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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위안부합의 재협상을 원한다. 일본은 강경하다. 문재인 정부는 난처하다.

  • 허완
  • 입력 2018.01.03 10:03
SEOUL, SOUTH KOREA - MAY 09:  South Korean President-elect Moon Jae-in, of the Democratic Party of Korea, speaks to supporters at Gwanghwamun Square on May 9, 2017 in Seoul, South Korea. Moon Jae-in declared victory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which was called seven months early after former President Park Geun-hye was impeached for her involvement in a corruption scandal.  (Photo by Chung Sung-Jun/Getty Images)
SEOUL, SOUTH KOREA - MAY 09: South Korean President-elect Moon Jae-in, of the Democratic Party of Korea, speaks to supporters at Gwanghwamun Square on May 9, 2017 in Seoul, South Korea. Moon Jae-in declared victory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which was called seven months early after former President Park Geun-hye was impeached for her involvement in a corruption scandal. (Photo by Chung Sung-Jun/Getty Images)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2017년 12월27일 오후 3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2층 브리핑실 연단에 올랐다. 그는 3분30초 정도 이어진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에서 “지난 7월31일 장관 직속으로 설치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태스크포스)가 출범 5개월 만인 오늘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게 됐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 사이의 오랜 현안인 만큼 태스크포스에선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도 치열한 논의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과 보고서는 그동안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제기되어온 비판들에 대해 충실히 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의 염원을 안고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체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 간 합의’(이하 12·28 합의)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한국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 주변국들의 이목을 불러모으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강경화 장관 직속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든 뒤 지난 5개월 동안 12·28 합의가 이뤄진 경위와 내용을 검토, 평가해왔다.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 요구 ‘줄타기’

2015년 12월2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청와대로 초청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한국과 일본 외무장관들은 이날 이른바 '위안부 합의' 체결을 발표했다.

12·28 합의의 뼈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일본의 사과와 일본 정부 예산에서 나온 10억엔의 돈을 받는 조건으로, 이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발표 직후부터 △‘위안부’ 범죄가 일본 정부와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라는 점이 명시되지 않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사과해야 함에도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을 내세운 ‘대독 사과’에 그쳤으며 △앞으로 일본이 추진할 위안부 범죄에 대한 진상 규명과 역사교육 등 재발 방지 조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는 한국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그사이 동아시아에선 엄청난 정치적 격변이 이어졌다. 먼저 2016년 11월 한국에서 타오른 촛불은 12·28 합의를 잉태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국에선 어디로 튈지 알기 힘든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고,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가 2017년 10월22일 중의원선거에서 다시 한번 압승을 거뒀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뒤엎을 만한 거대한 충격이 몰아쳤다. 2017년 7월 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시도한 북한이 9월3일 6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11월29일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인 화성 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12·28 합의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원하는 ‘국내 여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12·28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제약 조건 속에서 태스크포스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이들은 12·28 합의라는 ‘외교 참사’를 일으킨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혹독히 비판하면서도 앞으로 이 합의를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침묵’하는 길을 택했다.

핵심 질문 비켜간 보고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12월27일 오후 서울 외교부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보고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앞부분인 ‘위안부 합의 경위’에선 박근혜 정부가 12·28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이번에 처음 공식 확인된 내용은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27일까지 총 12차례 이뤄진 한-일 국장급 협의(공식 협의)와 별도로 당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대표로 참가한 ‘고위급 협의’(비선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15년 4월11일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12·28 합의의 기본 내용이 대체로 확정됐음이 처음 확인됐다. 오태규 태스크포스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위급 협의의 존재는) 그간 국회나 일부 언론매체에서 제기된 내용이기에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문제다. 이를 공식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먼저 말씀드린다. 국장급 협의는 조연이었다. 실질적인 내용은 고위급 협의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뒷부분인 ‘위안부 합의 평가’에선 12·28 합의에 대해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에서 지적한 ‘피해자 중심주의의 부재’ 등 여러 논점을 큰 틀에서 답습했다. 이 항목에서 새로 확인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2·28 합의에서 한국 사회가 가장 큰 거부반응을 느낀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한국이 제6차 국장급 협의에서 사죄의 불가역성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이를 요구했다. (그러나) 2015년 4월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한 당초 취지와는 달리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고위급 협의에 참여한 이병기 국정원장 등 한국 협상단이 야치 국장이 이끄는 일본 협상단의 노련한 외교 전략에 ‘당했음’을 암시한다. 또 12·28 합의에는 △정대협 설득 △소녀상 철거 △제3국에 세우는 기림비 △‘성노예’라는 표현 사용 등과 관련해 그동안 양국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정대협 부분에서 일본 정부가 “정대협 등 단체 등이 불만을 표명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에 동조하지 말고 설득해주기 바람”이라고 요구하자, 한국 정부는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한국 정부는 설득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화답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보고서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보고서 발표 직후 고노 다로 외무상 명의의 담화를 내 “(12·28) 합의는 양국 정부 사이에 정당한 교섭 과정을 거친 것으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이 보고서에 근거해 이미 실행되고 있는 합의를 변경하려고 한다면 일-한 관계는 관리가 불가능해질 것이며, 그런 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정부가 합의를 계속해 착실히 실시하길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외교 관계를 다소 벗어난 매우 강경한 발언이었다.

본질적 부분 손댈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발표가 공개된 다음날 12·28합의는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 정부는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라는 원칙 아래 빠른 시일 안에 후속 조치를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12·28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외교적 시도를 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로 조성된 미묘한 국제 정세와 일본 정부의 강경한 반대를 뚫고 12·28 합의의 본질적인 부분을 수정할 수 있을까. 태스크포스 보고서가 비워둔 공백을 메우는 부담은 다시 문재인 정부의 몫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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