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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헌법 초안에는 '워라밸'이 등장한다

  • 백승호
  • 입력 2018.01.04 13:16
  • 수정 2018.01.05 12:01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11개월간의 자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보고서를 내놨다. 개헌특위는 보고서를 통해 "30여년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본권을 신설하였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수 있는 기본권 규정을 보완하였으며,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더 도입함으로써 기본권을 강화"하였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헌특위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생각보다 진보된 의견이 많이 담겼다. 근로는 노동으로 바뀌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직접고용이 헌법에서 규정된다. 물론 이대로 확정되는 건 아니다.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는 개정헌법 초안의 내용을 기본권, 노동/경제, 권력구조 세 파트로 나눠서 소개할 예정이다. 아래는 노동/경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개헌특위 초안의 내용이다.

기본권과 관련한 내용은 여기서 살펴볼 수 있다.

관련기사 : 개정헌법초안 정리(1)-기본권

제35조 ②노동자를 고용할 때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고용 하여야 한다.

⑤노동자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시작부터 달라진 게 보인다. 현행 헌법에는 '근로'라는 단어가 '노동'처럼 쓰이고 있다. 근로는 풀어쓰면 '부지런히 일함'이다. 개헌특위는 헌법에 노동 대신 근로가 등장한 것에 대해 "헌법 제정 당시의 이데올로기적ㆍ체제대립적 상황에 기인"했다고 설명한다. 개헌특위는 이어 "이미 그러한 상황을 극복한 상태이므로 노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출발점으로서 근로를 노동으로 변경한다"고 설명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근로의 의무'가 삭제됐다. 개헌특위는 "근로의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봐야 하고, 헌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것은 강제근로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지 국민의 의무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직접, 무기고용'의 원칙도 새롭게 추가됐다. 고용증진만큼 고용안정이 중요해진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개헌특위 내부에서는 이 조항 추가에 대해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공동위원장은 "안정되고 안전한 직장생활이 보장되고 그것이 노동자의 권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이의가 없으나 지금 힘든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 영세기업 또는 스타트업들의 현실을 얼마나 고려하였는지, 또 이런 고전적 노동의식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지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개정안은 현행 헌법보다 노동자의 권익이 대폭 향상되어 있어 너무 구체적이거나 (건전한 의미에서) 논란 소지가 있는 것은 법률사항으로 하여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대해 개헌특위는 "법률로 규정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얻는 자가 책임도 부담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적 차원에서 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 있다"고 답했다.

제35조 ③국가는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며,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⑦국가는 모든 사람이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번 헌법에 새로 추가된 '노동자 권익 강화' 내용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 중 하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그간 노동계가 끊임없이 주장했던 내용으로 '비정규직의 처우'와 매우 관련이 깊은 내용이다. 개헌특위는 여기에 대해 매우 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설명했다.

개헌특위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은 노동자를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우하는 출발점"이라며 "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동일한 가치가 있음에도 성별 또는 고용형태 등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차별대우(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임금 차별)를 하는 것은 차별을 넘어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설명했다. 개헌특위는 이어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보장의 명시는 제도적 모욕을 예방하려는 헌법제정권자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개헌특위의 설명대로 이는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금지이자 동시에 '성별 간 임금 불평등'에 대한 금지이기도 하다.

개정헌법 초안은 또 국가가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실시하도록 명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헌법으로 들어온 것이다. 개헌특위는 "생활 친화적인 노동환경 및 문화 조성과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사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책무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제36조 ①노동자는 자주적으로 단결할 자유를 가진다.

②노동자는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 체결권과 대표를 통하여 사업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③노동자는 경제적․직업적 이익에 관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파업 기타 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가진다. 현역군인과 경찰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일단 현행헌법에서 한 조항에 나열되었던 노동3권이 단결권과 그 외 권리로 나뉘었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사업 운영 참가권'이다. 이 권리의 기원은 제헌헌법에 등장한 '이익균점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익균점권은 노동자에게 자본가와 함께 기업 활동의 열매를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는 내용으로 이 조항에 의하면 기업 경영자는 월급 이외에도 회사의 이익을 노동자에게 분배해야 한다.

개헌특위는 이익균점권 대신 '사업 운영 참가권'을 포함한 이유에 대해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익균점권보다는 사업 운영 참가권이 보다 현실적"이라며 "이익균점권이 종업원지주제 등의 의미로 제한될 수 있으므로,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결정하는 데 참가한다는 산업민주주의 원리를 실질화하는 사업운영 참가권이 보다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단체행동권이 제한되는 노동자에 대하여 기존에 있던 '주요방위산업체 노동자'는 삭제되었고 현역군인과 경찰공무원은 그대로 남았다. 현역군인과 경찰공무원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보장하되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게 바꾸었다.

그리고 기존에 '법률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었던 공무원의 노동3권이 원칙적으로 보장되게 되었다.

제119조 ②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며, 여러 경제주체의 참여, 상생 및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하여야 한다.

③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의 피해자들에게 징벌적, 집단적 사법구제수단을 보장한다.

우선 주목할 것은 '경제의 민주화'가 강행규정화 되었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의 쏠림 현상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형해화' 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이 내용은 있다. 하지만 현행헌법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기술되어있기 때문에 국가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개정헌법은 이 내용을 "규제와 조정을 하여야 한다"고 바꾸었다. 이렇게 되면 만약 국가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방기하였다면 헌법소원 등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단순한 단어의 차이가 아니라 헌법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동조 3항은 더 구체적이다. '사법구제수단'까지 규정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법구제수단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대표적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이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로 영미권 국가에는 도입되었으나 한국에는 아직 없다.

제120조 ①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보전을 도모하고, 토지 투기로 인한 경제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한다

③ 국가는 주거 및 영업활동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정한 임대차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토지와 관련한 조항에서 새로이 등장한 개념이 몇 가지 있다. 첫번째로는 '토지 투기'에 대한 제한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은 토지를 공적(土地公槪念)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토지에 대한 권리는 다른 재산권보다 훨씬 폭넓은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행헌법은 1987년에 개정되었다. 그 30년 동안 부동산 투기와 아파트 가격은 사회의 끊임없는 문제로 이야기됐다. 개헌특위는 이같은 사회의 흐름을 반영해 '토지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었다. 이것도 앞서 제119조와 마찬가지로 강행규정화 됐다.

주거와 영업활동 안정에 대한 규정도 신설됐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상대적으로 힘의 불균형이 강한 임대차 시장에서의 임차인 문제 등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노동/경제 분야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개헌초안이다.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공무원에 대한 노동3권 보장 등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관행들을 헌법적 차원에서 보호하려는 의지도 초안에 녹아들었다.

빠르면 올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우리는 개헌에 대해 투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헌법은 당장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지만, 당분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이정표로 작동할 것이다. 우리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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