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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언제고 다시 보면 되지. 이제 따로 보기도 좋고. 영원히 못 볼 사람처럼 왜 그래."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모이는 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손수현
  • 입력 2018.01.08 11:09
  • 수정 2018.01.08 11:12

5년에 한 번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만남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 함께 인턴을 했던 몇몇을 제외하곤 두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결혼식 같은 큰 행사가 아니면 다 같이 모이는 일도 드물었다. 매일 붙어 다니던 누군가는 아예 연락조차 닿지 않았고, 각자의 소식을 건너 건너 묻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주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은 대략 5년 주기인 것 같았다. 

"언니, 이 모임은 왜 매번 이렇게 파투가 날까요?"

매주 화요일 저녁, 공공기관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생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불판 위에 익어가는 고기를 부지런히 뒤집으며 그러게,라고 대답했다. 다 같이 모이면 여덟 명 정도 되는 이 무리에서 미리 잡아 둔 약속을 지킨 건 동생과 나, 둘 뿐이었다. 지난 모임에는 다른 두 세명이, 그전에 있던 모임에는 또 다른 두 세명 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수업 마지막 날, 맥주잔을 부딪히며 주기적으로 꼭 모이자고 약속했던 사람들이었기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어렵지 않게 볼 줄 알았다. 

"다들 적응하기 바쁘겠지. 회식도 많고, 일도 많을 텐데. 너무 서운해하지 마."

나는 어떤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 오지 못한 사람들의 해명을 대신했다. 신입사원이라서, 취업준비생이라서, 일찌감치 결혼을 해서. 모든 일을 끝마치더라도 회사 눈치를 보느라 잠자코 앉아 있어야 했던 나도 그랬다. 우리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이 나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그건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아쉬워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서운해하기를 여러 번, 우리는 이 빈번한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했다. 누군가가 나오지 않아도 다음에 보면 되지, 각자의 사정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그만큼 함께하는 시간은 줄고, 또 줄었다. 어떤 모임은 지극히 소수 만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따금씩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일 때도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그걸 꺼내는 것조차 불편한 사이가 돼버린 일도 있었다.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 각자의 인생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헤어짐 앞에 덤덤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임에서도, 회사에서도, 매일을 붙어 다니던 누군가와의 이별 앞에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울적했다. 

"언제고 다시 보면 되지. 이제 따로 보기도 좋고. 영원히 못 볼 사람처럼 왜 그래. "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모이는 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없을 줄로만 알았던 경우를 직접 겪고 나니, 이 만남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지속되기 위한 노력을 서로가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그건 생각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때론 눈물이 핑 돌만큼 속이 상했다.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불편해서. 혹은 바빠서- 

우리의 이유가 늘어갈수록 함께할 기회는 적어진다. 그 기회가 줄어들수록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조만간'은 '영원한 조만간'이 되어간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남은 생애,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우리는 매일 몇 번의 만남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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