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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추도시위 주도' 변호사 문재인·노무현 경찰진술 보니

  • 김원철
  • 입력 2018.01.08 11:39
  • 수정 2018.01.08 11:41

1987년 6월27일 부산에서 열린 이태춘 열사 장례식에서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위원장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왼쪽에는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서있다. 앞서 6월18일 부산 시위에 참여한 이태춘 열사는 경찰이 쏜 직사 최루탄에 맞은 뒤 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6월민주항쟁30년 부산사업추진위원회) 누리집

문재인 대통령은 7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화항쟁을 소재로 삼은 영화 '1987'을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무대에 올라 “내내 울면서 아주 뭉클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1987년 부산에서 변호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항쟁에 앞장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영화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박종철 사건’과 군부 독재에 맞서던 30년 전 ‘변호사 문재인’의 ‘투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노무현재단’이 지난 2015년 4월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987년 2월7일 경찰 진술조서에서 두 사람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참고: 노무현사료관, ‘3건의 기록…불의에 저항한 두 사람의 방식)

1987년 2월7일 문재인 변호사에 대한 부산시 경찰국(부산지방경찰청)의 진술조서 일부. 노무현재단(노무현사료관)

1987년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구타와 물고문으로 숨진 뒤 2월7일 전국에서 ‘고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가 열렸다. 당시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날 전국 8개 도시에서 798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부산에서 연행된 사람은 181명이었다. 여기에 노무현·문재인 변호사가 포함돼 있었다.

“박군 사건을 참회하여야 하며 개인적인 불행으로 끝내어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나 민주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모제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인데 그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할 말이 있는가요”라는 경찰의 심문에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답한 말이다. 진술조서의 기록을 보면, 문재인 변호사는 범국민추도회의 정당성과, 박종철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비판을 이어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부영극장(당시 부산극장 옆에 있던 극장) 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라는 경찰의 심문에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하고 경찰이 물리적으로 제지한다는 것은 인권보장에 있어서 성의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일반 국민들이 사회적 불안을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요?”라는 경찰의 추궁에는 “국민들이 공감할 것으로 본다. 참여한 사람들이 호응하였고 구경한 시민들도 마음속으로 호응하였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참고로 이날 두 사람이 연행된 집회의 풍경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오후 1시 55분 부민협(부산민주시민협의회) 임원인 노무현 변호사, 김광일 변호사, 김재규 사무국장, 고호석 사무차장 등의 재야인사, 민주단체 회원, 신민당원, 구속자가족 30여 명이 남포동 부산극장 앞에서 오후 2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 대각사 주변으로 몰려다니며 경찰과 산발적 충돌을 벌였던 시위군중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식을 듣고 집결지인 부산극장 앞으로 몰려와 2시경에는 3백여 명이 집결해 있었다. … 인파는 급격히 늘어났다. '애국가',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노래를 부르면서 군중들은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노무현, 김광일 변호사가 등단하여 연설을 할 때, 뒤늦게 출동한 경찰이 허겁지겁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추모 집회를 해산하고자 했다. 최루탄이 발사되자 추모객들은 즉각 시위대열로 바뀌었다.

(<6월항쟁을 기록하다 4권-부산지역의 6월항쟁> 6월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9~30쪽)

1987 6월10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고문살인 은폐조작 웬 말이냐 군부독재 타도하자”라는 펼침막을 들고 시위대 앞에서서 구호를 외치는 노무현 변호사와 부산시민들. 노무현재단(노무현 사료관) 누리집

한편, 당시 경찰은 문재인 변호사에게 노무현 변호사에 관한 내용을 여러차례 물어보기도 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추도사를 한 사실 외에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요?”라는 경찰의 질문에 문재인 변호사는 “노 변호사가 준비과정에서 관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10여분간 구호와 즉석 추도사를 하였으며 그 외는 특별한 행동에 대하여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경찰이 문재인 변호사에게 이를 물은 것은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87년 2월7일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부산시 경찰국(부산지방경찰청)의 진술조서 일부. 노무현재단(노무현사료관) 누리집

부산 북부경찰서로 연행된 노무현 변호사의 진술 조서를 보면, 처음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나온다.

“나는 오늘 14:30경 전투경찰 복장 경찰관으로부터 연행되어 북부서까지 강제로 끌려온 사실에 있어서 인적 사항을 문의하는데 그것은 사실대로 인적사항을 대주고 그 이후 오늘 본인이 행동한 사실에 관해서는 일체 진술할 수 없습니다.”

이후 진술조서에는 경찰 심문에 대해 ‘묵묵부답’이나 “말 할 수 없다”가 반복된다. 노무현 변호사는 진술조서 마지막 서명도 거부했다. 노무현재단은 “진술조서 마지막 대목엔 노 변호사의 날인 거부 사실과 함께 ‘본직이 진술조서를 읽어줄 때도 듣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다’는 대목이 지문처럼 남아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묵비권 행사에 대해 자신이 쓴 '문재인의 운명'에서 “연행돼 조사받는 자체가 불법부당하므로 일체 조사에 응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나는 이것이 후일 정치인이 된 노무현의 원칙주의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결국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시 경찰국으로 넘겨져 2차 조사를 받았다. 경찰에서 송치된 노무현 변호사에 대해 부산지검은 하룻밤 새 무려 네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노무현재단은 “검찰은 이 과정에서 차장검사 등 간부들을 동원, 부장판사를 법원으로 다시 나오게 하거나 자택까지 찾아가 영장 발부를 종용했고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부산지방변호사회 등은 검찰의 ‘영장발부 종용사건’을 중대한 사법권 침해라고 판단,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이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 사건에 대해 “부산에서 ‘노변’으로 통했던 내 이름이 처음으로 부산 지역 밖으로 알려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관람객들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나는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제일 먼저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을 결성했고, 기간 내내 시위를 가장 치열하게 전개해 타 지역의 시위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쓸 만큼 당시 부산의 민주화 항쟁에 자부심을 보인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부산 거리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질문을 듣던 30년 전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 아닐까.

“가장 마음에 울림이 컸던 대사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였습니다. 실제로 6월항쟁 또 그 앞에서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독재권력도 힘들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부모님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고 하는 말이었죠. 지난 겨울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도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느냐는 말 들으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문재인 변호사의 진술조서는 ‘노무현재단’에서 보다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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