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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신화를 입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유레카"를 외치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우연한 만남(세렌디피티)까지 포함한 사람들 간의 모든 만남이 힘을 가지려면 '변화/변모'(transformation)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과연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 음성원
  • 입력 2018.01.09 11:52
  • 수정 2018.01.09 11:54

도시의 힘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도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며, 장점이다. 도시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도시의 승리'는 이 같은 도시의 특징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렇게 적시했다.

"뉴욕의 부흥과 쇠퇴 그리고 새로운 부흥은 우리에게 대도시의 핵심적인 역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것은 장거리를 연결하는 비용은 떨어졌지만 인접성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는 사실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캘리그라피(손으로 그린 문자) 트립을 연 병인씨의 에어비앤비 소개 화면.

인간은 개개인이 가진 '소우주'를 통해 서로 영향을 준다. 그 만남의 가치는 '인적 자본의 외부효과'로 설명된다. 글레이저 교수는 이 용어를 두고 "사람들은 다른 숙련된 이들과 같이 일할 때 훨씬 더 생산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유레카"를 외치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우연한 만남(세렌디피티)까지 포함한 사람들 간의 모든 만남이 힘을 가지려면 '변화/변모'(transformation)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과연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대표저작 중 하나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표지. 캠벨은 인간 각자가 자기 인생을 지배하는 '영웅'이 되려면 마땅히 거칠 수밖에 없는 여정을 신화를 통해 설명한다.

인간 정신의 성숙을 포함한 모든 변화의 과정을 수많은 신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수만년 전부터 본성과 관련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온 인류는 '신화'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이를 보면 인간의 변화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 있다. 그 본질을 분석해 낸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개개인이 '영웅'에 이르는 길은 우선 일상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또는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모험은 시작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화든, 소설이든 주인공의 모험은 일상과의 단절에서 시작된다. 일상에서 탈출을 꾀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출발에 성공했다면 '입문' 단계로 접어들어 수많은 관문을 헤쳐나가야 한다. 신화를 보면 특히 고래의 뱃속이나 동굴 같은 일상과 완전히 다른 공간에 들어서면서 고난을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변화를 통해 무언가 얻어낸 주인공은 드디어 일상으로 '귀환'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은 서사구조에서 얻어낸 '변화' 때문이다.

영웅의 서사구조는 이 세상 대부분의 이야기에 녹아 있다.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움직이게 하는 힘 때문이다.

이 서사구조는 도시와 건축에도 종종 적용된다. 지난 2015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그랜드 애비뉴에 들어선 현대예술작품 전시관인 '브로드'(The Broad)가 한 예다.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입구로부터 전시관으로 들어서는 공간을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표현한 이 전시관은 새 세상으로 출발하는 시점의 기대감과 흥분을 그대로 재현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현대예술작품 전시관 '브로드'의 로비 모습.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마치 동굴 속에 들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됐다.

새로운 곳에서의 경험을 상품으로 내세우는 에어비앤비 트립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에어비앤비는 트립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조셉 캠벨이 말하는 신화의 서사구조를 모티브로 썼다. 이 서비스는 전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공유될 수 있으며, 새 경험을 통해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임팩트를 주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트립 호스트는 바로 이 경험을 위한 '조력자'다. 영웅의 서사구조에는 항상 조력자가 존재하는데, 영화 '스타워즈'에서도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돕는 '오비완 케노비'와 '요다'가 바로 그런 존재다. 예컨대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 중인 '한글 캘리그라피(손으로 그린 그림)' 트립은 호스트인 병인씨의 작업실에서 이뤄진다. 한 명의 소우주가 가득한 공간에 입문하여 호스트의 도움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귀환하는 서사구조의 맥락에서, '고래의 뱃속'에서 귀환한 게스트들이 얻어가는 것은 단순한 체험의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 삶이 공유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은 단순히 호스트가 얻는 경제적인 수입만은 아닐 터다. 새 세상에서 겪은 경험에서 게스트는 자신만의 판타지를 완성하며 영혼을 살찌우고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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