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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폴리페서들의 천국

왜 속칭 '폴리페서'들이 유독 한국에서 판을 치는가? 한국 학계에서 국가권력은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친근한 유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귀족이 된 소위 '명문대'의 전임교수들은 정치·행정 엘리트들과의 네트워킹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 박노자
  • 입력 2018.01.03 10:19
  • 수정 2018.01.03 10:20

지난 2017년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100주년이었다. 한데 동시에 1927년 트로츠키파 대대적 탄압의 90주년이기도 하고 1937년 대숙청의 80주년이기도 했다. 1927년에는, 1917년 혁명으로 집권한 볼셰비키 당내에서의 이념·노선·권력 갈등이 노골화된 것이었다. 보수적인 '일국 사회주의', 즉 사실상의 개발주의 노선을 선호하는 당내 스탈린 등의 주류파는, '세계 혁명'과 '당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트로츠키 등 당의 비주류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는 출당당하고 그의 많은 지지자들이 해직과 유배, 체포의 쓴맛을 보게 됐다. 1917년 혁명 이전에 제정러시아의 권력자들이 혁명가들을 탄압했던 수법으로 혁명정당의 보수파가 그 라이벌인 급진파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탄압은 1937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끔찍한 정점에 달했다. 급진파를 포함하여 약 50만명이 총살형에 처해지고, 고려인처럼 혁명 초기에 소수자 우대 정책의 수혜자가 됐던 마이너리티는 죄도 없이 강제이주를 당해야 했다. 말하자면 1927년과 1937년에 1917년의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 이루어진 셈이다.

나는 역사 속의 인간 심리의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늘 궁금해왔다. 1927년과 1937년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혁명가 출신이었다. 스탈린은 결국 숙청·공포정치의 대명사가 됐지만, 본인도 혁명 이전에 감옥과 유배지를 전전했던 정치 탄압의 피해자이며 1913년에 근대적 의미의 '민족'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만 탄생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민족주의자들의 '민족' 신비화를 강력하게 반박한 명(名)책자를 낸 이론가이기도 했다.

1927년에 당내의 급진파 탄압을 주도한 그 당시 비밀경찰의 수반인 겐리흐 야고다(1891~1938)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직접 행동'을 도모하려 했던 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자들의 행동대에 가입한 '혁명 청년' 출신이었다. 마찬가지로 1937년에 소련 원동에서의 비밀경찰 총책임자로서 고려인 강제이주를 주도했던 겐리흐 류시코프(1900~1945) 역시 15살부터 지하에서 위험천만한 혁명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 대숙청을 주도한 그 당시 비밀경찰의 수반으로 수십만명을 총살형에 처하게 한 희대의 살인마인 니콜라이 예조프(1895~1940)는 십대 초반부터 고된 육체노동을 하면서 부단히 독서하여 독학에 열을 올렸던 전형적인 '선진 노동자' 출신이었다. 다 한때에 나름대로 이상주의적 기질을 보이고 목숨을 내놓고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최악의 탄압자로 거듭나게 된 것인가? 나로서는 이것이 늘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한데 답은 아주 간단할 것이다. 아무리 15살부터 혁명에 투신한 이상주의자며 독학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한 노동자 출신이라 해도, 한번 권력을 쥐게 된 사람의 세계관이 대개는 바로 바뀌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트로츠키와 그 일부 지지자처럼 집권하고 나서도 급진성을 잃지 않은 예외적 경우들이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권력과 특권을 누리게 되면 권력의 유지·확대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 '타락'의 내용은 정치적인 보수화와 민초들의 아픔에 대한 관심의 증발 등이다. 그 어떤 위계질서적인 체제에서도 권력의 세계와 민초들의 세계는 확연히 분리돼 있으며 한번 전자에 몸을 담게 되면 후자와 담을 쌓게 돼 있다.

권력이란, 어쩌면 마약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개체의 생각뿐만 아니라 인성이나 인격, 대인 태도도 바꾸고 만다. 사실 마야콥스키(1893~1930) 같은 혁명시인들이 1920년대에 가장 많이 다루었던 소재 중의 하나는 바로 '공산당원의 오만심'(러시아어로 'komchvanstvo') 같은 것이었다. 몇년 전만 해도 옥중이나 유배지에서 모두가 평등해지는 세상을 위해 싸웠던 과거의 혁명가들이, 혁명 이후 관료가 되고 나서 갑자기 자신보다 신분이 낮다 싶은 사람들에게 무작정 반말질해대고 술김에 식당 웨이터에게 손찌검하는 등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주게 되는 상황을 마야콥스키의 풍자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시들을 읽으면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은 위험천만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든 평생 탄압을 받아온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든 권력을 쥐고 나면 인권과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할 보장은 없다. 굳이 1920~30년대 소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민주화 운동 인사들조차 나중에 공기업 사장 등이 되어 노동탄압을 자행한 적이 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진보 인사'들을 요직에 두루 임명할 '진보적 대통령'은 아니다. 아무리 출발점은 '진보'였다 해도 집권 이후의 보수화는 거의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권력자에게도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권력 견제 시스템이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견제 메커니즘이 있어야 권력자들의 불가피한 기득권 옹호 등을 그나마 약간이라도 균형 잡을 수 있다. 그런 메커니즘이 1920~30년대의 소련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왜곡과 변질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런 메커니즘이 과연 존재하는가? 보통 정치권력의 견제를 언론에 기대하지만, 몇 가지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거의 다 경제권력에 종속돼 있어, '밑'의 이해관계를 표방하는 정치권력의 비판자 되기가 어렵다. 종교계에 그 어떤 기대도 보내기 힘든 것은, 한국 사회에서 주류종교계야말로 정치권력 이상으로 강고하고 비민주적인 기득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계는 어떤가? 사실 한국에서 전임 대학 교원의 신분은 예외적이고 특권적이다. 상당한 상징자본을 손에 쥐고 있는데다가 보기 드문 정년보장을 받고 다른 직종에 비해 시간적 여유도 갖는다. 언론인, 종교계 인사에 비해서도 덜 눈치를 봐도 되는, 부러운 신분이다. 그렇다면 권력 견제를 학계에 기대해도 될 것인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학교수 출신들을 특히 경제, 기술 분야의 정부 요직에 임명하고 '교수평가단'에 국정 관련 과제들을 맡기며 전임교수들에게 임금을 대폭 인상시키는 반면 시간강사들로부터 교원의 지위를 박탈한 박정희 시절 이후로 한국에서 '관학'(官學) 유착은 하나의 전형적인 패턴이 됐다. 교수들은 권력을 견제한다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상징자본을 발판으로 하여 스스로 권력자들의 대열에 참가하려 한다. 최근 20년 동안의 역대 내각들의 구성을 보면 보통 교수 출신 장관의 비율은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 되곤 한다. 보수, 진보 정권의 차이는 그다지 없다. 한국만큼 교수들의 정부 요직 임명이 잦은 나라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왜 속칭 '폴리페서'들이 유독 한국에서 판을 치는가? 한국 학계에서 국가권력은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친근한 유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귀족이 된 소위 '명문대'의 전임교수들은 정치·행정 엘리트들과의 네트워킹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교수에게 정계는 많은 경우에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로비를 잘해서 대형 프로젝트를 따올 수 있는 '시혜자'다. 정치가들과 가까이 있는 게 장점이 되고 자랑이 되는 교수 사회에서는 폴리페서들이 비판받기는커녕 소속 학교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다.

'폴리페서'들이 관계(官界)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동시에 '명문대' 교수층을 위시한 '교수 사회'는 권력을 견제하는 대신에 기득권의 세계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특권화가 되는 만큼 교수는 가면 갈수록 민중으로부터의 존경을 잃게 된다. '교수님'이라는 말이 안하무인의 오만, 속물적인 권력 지향, 스스로 통제 못 하는 물욕 등의 동의어처럼 들릴 시대가 곧 올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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