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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가 이 학생을 징계하는 이유는 '페미니즘'과 '폴리아모리'다

  • 백승호
  • 입력 2018.01.09 12:59
  • 수정 2018.01.09 13:02

한동대학교는 지난 1월 5일, 재학생 석모 씨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자신이 폴리아모리로 사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기독교대학으로서의 한동대학교 설립 정신을 위배한 점'과 '학생처가 허가하지 않은 모임을 강행한 점'에 대해 진술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사실상 징계의 사전절차다. 한동대학교 학생상벌에관한규정 제10조에서는 학생에게 징계를 요구하기 위해 사건 경위서와 징계 대상 학생의 진술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한동대학교 측은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석 씨는 이미 진술서를 요구받기 이전에 학교에 경위서를 제출한 상태다.

폴리아모리는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뜻한다. 학교가 요구한 진술서 내용에 의하면 한동대학교는 개인의 연애방식에 대해 징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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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것은 또 있다. 석 씨는 학교 측은 학생이 '자신이 폴리아모리로 사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고 하지만 이를 은연중에 이야기한 것은 학교라고 주장한다. 이 학교 조원철 교수는 학내 메일을 통해 "다부다처로 살고 있다는 홍승은이라는 작가와 사귄다는 학생"이라며 석 씨를 언급했고 이 메일이 발송된 이후 석 씨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졌다고 석 씨는 이야기한다.

실제 지난달 13일 한동대 학생들로 이루어진 오픈 채팅방에 한 학생이 '폴리아모리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오자 '뉴담(한동대 교내 독립언론) 편집국장이라더라'라는 답이 올라오기도 했다. 석씨는 이후 신상이 드러나는 게 무서워 수업을 참석하기 곤란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석 씨는 이에 대해 "나는 공공연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며 "오히려 학교가 이메일로 (아웃팅을 유도하며) 마녀사냥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관계의 확인을 요청하자 한동대학교 학생처 측은 "더이상 답변드릴 게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학생처가 허가하지 않은 강연 - 페미니즘

이 학생에 대한 징계 사유는 또 있다. 바로 '페미니즘 강연'을 개최했다는 것. 한동대학교 내 학생 모임 '들꽃'은 지난 12월 8일 강연을 주최했다. '흡혈사회에서 환대로'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이 강연은 성노동과 페미니즘을 다뤘다. 강사는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였으며 홍승은, 홍승희 작가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강연 기획에 참여한 석 씨에 의하면 학교는 이날 오전에 갑자기 전화 해 '해당 강연을 허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매 학기 기말시험 개시 1주일 전부터 시행 종료 시까지는 행사 및 집회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학교가 실제 설명한 '강연 불가' 사유는 학칙과는 무관했다고 한다. 학생처장은 석 씨 등 주최 측을 불러 "한동대학교는 반동성애를 선언한 바 있으며 이에 반하는 모임은 허락할 수 없고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처장은 이어 "어차피 반대해도 강연을 열 테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 삼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헌법을 위배하는 인권탄압이자 사상통제"라고 항의하자 학생처장은 "너희는 대한민국 국민 해, 나는 한동대 교수할 게"라고도 답했다고 한다.

석 씨 측은 학교가 강연 직전에도 노골적인 방해를 해왔다고 설명한다. 한동대학교 교수와 교목 등이 강연장 주위로 몰려왔고 일부 학생들은 “학생들에게 자유 섹스 하라는 페미니즘 거부한다”, “창조질서 무너뜨리는 젠더 이데올로기 반대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윤리 파괴하는 페미니즘 반대한다”, “동성애 이론을 세운 주디스 버틀러 소개 반대한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들은 강연 중에도 찾아와 "질문 좀 받읍시다"고 말하며 강연을 중간에 끊는 등 노골적인 방해를 해왔다. 강연이 끝난 이후에도 이 학교 교수들은 "염려대로 동성애 내용이 가득한 모임", "무정부주의가 판치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대학으로 전락할 것", "지진으로 인하여 다시 한번 일어서자는 기도회가 있었던 날에 한동대 캠퍼스 안에서 벌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더욱 심각함을 느낀다", "이번 일이 공동체에 시작된 작은 암이며 암은 제거되는 것이 마땅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된 메일을 보냈다. 몇몇 학생들에 의해 '페미니즘의 가면을 쓴 동성애'와 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들꽃' 강의에 초빙된 한동대 교수, 돌연 재임용 거부당하기도

문제는 또 있다. 학교 측이 느닷없이 이 학교 김대옥 교수에 대한 재임용을 거부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31일 학교 측으로부터 재임용 거부 통지서를 받았다. 언론 등은 김 교수를 들꽃의 '지도 교수'로 설명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들꽃 관계자에 따르면 김 교수는 이전에 들꽃의 초청으로 강연에 한 번 참석한 게 전부라고 한다. 관계자는 '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학교가 문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재임용 거부 소식이 알려지자 한동대 교수협의회는 “교수·학생에 대한 마녀사냥식 사상검증을 중단하라”며 우려를 표했다. 동문들도 ‘김대옥 교수 부당 재임용 거부 철회를 촉구하는 모임’을 결성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학교 측은 이에 대해 '평가 점수가 부족해서 재임용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에 "재임용 거부는 이번 강연 사건과 전혀 무관한 일인가"를 묻자 학교 측은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동료를 손쉽게 제거해 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들뿐 아니라 이런 일의 부당함을 알고도 어떤 이유에서든 침묵하는 이들의 암묵적 동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며 “아쉽지만, 지속해 가려 한다”며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에 맞서 싸울 뜻을 밝혔다.

학교 측의 '인권 탄압적 학칙' 제재하기 힘들어

한동대학교가 설명하는 징계의 이유는 '대학교의 설립 정신 위반'이다. 이 학교 학칙 제2조에는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인재 양성'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리고 한동대학교는 이 '기독교 정신'에 '동성애 반대'가 포함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동대학교 학칙은 이 헌법의 이념에 크게 벗어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제재는 마땅치 않다. 시사인에 따르면 2007년 국가인권위는 국내 60여 대학에 ‘헌법에 위배되는 학칙을 개정하거나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이후에도 전국 각 대학 학생들이 교내외에서 학칙 개정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대다수 대학에서 학칙 개정의 최종 승인권자가 결국 총장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교육부 장관에게 학칙시정 요구권이 있었지만 2012년에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삭제됐다. 국공립대 학생들은 그나마 헌법소원의 여지라도 있지만 사립대는 헌법소원 대상도 아니다. 결국 부당한 학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직 학생 신분인 석 씨의 경우 민사 소송으로 싸움을 이어가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석 씨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대학이 이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규범인 헌법을 위배하는 학칙을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라며 한동대학교의 학칙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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