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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이 건강에 이롭다

음식과 주거가 미칠 효과는 당연하고, 소득이 높아지면 담배를 덜 피우고 운동도 더 많이 한다. 감정과 정서에도 좋은 효과를 미치니 우울감은 줄고 자기 존중감은 커진다. 그뿐인가, 필요한 기간만큼 좋은 교육을 받을 여력이 커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건강 효과를 낸다.

  • 김창엽
  • 입력 2018.01.11 07:13
  • 수정 2018.01.11 07:14

최저임금 인상에 역풍?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 "원가 압박에 식당 폐업 속출". 익숙한 한국의 언론 보도가 아니라,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포브스'에 실린 칼럼 내용이다. 경제가 주저앉는다고 위협하는 그 논리가 한국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국과 미국 모두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2022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이 15달러(약 1만6천원)가 되도록 법으로 정했는데, 2017년 10.5달러 기준이 2018년에는 11달러로 조정되었다. 글을 쓴 경제 전문가는 임금이 15달러에 이르면 이 지역에서만 4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까지 공부할 겨를은 없으나, 적어도 한국 상황에서는 최저임금 '위기론'에 동의하지 못한다. 첫째 이유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장기효과. 임금이 올라 여력이 생기고 밥을 더 많이 사 먹으면, 식당은 손님이 늘고 직원도 더 뽑아야 하지 않을까? 2년 전 나온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봤더니, 2015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거시적'으로는 일자리가 늘 가능성이 더 크단다. "취업자 기준으로 대략 '최저 4000명 감소~최대 7만8000명 증가'의 범위"에서 고용이 변화하고, 소득과 소비 지출이 늘어나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말하면서 '최대 다수의 행복'과 삶의 질에는 왜 무심할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임금이 오르면, 또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만한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면, 지금 한국 사회를 갈라 짓누르는 많은 청년, 비정규 노동자, 빈곤 여성의 삶은 어떻게 될까? 일자리 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일자리의 질이 아니던가? 더 나은 임금과 소득은 문화나 여가, 삶의 질은 물론이고, 당장 생존 조건부터 개선할 것이 틀림없다.

최저임금이 생존과 삶의 질을 바꾼다는 강력한 증거가 건강 변화다. 외국 사례라 아쉽지만, 마침 2014년에 캘리포니아의 정책을 분석하고 전망한 연구가 있어 참고하기에 좋다. 결론부터 말하면, 13달러까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더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고, 성장기에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하게 자라며, 성인과 노인의 만성질환은 줄어들 것이다", "한 해 389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고, 빈곤층의 수명을 5년 늘릴 수 있다".

최저임금에서 건강에 이르는 경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다. 음식과 주거가 미칠 효과는 당연하고, 소득이 높아지면 담배를 덜 피우고 운동도 더 많이 한다. 감정과 정서에도 좋은 효과를 미치니 우울감은 줄고 자기 존중감은 커진다. 그뿐인가, 필요한 기간만큼 좋은 교육을 받을 여력이 커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건강 효과를 낸다. 이른바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일자리와 임금에 영향을 미쳐 건강으로 이어지는 한편, 지식과 지혜, 정보는 그 자체로 건강 효과를 산출한다.

건강과 삶의 질이라니 한가한 소리라는 타박도 있을 것이다. 일자리와 경제, 물론 중요하다. 사실 최저임금의 건강 효과가 이 정도면 경제 효과도 상당할 것이나, 굳이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다. 자칫 '가치'가 역전되지나 않을까 싶어서다. 사람과 그 삶이 경제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면, 임금이든 노동시간이든 그 때문에 병들고 일찍 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일자리와 자영업의 경제 대책도 긴요하지만, 이 조건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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