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린 시절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서 교훈을 얻고 성장하길 바란다. 나는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

Young Asian boy, scared and alone. Hoping for a better future than the one that seems set. He is at high risk of being physically, mentally and emotionally abused and also trafficked.
Young Asian boy, scared and alone. Hoping for a better future than the one that seems set. He is at high risk of being physically, mentally and emotionally abused and also trafficked. ⓒobeyleesin via Getty Images

올해 연말에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던 곳, 글을 배웠던 곳, 크리스마스 아침의 마법을 느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 마을은 내가 머릿속 지도에서 피해야 할 거리들을 표시해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흥겨운 산타들, 눈을 깜박이는 사슴들,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리는 엄숙한 예수 탄생 이미지들도 있었지만,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은 아이들이 사는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밤에만 자전거를 탔고, 차를 타고 지나가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 옆을 지나게 되면 머리를 숙여 숨는 것에 익숙해졌다.

학교는 더 심했다. 학교는 오후 2시 30분까지는 탈출할 수 없는 시멘트 감옥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덮치고 때렸다. 호모(faggot)라고 부르고 위협했다. 침을 뱉고 걷어찼다. 집에 오는 길이면 집 앞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호모라고 인정하거나 맞서 싸울 때까지 보내주지 않았다. 보내달라고 애원하면 다음 날 학교에서 혼내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등교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교사들은 돕겠답시고 나섰지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체육 교사는 내게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말하며, 내가 풋볼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운동장을 뛰게 시켰다. 그는 내가 배우는 걸 도와주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여자애, 계집애라고 부르는 걸 말린 적도 없었다. 8학년 수학 교사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를 패배자라고 불렀다.

나를 매일 괴롭히던 아이는 때리겠다는 위협으로 나를 엄청나게 겁먹게 만들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몰에 갈 때도 가게 하나하나에 들어가기 전 그 아이가 없나 살폈다. 그 아이가 내가 어디 사는지 찾아내 죽여버릴지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공포가 지금도 들어서 그 아이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가 어디서 나타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다 못해 아버지를 죽였다. 그들이 계속 가까이 지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역시도 살인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바로, 나를.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해 본 게이 남성이라면 누구나 이런 공포를 이해한다. 우리들 중 이 공포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는 과정을 정의하는 것이 이 공포다. 왜 우리가 나서서 항의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사람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40살이 되기 전에는 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괴롭힘을 당할 경우, 피해자라는 사실에 큰 수치감이 있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뿐 아니라, 사건을 신고하면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것 같다는 공포도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묵묵히 감내했다.

내가 집에 간 직후에 어머니가 가까운 이웃을 우연히 만났다고 말했다. 나는 그 이웃의 아들이 나를 너무나 괴롭혀서, 집에 오면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밤새 울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웃었다. 둔감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훌륭한 이웃의 아들이 그토록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어머니는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웃에게 그녀의 아들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알려야 한다고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내가 왜 그러겠니? 정말 옛날 일인데.”라고 했다.

우리 세대에서 또래를 괴롭히던 아이들의 또다른 특징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탈 없이 자라났다. 그들은 당신의 남편, 형제, 친구, 이웃, 동료, 정치인, 셀러브리티, 영웅들이다. 어쩌면 당신 자신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남자답다는 게 어떤 것인지 배우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누군가를 괴롭혔을 게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받았고, 학교 밖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집에서 더욱 학대당하는 남자아이들도 많았다. 나도 힘들었지만, 훨씬 더 심한 괴로움을 겪은 아이들도 많았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 괴롭힘에도 정도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매일 같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얻어터지고, 체육관에서 알몸이 되어야 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잔인해지는 노하우를 몰랐기 때문에 청년기를 빼앗겼다.

지금 이 세상에는 증오가, 복수에 대한 갈증이 넘쳐난다. 나는 영화 ‘헤더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학교를 폭파시키거나, 나를 파괴하려던 이들을 죽이거나, 폭력배를 고용해서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뭘 어쩌겠는가? 그를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배운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바라는 것, 나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이제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을 마주하고, 내가 그때 느낌이 어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사라져 버렸는지 말하는 것이다. 왜 나를 괴롭혀야 한다고 느꼈는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남았다, 멀쩡하다고 확실히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건 하나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떤 종류의 괴롭힘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치겠다고, 내게 약속하라고 하고 싶다.

한 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이 한 번이라도 그런 약속을 한다면, 내 20세기의 어둠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허핑턴포스트US의 I Want The People Who Bullied Me Growing Up To Learn From Their Behavior. I Don’t Want To Destroy Their Live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왕따 #불리 #괴롭힘 #학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