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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다림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때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인데도 매번 그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내가 마주쳤던 부모들은 대개 냉소적인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나 어르고 달래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때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인데도 매번 그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내가 마주쳤던 부모들은 대개 냉소적인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나 어르고 달래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했다. 나라면 혼내기도 달래기도 어려을 것 같은데, 저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스러웠다.

서른의 눈에도 참 예뻤던 인형을 본 날에도 몇몇 아이들이 그 앞에 달라붙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여자아이는 직접 엄마 손을 끌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엄마 이 인형 너무 예뻐요", "엄마 여러 가지 옷을 입힐 수 있나 봐요", "엄마 머리카락도 다른 색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라며 순식간에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때마다 "그러네", "신기하다", "엄마가 봐도 예쁘구나" 일일이 대답해주는 다정한 엄마였다. 반응이 꽤 긍정적이라고 판단된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세상 가장 예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생일선물, 일찍 받으면 안 돼요?"

저런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면 나는 결국 사주고 말았을 것 같았지만, 아이의 말에 엄마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 엄마랑 같이 생일날 와서 사자."

"왜요? 지금 사주면 안 돼요? 그날 아무것도 안 받아도 돼요."

"생일날 받기로 했으니까 엄마랑 일주일 후에 다시 와요."

"왜요? 지금 사는 거랑 그때 사는 거랑 똑같잖아요."

"똑같지 않아요."

"왜요? 그럼 기다려야 하잖아요."

아이는 쉴 새 없이 이유를 물었고, 엄마는 아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말했다.

"기다려야 하는 게 항상 나쁜 건 아니에요. 엄마는 우리 딸이 기다리는 동안의 행복도 알게 된다면 좋겠어요. 내가 인형을 가졌을 때 어떤 기분일까, 또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면서 즐겁게 기다리는 거예요. 엄마는 그동안에도 아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죠?"

아이는 엄마의 말을 이해해보려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도 지어 보였지만 더 이상 왜인지는 묻지 않았다. 아직은 잘 알 수 없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음 주에 다시 올게, 우리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자, 라며 인형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는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기다림을 괴로움이기보다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로 자랄 것 같았다. 안된다는 말 하나로 꾹 참아내느라 속상하고, 이유도 모른 채 다음으로 미루느라 애타는 아이가 아니라, 어쩌면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크게 절망하지 않는 아이로.

엄마와 아이는 커다란 트리 옆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트리 곳곳에는 커다란 양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받게 될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이미 흠뻑 행복에 젖을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어떤 걸 기다리며 그토록 설렜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기다림, 그 자체가 준 행복들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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