틸러슨 국무장관이 주도하는 북핵 위기 해결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강하게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전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려 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론적으로는 쉬울지 몰라도 균형을 유지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두 지도자들 사이에서라면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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