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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시골로 갔다. 디스크가 나았다

도시생활에 지쳤다. 출퇴근에 2-3시간씩 도로에서 허비하다 이런 삶을 정년까지 계속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껴 돌연 모든 걸 내려놓고 경기도 양평으로 들어왔다.

  • 원성윤
  • 입력 2018.01.02 10:00
  • 수정 2018.01.02 10:38

나는 지난해 9월까지 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였다.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껴 돌연 모든 걸 내려놓고 경기도 양평으로 들어왔다.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두 번째 읽으며 내 선택에 확신과 의심을 오가고 있다. 학원과 책방을 열었다.

시골 생활 한 달 반, 내가 나에게 묻는 1문1답.

- 나와 아내는 왜 시골살이를 자처하고 나섰나?

= 도시생활에 지쳤다. 출퇴근에 2-3시간씩 도로에서 허비하다 이런 삶을 정년까지 계속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차 운전하며 난폭한 습관도 시골에 오니 많이 사라졌다. 끼어들기, 신호 위반, 속도 위반, 이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산다. 회사 다닐 때는 어땠냐고? 말도 마라. 아침 출근길에는 끼어들기 안하면 회사에 제 시간에 가질 못한다. 노란불이 보이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사람이었지.

그리고 직장생활은 스트레스가 많지 않나. 서울은 속도전이다. 빨리 해야되고, 처리해야 할 양도 많다. 그러다보면 야근과 주말 근무가 끊이지 않는다. 대휴나 연차를 내고 쉬어도 몸은 늘 절어있다. 충혈된 눈, 뻐근한 목,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술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 시골 생활 해보니까 어떤가?

= 눈이 오면 집 앞마당부터 쓸어야하고, 아파트보다 훨씬 춥다. 따수미 텐트를 사고, 대성 온수 매트 깔고 보네이도 온풍기 틀고 지내고 있다. 가스 보일러 한달 60만원의 폭탄 요금이 나왔다는 옆집 이야기에 겁나서 보일러는 거의 온수용으로 쓰고 있다. 스노우타이어도 없이 눈길에 들어갔다가 오르막에서 차가 옆으로 흐르는 진귀한 경험을 두어번하고 남양주로 넘어가 바로 스노우 타이어 교체했다. 봄이 어서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 좋은 점은?

= 시골살이 최대 장점은 자연과 가까이 한다는 점이 아니겠나.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에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 겨울에 창너머 하얗게 쌓이는 눈을 보며 핫초코를 마시는 게 참 운치있고 좋다.

(집 전경)

- 벌이는 어떤가?

= 괜찮을리가 없다. 직장생활만 하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사업을 하는데 초반부터 잘 될리가 있나. 하루는 소변기가 동파되서 고치고, 하루는 누전차단기가 내려가고, 청소하고 짐 옮기고 내가 다 해야한다. 귀찮은 거 싫은 사람들은 사업하면 절대 안 된다.

- 학원이랑 책방은 왜 하는건가?

= 시골엔 임대를 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다. 학원 하던 자리에 3,4층 공간이 나와서 덥석 계약했다. 학원은 부동산 실장의 권유, 책방은 주변의 권유와 부부의 판단이었다.

학원 3층은 중고서점인 '더 좋은 문호리 책방', 4층은 글쓰기 학원 '더좋은글쓰기'로 꾸몄다. 원래는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읽힐 목적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애들과 얘길하다 사업을 전면 접었다.

"애들아, 수업 끝나고 도서관 가서 책 좀 읽다 가"

"싫은데요"

"왜?"

"집에 가서 티비 봐야돼요"

애초에 계획했던 책방으로 선회했다. 집에 있던 책들을 모조리 다 가져왔다. 동네 주민들의 중고 책 교환 장소가 어떻겠냐는 선배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했다.

- 영감을 준 게 있었나?

= 2016년부터 양평에 주택들을 계속 보러다녔다. 그러다 JTBC '효리네민박'을 보고 전원 생활을 결심했다. 직장 생활을 벗어나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한 내가 쓴 '식당의 발견' 과 KBS '장사의 신'(북바이북 편) 채널A '서민갑부'(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때문이었다. 퇴사 두어달 전(이때만해도 퇴사 생각은 없었다) 쯤 MBC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를 인터뷰했다. 그가 퇴사 뒤 책방 차렸다. 영감을 많이 줬다. 괜히 폐 끼치기 싫어 지난 주말에 '당인리책발전소'에 조용히 다녀왔다. 옆에 돈까스집 맛있다.

- 전원 생활을 추천하나?

= 시골 살이는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다. 동네 병원은 있으나 전문의 병원이나 종합병원은 30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동네 배달 음식도 서울처럼 발달 돼 있지 않다. 나는 태생이 어촌 출신이라 시골 생활에 자신했지만, 10년 넘는 서울 생활과 직장 생활에 적응한 탓에 초반엔 적잖이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살아보면 또 적응이 된다. 스타필드 가서 장보고 그걸로 저녁 찬 거리하고 점심엔 동네 한정식, 햄버거, 롤케익 집 다니는 재미로 산다. 그리고 한국의 택배는 끝내주지 않나. 배달 다 온다. 집 앞에는 하나로마트도 있다.

오전엔 아이랑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어린이집에 맡긴다. 직장생활 할 때는 아침 7시에 집에서 나가고 빨라도 저녁 8-9시에 집에 오니 아기 얼굴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 무엇보다 직장 생활 마지막 해에 얻었던 목 디스크가 사라졌다. 손끝이 찌릿하고 어깨가 안 돌아가서 도수 치료까지 받고 요가에 개인 피티까지 받아가며 병치레를 했었다. 허리 디스크도 심했다. 두통도 자주 와서 약도 달고 살았다. 폭음도 안한다. 대신에 감기를 얻었다.

난 기자 생활을 10년을 했고 관련 대학원까지 나왔다. 아내는 과장 진급을 한달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왜 미련이 없겠는가.

근데, 인생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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