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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판사'가 청소년 사기범에게 내린 판결은 이랬다

  • 김성환
  • 입력 2017.12.26 10:09
  • 수정 2017.12.26 10:56
ⓒSBS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별명은 ‘호통 판사’다.

그는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로 부임한 뒤 현재까지 8년 가까이 청소년 재판만 맡아왔다.

천 판사는 재판정에 선 소년소녀범에게 호통을 치며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뒤늦게 잘못을 뉘우친 청소년과 그의 가족들은 부둥켜 안은채 눈물을 흘리곤 한다.

천 판사가 판결을 내린 청소년은 약 1만2천명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판결을 내린 비행청소년을 위해 전국 곳곳에 '청소년 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라는 대안 가정을 만들어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

천 판사는 지난 22일 부산가정법원 소년재판정에서 중학생 A군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연합뉴스의 26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재판정에서 선 A군은 사기 미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재판 내용을 살펴보면, A군을 신고한 이는 어머니 B씨였다. A군이 인터넷 물품 사기를 저지르려고 은행에서 B씨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만드려고 했기 때문이다. 은행 쪽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B씨는 아들이 더는 삐뚤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법원에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를 신청했다.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는 비행 학생을 경찰이나 검찰 조사 없이 곧바로 법원에 알려 재판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형법상 처벌 대상이 아닌 청소년들이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전과자’로 낙인 찍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A군의 안타까운 사연도 재판을 통해 알려졌다.

A군은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친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B씨와 단 둘이 살았다. 그러나 B씨가 최근 재혼을 하면서 새아버지와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를 당시 A군은 가출을 한 상태였다.

천 판사는 이날 A군의 혐의에 대해 들은 뒤, A군에게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10번 외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A군은 재판정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어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어머니 B씨에게도 "A야, 사랑한다"는 말을 똑같이 10번 외치도록 했다.

천 판사는 이날 판결에 대해 연합뉴스에 "엄숙한 법정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행동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고 전했다.

앞서 A군은 재판을 받기 전 '소년분류심사원'에 머물렀다. 재판정에서는 가출 뒤 한 달여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이날 재판정에 함께 나온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살 여동생은 오빠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와 안겼다.

천 부장판사는 "관계에 문제를 겪는 가족에게 평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면 의외로 갈등이 쉽게 해소되는 경우가 많아 A 군 모자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받은 아들과 어머니는 천 판사의 허락으로 재판정 안에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광경을 본 판사와 국선보조인, 재판 실무자, 법원 경위 등도 안타까운 마음에 모두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천 판사는 판결 전에 청소년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렇게 10번씩 해봐"라고 명령을 자주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군은 이날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6개월 동안 법원의 소년위탁보호위원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상담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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