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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소고기를 싫어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만큼 진실된 자본주의적 명제가 있던가.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고, 무언가 얻으려면 정해진 값어치의 재화나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상식인 세상이다. 그런데 유별나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절대 재화가 하나 있는 듯 하다. 바로 소고기다.

  • 전종현
  • 입력 2017.12.29 11:42
  • 수정 2017.12.29 13:14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만큼 진실된 자본주의적 명제가 있던가.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고, 무언가 얻으려면 정해진 값어치의 재화나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상식인 세상이다. 그런데 유별나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절대 재화가 하나 있는 듯 하다. 바로 소고기다. 직장에서는 소고기로 야근을 독려하고, 교수들은 소고기로 학생을 부린다. 선배는 소고기로 후배의 시간을 빌리며, 친구들은 소고기로 우정을 시험한다. "소고기 사줄게" 주문 한 마디면 모든 일이 신기하게 후뚜루마뚜루 잘 풀릴거라 믿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농촌 사랑이 이렇게 강력했나 싶을 정도다.

소고기 못 먹은 귀신의 원혼이 떠도는 필드는 많지만 유독 뿌리깊게 자리잡힌 분야를 꼽자면 바로 디자인이다. 작게는 포스터, 유인물, 발표물부터 크게는 로고, 브랜딩까지 소고기와 디자인을 등가치환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특히 스타트업 붐으로 새로운 법인들이 우후죽숙 생기면서 디자인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요즘 소고기의 영생력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그들에게 소고기를 싫어하는 디자이너는 독종 중에 상독종이다. 어째서 소느님의 살덩이를 바치는 데 '창조의 신'에게 신탁을 받아 로고를, 회사 소개서를 일필휘지로 만들 수 없는지 의아해한다.

디자인 전공생부터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까지 디자인이란 단어와 연관된 사람들은 소고기와 디자인을 바꾸려고 길게 줄 선 지인들을 마주하면 '소고기 증후군'에 시달린다. 설마 디자이너란 직업군이 태생적으로 소고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여나 존재한다면 조용히 불러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디자이너는 소고기 안 좋아해. 이 머저리야.(소근)" 디자인은 정신적 수고가 투자되는 아이데이션과 물리적 수고가 필요한 구현화가 모두 발현되는 전문 영역이다. 디자이너는 현실의 재화인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소고기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고기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달라붙은 이들이 아니란 말이다.

요즘 세상이 참으로 좋아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무료로 로고를 생성하는 사이트가 지천이다. 디자인 관련 템플릿도 넘쳐난다. '소고기(와 등가치환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한 사람은 제발 그 유용한 소스들을 이용하길 바란다. 퀄리티도 중급 이상은 간다. 이 말은 즉슨 디자이너가 소고기 먹고 급하게 토해내는 일련의 시안들보다 오히려 안정적이란 뜻이다. 요즘 기계가 얼마나 똑똑한데! 다 알면서 왜 그러시나들. 기계가 만든 디자인에 심미적으로, 맥락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때 디자이너를 찾자. 돈다발을 한움큼 가득 들고서. 시간까지 충분히 준다면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당사자를 확실히 만족시킬 것이다. 그때는 도리어 디자이너가 먼저 제안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소고기 드실래요?" 디자이너도 소고기 무진장 좋아한다. 알면서 왜 그러시나들 정말.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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