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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 김원철
  • 입력 2018.01.15 10:23
  • 수정 2018.01.15 10:29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은 다음달 9일이다. 한달도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동안의 훈련을 마무리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는 지금,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출전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남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남북 단일팀 논의 탓이다.

13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남북 당국은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이미 제안했다. 토마스 바흐 아이오시 위원장은 20일(현지시각) 남북한 올림픽위원회·고위관계자 4자 회의를 열기로 했다. 핵심 주제는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다.

통일부도 이런 사실을 시인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통일부 정례브리핑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에 (그 안건이) 들어있다. (우리가 북측에) 제안했고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웅 북한 IOC 위원도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국내 취재진을 만나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성사 여부에 대해 “IOC에서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단일팀이 구성된다해도 기존 선수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엔트리는 23명이다. 이중 22명이 경기에 뛸 수 있다. IOC가 남북 단일팀에 한해 엔트리를 29명으로 늘려주기를 남북은 바라고 있다. 기존 남쪽 선수 23명과 북쪽 선수 6명 등 29명으로 단일팀이 꾸리면 기존 선수들이 모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쪽 선수에게 피해가 없도록 경기마다 엔트리 22명을 번갈아 구성하고 이 가운데 2~3명가량을 북쪽 선수로 채워 시합에 나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23+α' 방식이다.

하지만 '23+α' 방식이어도 선수와 팀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우선, 엔트리가 29명으로 확대돼도 출전 가능 선수는 22명으로 동일하다. 이 숫자는 늘릴 수 없다. SBS 김형열 기자는 '[취재파일] 단결을 위한 단일팀인가? 균열을 위한 단일팀인가?' 기사에서 "경기 출전 엔트리 22명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는 축구에서 우리는 15명이 뛰겠다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모가 극심해 50초~1분 간격으로 선수들이 쉴 새 없이 교체하면서 경기를 치릅니다. 경기 출전 엔트리가 늘어나면 선수들이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되고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출전 엔트리를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IOC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상대팀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상대팀도 허락해서 우리의 경기 출전 엔트리가 늘어난다면... 과연 우리 팀의 경기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닌 남북 단일팀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 쇼'가 되고 말 뿐입니다"라고 주장했다.

'23+α'로 팀이 구성된다해도 어차피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22명 뿐이고, 이 자리에 북한 선수 몫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기존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팀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아이스하키는 공수 전환이 빨라 선수들간 호흡이 다른 단체 종목보다 더 중요하다. 겨우 일주일 남짓 손발을 맞추고 한 팀으로 출전하라는 건 올림픽을 위해 4년간 땀흘려 온 기존 선수와 팀에게 가혹하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승을 거두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투자와 노력을 했고 이제 그 결실을 맺어가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아시아에서도 10대 0, 20대 0으로 크게 지던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이제 세계 정상권 팀들과도 대등하게 맞설 수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남북 단일팀이 구성될 경우 대표팀의 전력 약화는 불가피합니다. 아이스하키는 조직력과 팀워크가 생명인 팀 스포츠입니다. 세계적인 강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인기와 체력을 메우기 위해 우리 선수들은 몇 년 동안 손발을 맞춰왔습니다. 대회를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이 합류할 경우 그동안 힘들게 끌어올린 조직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냈던 탁구나 청소년 축구 단일팀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SBS 김형열 기자, [취재파일] 단결을 위한 단일팀인가? 균열을 위한 단일팀인가?-

선수들이 낙담하는 건 당연하다. 'SBS'가 보도한 선수들 반응을 보자.

신소정(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선수들의 의견과 저희 들의 노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들에 대해서 조금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조수지(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부주장) "저희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합류할) 그 친구들도 분명히 불편한 부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요."

박종아(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선수들) 사기가 떨어지게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열심히 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고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모습 보여 드리도록 노력할 테니까."

선수 출신인 유승민 IOC 위원도 단일팀 논의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들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고 나 또한 이 말을 항상 되새기며 활동한다. 그러나 선수들의 힘은 아직 미약하기만 한 듯하다. 최소한 선수단과 소통은 먼저 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적었다.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인 그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IOC, 북한 체육계 관계자들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8일 출국한다.

그는 '국민일보'와 한 통화에서 “세계적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대승적 측면에서는 단일팀을 환영한다”면서도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단일팀을 구성하자'는 좋은 제안이 격한 논란에 휘말리게 된 건 시기 탓이다. 북한이 갑자기 참가를 결정하는 바람에 단일팀 논의 자체가 촉박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보면 이번 논의가 얼마나 급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남북 단일팀은 역대 두번 꾸려졌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였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축구다. '스포츠서울'에 따르면, 당시 축구 단일팀 구성 때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 생겼다. 하지만 남북이 오래 전 단일팀 구성에 합의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합숙 훈련 및 테스트를 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18명을 가렸기 때문에 승복이 가능했다. 과정이 순탄했기 때문에 결과도 좋았다. 단일팀은 1차전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고 8강까지 진출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은 다음달 9일이다. 한달도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동안의 훈련을 마무리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 유독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만 '멘붕'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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