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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떠오른 ‘응답하라 1997'의 기억

  • 강병진
  • 입력 2018.01.04 10:59
  • 수정 2018.01.04 11:09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의 2상 6방에 거주하는 죄수 중 한 명인 유한양(aka 해롱이)은 동성애자다. 이 설정은 지난 6회에서 밝혀졌다. 계속 접견을 오는 애인을 “날 꼰질렀다”며 거부하던 한양은 문래동 카이스트 덕분에 감기약을 다량으로 복용한 후 제정신을 차리고 애인을 만났다. 그의 애인은 남자였다. 이어 7회에서는 한양과 그의 연인 지원의 과거가 소개됐다. 극장에서 살짝 서로의 손을 만지며 데이트를 하는 장면, 그리고 한양이 마약 거래 현장에서 체포된 상황. 또 그 현장에서 드러난 신고자의 진짜 정체까지. 그리고 1월 3일 방영된 11회에서는 한양과 지원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던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평소 동창회에 나간 적이 없던 한양은 지원이 9년 간의 유학생을 끝내고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창회에 나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재회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한양과 지원은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키스한다. 키스를 먼저 하는 쪽은 지원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이 장면을 두 사람의 다리 부분만을 보여주며 연출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연출한 신원호 감독과 ‘극본기획’으로 참여한 이우정 작가가 만든 ‘응답하라’ 시리즈의 팬이라면, 한양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남자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응답하라 1997’의 캐릭터 중 한 명인 강준희다. 당시 그룹 ‘인피니트’ 멤버인 호야가 연기했던 준희는 고등학교 동창인 윤제(서인국)를 짝사랑했고, 심지어 그를 따라 함께 공군사관학교 입학시험까지 함께 치른다.

당시 신원호 PD는 준희의 감정에 대해 “학창시절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준희는 이미 그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을 것이란 암시가 드러났다. 동창회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이 각자 자신의 연인과 배우자와 함께 술집을 떠난다. 그때 스포츠카 한대가 다가와 준희 앞에 선다. 준희는 운전자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오른다. ’응답하라 1997’은 이 자동차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준희와 함께 ‘응답하라 1994’의 빙그레(바로)가 떠오를 수도 있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던 빙그레는 하숙집에서 쓰레기(정우)를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빙그레는 쓰레기에게 선후배 이상의 감정을 품는다. 술자리에서 ‘왕게임’을 하던 도중 정우와 키스를 하고는 더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빙그레는 이후에 만난 진이(윤진이)를 상대로 "이 설렘이 처음 다가온 이성에 대한 호기심인지 사랑인지 확인하고 싶었다”며 키스를 한다. 이 키스로 사랑을 확인했는지, 이후에는 두 사람이 결혼한 모습이 비춰졌다. 사실상 ‘1997’의 준희 보다는 ‘1994’의 빙그레가 “학창시절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감정” 정도에서 그친 캐릭터였다.

이렇게 볼 때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양은 분명 ’응답하라 1997’의 속 준희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다. (설정에 따르면, 준희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고, 한양은 서울대 약대에 들어갔다.)’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제작진이 한양의 캐릭터를 구성하면서 준희를 떠올리지 않았을리는 없다. 윤제가 시원(정은지)이 아닌 준희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두 사람에 만나게 됐다면? 이란 평행우주적인 상상력에서 한양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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