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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의 죽음을 통해서 본 K팝의 명암

10대 시절부터 무한경쟁체제에 내던져진 채 '고스펙'을 요구받고 그 모든 것을 갖추어도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사실 현재 우리나라 10, 20대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연습생들의 살인적인 일과는 학교와 자율학습, 각종 학원 스케줄로 꽉 짜인 일반적인 10대들의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이규탁
  • 입력 2017.12.28 10:19
  • 수정 2017.12.28 10:27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리드보컬이었던 종현이 지난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K팝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무엇보다도 올해로 만 27세에 불과했던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진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세상에 공개된 그의 유서를 통해 추측해 보건대, 종현은 우울증과 더불어 자신을 짓누르는 다양한 압박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속해 있던 그룹 샤이니는 많은 K팝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특출한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던 독보적인 존재였다. 춤과 퍼포먼스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데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을 재연해냄은 물론 격렬한 춤을 추는 와중에도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가 흔들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멤버 전원이 보컬에 참여하면서도 화려한 안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샤이니는 '4명의 메인 보컬과 1명의 서브 보컬을 가진 그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 데뷔했던 소위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라이브에 약한 모습이었던 것과는 달리 200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2세대'부터는 더욱 화려한 안무를 보여주면서도 노래까지 라이브로 소화해내며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많은 아이돌 그룹이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더불어 종현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에는 그룹 내 많은 멤버가 작곡·작사 및 편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멋진 몸매에 노래와 춤 모두 완벽하고 심지어 작곡 능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전체 아이돌'이 대세인 것이다.

그런데 샤이니의 무대를 볼 때마다 필자는 '저렇게 곡예에 가까운 안무를 하면서 노래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것은 피나는 노력과 경쟁 시스템의 산물이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은 연습생 오디션인데, 특히 '3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SM·YG·JYP의 경우 오디션 경쟁률이 때로는 수천 대 1에 이른다. 일례로 샤이니의 다른 멤버인 '키'의 경우 800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것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이러한 경쟁률을 뚫고 해당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선발된다고 해서 데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기획사가 정한 빡빡한 훈련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하며 동시에 달마다 실시하는 '월간 평가'를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이 평가에서 3~4차례 이상 지적된 부분을 개선하지 못하거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해당 연습생은 기획사로부터 '연습 종료', 즉 퇴출을 통보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혹독한 과정 속에서 살아남아 데뷔를 해도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K팝 음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들은 또 한 번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거쳐야 한다.

결국 '완전체 아이돌'이란 10대 시절부터 그들이 겪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겪고 있을 압박감과 스트레스의 결과물인 셈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음악과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옷차림, 말재주, 그리고 일상생활 그 자체까지 모두 소셜 미디어와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통해 팬들에게 일종의 콘텐트로서 공급된다. 그야말로 24시간, 365일 내내 숨 한 번 돌릴 틈도 없이 스케줄이 이어지는 셈이다.

물론 아이돌로서 느끼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압박감만이 종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10대 시절부터 무한경쟁체제에 내던져진 채 '고스펙'을 요구받고 그 모든 것을 갖추어도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사실 현재 우리나라 10, 20대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연습생들의 살인적인 일과는 학교와 자율학습, 각종 학원 스케줄로 꽉 짜인 일반적인 10대들의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노래와 춤 모두 잘해도 데뷔가 보장되지 않고 심지어 데뷔 후에도 여전히 생존 경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돌의 삶은, 대학 진학 후에도 상대평가에서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토익 점수 900점을 넘기고 각종 자격증을 따도 취직을 위해 수백,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해야 하는 20대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어쩌면 K팝 아이돌의 명과 암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의 반영이자 압축된 버전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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