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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달러 코트 입었다고 샌더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 김도훈
  • 입력 2018.01.09 09:03
  • 수정 2018.01.09 09:04

해가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 낭비벽이 있다는 가짜 스캔들을 만들어 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나보다.

샌더스는 새해에 열린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 취임식에 코트를 입고 참석했다가 봉변을 겪고 있다. 몰래 잠입했던 보수 성향의 데일리 와이어 기자가 코트의 소매가가 690달러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주류 뉴스 매체들은 재빨리 이를 가지고 와서 갈고닦은 위선적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부자들에 대해 불평하는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700달러짜리 재킷을 입는다.” 뉴스위크의 헤드라인이었다.

뉴스위크는 샌더스가 위선자라며 공격하기를 즐긴다. 6월에도 비슷한 공식을 이용해, 2016년에 샌더스가 1백만 달러를 넘게 모았다고 비난했다. 대부분이 책 인세였다.

2016년 8월에 우리는 샌더스와 그의 아내 제인 오미라 샌더스가 버먼트주 샴플레인 호수 옆에 60만 달러짜리 여름용 별장을 구입했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한다는 부추김을 받았다.

이 모든 ‘분노’의 목적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 최고 부자들의 탐욕스러운 행동을 비난하거나, 엄청난 소득 및 재산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경제와 정치 체제를 고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널리즘은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뿐 아니라 진보적 정치학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나온다.

샌더스가 “억만장자에겐 요트가 몇 대나 필요한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억만장자들의 지원을 받는 공화당의 정치 활동을 공격하는 맥락에서 나온다. 공화당은 미국인 수백만 명에게서 건강보험을 빼앗아가고 부자들에겐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추진한다.

샌더스가 부자들이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괜찮은 생활 수준을 누리게 하기보다 엄청난 재산을 우선시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이건 매체가 힐러리 클린턴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구입하는지 집요하게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 정말 많은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에 들어있지 않느냐이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 전국 정치 위원회 소속인 크리스틴 리디오의 말이다.

게다가 민주적 사회주의는 체제 변화를 꾀하는 이념이며, 경제적 착취에 초첨을 맞춘 시스템을 소비자 개개인의 선택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산업에 자금을 대고 기업을 소유한 소규모의 사람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가치보다 적은 돈을 주고 그 ‘잉여가치’를 자신의 이윤으로 가져간다.

토요타 프리우스를 사든, 공정무역 커피를 사든, 진보적 소비를 아무리 해도 그걸 바꿀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서 윤리적 소비란 없다. 착취가 체제에 내재되어 있다.” 사회주의자 잡지 자코뱅의 부편집자 미가 우트릭트의 말이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 모임의 헌신적 회원인 우트릭트는 개인의 소비 결정에 집착하면 보다 의미있는 형태의 정치적 싸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리디오도 그와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리디오는 만약 ‘어느 기업이 아동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면, 소비자들이 단합해 불매 운동을 펼칠 경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라고 덧붙인다.

리디오와 우트릭트 등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우트릭트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부를 위해 운영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다수의 노동자들이 업계의 ‘투자를 결정하는’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를 위해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노조 결성을 돕고 저소득 세입자들의 퇴거를 막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또한 미국을 자신들의 비젼에 더 가깝게 움직여 줄 거라 믿는 후보들일 경우, 민주당원들을 일부 포함한 좌파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진다. 우트릭트와 자코뱅의 동료들은 북유럽과 비슷한, 강력한 사회 복지를 갖춘 자유시장 자본주의 체제와 비슷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노동자들이 소유한 산업이 지배적인 사회로 가는데 필요한 중간지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즐거움을 주는 물질을 배제하는 금욕적인 세계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좋은 물건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우리가 모두 마대자루 따위나 입고 돌아다녀야 한다고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트릭트의 말이다.

“모두 버니 샌더스처럼 좋은 코트를 입을 자격이 있다.”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우트릭트는 사회학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지만, 본인 역시 가끔은 좋은 것들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최근 70달러를 주고 붉은 색 나이키 스웨이드 스니커를, 180달러를 주고 팀벌랜드 부츠에 샀다.

그렇게 보면 샌더스가 맨해튼에서 12월 31일에 저녁 데이트를 하며 16달러를 썼다고 칭찬받았던 것은 세계적 자본주의에 대한 싸움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의 700달러 짜리 코트 역시 마찬가지다.

허프포스트는 그래도 개인적 사치가 도를 넘으면 불평등에 대한 샌더스의 메시지에 해가 가지 않을지 우트릭트에게 물었다. 만약 20만 달러 정도 하는 람보르기니를 산다면?

“람보르기니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버니가 람보르기니를 산다면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같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at The Bernie Sanders Winter Coat Controversy Gets Wrong About Socialism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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