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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헌법 초안은 생각보다 더 진보적이다

  • 백승호
  • 입력 2018.01.03 10:27
  • 수정 2018.01.05 12:07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11개월간의 자문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보고서를 내놨다. 개헌특위는 보고서를 통해 "30여년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본권을 신설하였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수 있는 기본권 규정을 보완하였으며,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더 도입함으로써 기본권을 강화"하였다고 설명했다.

헌법개정특위는 이번 개헌 초안을 준비하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을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개헌 회의록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의견도 온라인으로 직접 받았다. 국민들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 의견도 개진하였다.

이번에 개헌특위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생각보다 진보된 의견이 많이 담겼다. 물론 이대로 확정되는 건 아니다.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쟁점인 '권력구조'에 대해서 개헌 특위는 아예 분권형 정부제(이원정부제-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결합된 절충식 정부형태)와 대통령4년중임제 두 가지 의견을 병렬적으로 기재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는 개정헌법 초안의 내용을 기본권, 노동, 권력구조 세 파트로 나눠서 소개할 예정이다. 아래는 기본권을 중심으로 살펴본 개헌특위 초안의 내용이다.

제11조 ①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

② 사형은 폐지된다.

사형제 폐지를 명시했다. 개헌특위는 "국제적 인권수준에 발맞추기 위해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으로 이를 헌법에 명시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헌법과 대법원은 여태까지 사형제도를 긍정해왔다(95헌바1). 개헌특위가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이라고 설명하듯이 사형제의 존속이 사회의 큰 '문제'가 되었다기보다는 국제적인 흐름과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단, 개헌특위는 "사형 폐지와 생명권 보장은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하였다.

제13조 ① 모든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재해 및 모든 형태의 폭력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는 국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정부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개헌특위가 초안에 '안전권'을 신설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개헌특위는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가 대표하듯 현대인은 재난, 사고, 폭력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거나 제한당하고 있다"며 안전을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으로 차별화하여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세월호 사건' 등에 대한 반성으로 신설되는 조항인 만큼 "재난 발생 시 국가로부터 구조 및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반영되지는 않았다.

제14조 누구든지 성별, 종교, 인종, 언어, 연령, 장애, 지역, 사회적 신분, 고용형태 등 어떠한 이유로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③국가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고, 현존하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바뀐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차별을 금지하는 범위가 '성별, 종교'에서 '인종, 언어, 연령, 장애, 지역'으로 확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하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신설되었다는 것이다.

적극적 조치는 '채용목표제'와 같이 현존하는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도를 만드는 시도로 형식적 평등을 넘어 내용적 평등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개헌특위는 기존에 판례(98헌마363)와 국가인권위원회법(제2조)으로 이 내용을 승인해왔던 이 내용을 헌법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소수의견으로는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 중 하나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반영되지는 않았다.

개헌 초안에 담긴 '성차별 해소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개정안 제15조는 "국가는 선출직・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직업적·사회적 지위에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18조 ① 장애를 가진 사람은 존엄하고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권리와 사회참여의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법률에 따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필요한 보건의료 및 기타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

현행 헌법 제34조는 장애인의 권리를 '신체장애자'에 한정하고 있다. 개헌특위는 이에 대해 "(장애인의 권리의) 주체를 ‘신체장애자’로 한정하고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유엔 장애인권리 협약 등이 보장하고 있는 정신적 장애를 포함하지 못하고 또한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며 개정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개정헌법 초안은 장애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현행헌법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기존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단순하게 규정하였지만 개정헌법 초안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보건의료 및 기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헌특위는 이에 대해 "현대인에게 신체적·정신적 장애는 누구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보호의 차원을 넘어 자기계발 기회, 일할 권리, 공동체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이라며 "이런 기회를 통해 이들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24조 ① 국가는 국제법과 법률에 따라 난민을 보호한다.

② 정치적으로 박해받는 자는 망명권을 가진다.

이는 기존에는 없던 내용이다. 난민에 관한 규정은 헌법 차원이 아닌 '난민법'에서 제정, 시행되고 있었다.

개헌특위는 "대한민국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국제법을 존중하고, 인종·종교·국적 등을 초월하여 ‘사람’의 자유권적 기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민주국가"라며 "인권보장의 국제화․세계화 추세를 고려하여 난민을 보호하고, 우리 역시 민주화 과정을 겪은 나라로, 정치적 박해를 받는 사람의 망명권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제48조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현행헌법 제29조는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이중배상금지 규정이다.

이는 유신헌법 때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3월 참전 군인들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다 숨지거나 부상을 입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경우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것을 미리 막자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지난 2015년 DMZ 지뢰 폭발사고로 발목을 잃은 군인들이 이 규정 때문에 국가에 손해배상 소송을 하지 못하자 크게 논란이 되었다.

개헌특위는 " 많은 군인과 경찰관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왔음에도 이러한 희생에 대하여 국가는 충분한 지원과 보상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배상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런 나라에서 누가 조국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며, 누가 사회의 안녕질서를 위하여 위험을 무릅쓸 것인가 의문임. 대표적 독소조항이므로 삭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제50조② 모든 자유와 권리는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 조항에서 추가된 것은 없다. 다만 삭제된 게 하나 있다. 기존 헌법은 기본권의 제한 사유로 '국가안전보장'을 들었다. 이는 유신헌법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과거 군사정권이 '국가안전'을 이유로 개인의 기본권을 억압해왔다.

개헌특위는 "분단 사실이 ‘분단의 헌법체제’로 변질됨으로써 국가안전보장이 추상적 목적으로서 과대평가되고 있고 이 규정이 없다고 해서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기본권 제한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본권 제한 사유에서 국가안전보장을 삭제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52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③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 받지 아니하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개헌특위의 초안은 아예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헌법적 내용으로 규정했다. 기존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위헌소송은 줄곧 이어졌지만 헌법재판소에 의해 꾸준히 '합헌'판결을 받았다.

개헌특위는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대법원 판결로 해결할 수도 있으나, 헌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된다"며 이 내용을 헌법에 규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병역거부'라는 단어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도 고민했다. 개헌특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란 용어는 병역의무의 이행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에도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어서 부적절하다"며 '양심적 집총거부자'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이외에도 개헌특위의 개헌 초안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그간 '국민'으로 표현되었던 것들을 모두 '사람'으로 바꾸었으며 아동과 노인에 대한 보호를 더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를 추가했고 '정보접근권' 조항을 신설했다.

빠르면 올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우리는 개헌에 대해 투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헌법은 한 나라의 근본규범이니만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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