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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싼 자동차 '타타 나노'의 꿈

타타 나노가 겨냥한 고객층은 차를 살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었다. 차 가격 목표를 10만루피(약 250만원)로 정했다. 타타는 나노가 자동차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적은 참담했다. 결국 딜러들은 자동차 주문을 중단했다.

"약속은 약속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8년 1월10일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자동차엑스포에 나타난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독자개발한 소형 승용차 '타타 나노'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차의 탄생 배경과 타타의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타타는 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는 인구 13억 인도의 최대 재벌이다. 인도 정치의 상징인물이 간디라면 경제의 상징인물은 이 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다.

영국 식민지 시절 사업을 시작한 그는 단순한 기업가에 만족하지 않았다. 민족자립 정신을 바탕으로 철강, 전기, 학교 등을 통해 인도의 힘을 키우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타타엔 인도 최초로 시작한 사업이 많다. 철강, 전기 외에도 럭셔리호텔, 소프트웨어, 항공, 자동차, 은행, 시멘트 등이 타타가 첫 테이프를 끊은 사업 영역이다. 타타 경영의 또 하나의 축은 이익보다 사람을 앞세우는 '신뢰경영'으로 불린다. 타타는 이미 100년 전에 하루 8시간 근무, 무료 의료 지원, 출산 급여, 퇴직금 등의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1932년엔 인도 최대 자선기관을 설립했다. 이는 타타 가문이 속해 있는 파시교 공동체의 박애주의 전통과 관련이 깊다.

타타가 만든 자동차 '타타 나노'는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라는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다. 언뜻 재벌과 상반되는 이미지의 차를 들고나온 이유는 뭘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몇년 전 이륜차를 타고 가는 가족을 보았습니다. 아빠는 스쿠터를 운전하고, 그 앞에는 어린아이가 탔습니다. 뒤에는 아기를 안은 아내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걸 본 나는 그런 가족을 위한 안전하고 저렴한 운송수단을 만들 수 있는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안전하고 효율 좋은 국민차를 만들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오늘 우리는 그 차를 공개합니다."

타타 나노가 겨냥한 고객층은 차를 살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었다. 이들에게 마이카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그는 차 가격 목표를 10만루피(약 250만원)로 정했다. 연구소 엔지니어 500명이 4년간 개발 작업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나노의 가격은 당시 경쟁 차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 해는 공교롭게도 헨리 포드가 미국인들의 마이카 시대를 연 '모델T'를 내놓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값을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차체 크기를 줄였다. 타이어도 작고 가볍게 조정했고, 엔진은 2기통으로 했다. 휠에는 3개의 너트만 배치했다. 에어백은 물론 라디오, 안개등, 히터, 에어컨도 뺐다. 사이드미러는 운전석 쪽에만, 와이퍼도 하나만 뒀다. 트렁크는 따로 없이 뒷좌석을 접어 사용하도록 했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34개의 기술특허로 출원됐다. 일부에선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이 방식을 두고 무소유를 실천한 간디에 빗대 '간디 공학'이라 불렀다.

타타는 나노가 자동차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적은 참담했다. 연간 25만대는 거뜬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지난 10월 현재 누적 판매대수는 30만대에 그쳤다. 결국 딜러들은 자동차 주문을 중단했다.

실패 이유가 뭘까? 중산층의 마음을 잡지 못한 탓이 크다. 사람들한테 자동차는 이동수단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안락한 차를 원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이미지는 되레 구매 의욕을 떨어뜨렸다. 나노는 이제 운명을 다한 것일까? 경영진은 그러나 나노를 퇴출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타타와 나노는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어서다.

그렇다면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어떤 길이 있을까? 전기차 시대가 계기가 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40%로 높일 계획이다. 부품을 절약한 나노의 제작 노하우가 전기차에 통할 수 있다. 비싼 배터리값을 정부가 보조해주면 정부, 소비자, 기업이 '윈윈 효과'를 볼 수 있다. 인도의 우수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활용하면 차의 안전도와 안락감을 동시에 높일 수도 있다. 타타엔 인도 최대 소프트웨어개발업체가 있다.

긍정적인 조짐이 있다. 타타는 합작 형태로 지난 연말 나노를 전기차 택시로 재탄생시켰다. 타타가 차체를 공급하고 합작사가 부품 조달과 조립을 맡는 방식이다. 다른 개발도상국의 국민차 시장을 노크할 기회도 있다. 이웃 방글라데시 기업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타타는 새달 열리는 제14회 자동차엑스포에 나노 전기차를 출품할 예정이다. 가난한 사람도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안전한 가족이동수단을 꿈꾸며 등장한 '타타 나노'는 개발 10년을 맞아 부활의 꿈을 꿀 수 있을까?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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